[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배우로서 더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저는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만족도를 높이려고 해요.”
김승용은 “주인공으로 주목받거나 서사가 있는 캐릭터만 고집하진 않는다”며 “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오래 살아남고 싶다”고 강조했다. 직업만족도가 높은 데뷔 13년차 뮤지컬배우의 소신이었다.
“당시 ‘싱글즈’가 정말 핫했거든요. 오디션을 봤는데 한 번에 합격해서 ‘나는 이대로 쭉쭉 승승장구하겠구나’ 생각을 했죠. 동기들 중에서는 제가 제일 먼저 데뷔를 했을 거예요.”
이후 뮤지컬 ‘엘리자벳’ ‘두 도시 이야기’ ‘킹키부츠’ ‘데스노트’ ‘스위니토드’에 앙상블로 참여하면서 무대 경험을 쌓았다.
뮤지컬 ‘머더 포 투’ ‘젠틀맨스 가이드’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오시에 오시게’,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등에서는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연기로 이름을 알렸다.
최근 송 프로듀서는 김승용에게 ‘스웨그에이지’의 엄씨 역을 평생 해달라고 제안했다. 김승용은 “대표님께서 제가 이 작품의 송해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너무 감사하죠. 그러면 소위 말하는 꿀보직이겠죠.(웃음) 신뢰를 주신 만큼 플레이어로서 보답을 해야 되는 거니까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무게감이 느껴지긴 하더라고요.”
김승용은 지난해 ‘스웨그에이지’ 초연에 이어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과 ‘스웨그에이지’ 앙코르까지 원캐스트로 무대에 올라 1년 동안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최근 정부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에 따라 ‘스웨그에이지’가 2주간의 휴식기를 가지게 돼 김승용에게 모처럼 휴가가 주어졌다.
다음은 뮤지컬배우 김승용과의 일문일답.
- ‘데스노트’ 초연 때 함께 한 이창용과 홍광호가 적극 추천했다고 들었다. ‘스웨그에이지’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얘기해 달라.
“‘젠틀맨스 가이드’ 포상휴가로 베트남 나트랑에 갔을 때 연락을 받았다. 구두로 약속된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정중하게 거절을 했는데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창용이 형이 전화해서 ‘PL엔터테인먼트에서 첫 제작을 할 거고 엄청 공들일 좋은 작품인데 안 하면 어떡하냐’고 하더라. 그러고 나서 창작진이 나를 모르니까 직접 보고 싶다고 해서 오디션을 봤다. 누구 추천으로 가는 오디션은 정말 떨리더라. 그날 오디션을 보고 위경련이 왔다. 감사하게도 함께 하자고 해주셔서 기분 좋게 했다.”
- 송 프로듀서의 신뢰가 대단한 것 같다.
“대표님이 계약하고 나서도 중심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내가 나이는 어리지만 경력이 있으니까 형들과 동생들을 아우를 수 있어 중간다리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나도 그런 건 어려운 게 아니고 성격도 잘 맞아서 프로덕션을 운영할 때 좋은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앙코르가 급작스럽게 결정이 되고 대표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내 롤이 타이틀롤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컴퍼니였으면 다른 배우를 섭외했을 것이다. 근데 대표님이 그걸 다 조정을 해주신 거다. 얼터네이터를 기용하고 다 배려를 해주셨다. 나는 거기에 너무 감사를 드린다. 사실상 힘들긴 했다. 원캐스트로 공연을 하면서 연습을 하니까 쉬는 날이 없었다. 하지만 워낙 대표님이 적극적으로 믿음을 주시고 연습실 분위기도 되게 좋아서 재밌었다.”
- 어떻게 엄씨를 그렇게 찰떡같이 소화하나.
“처음에는 ‘단순한 바람잡이 역할처럼 보일 수 있겠다’ ‘되게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했다. 근데 엄씨가 2막 1장을 연다. 되게 중요한 거다. 관객들을 한 번에 집중시킬 수 있어야 된다. 1막은 서사를 따라가다 보니까 내가 서사를 깨트리고 극이 관객하고 연결이 돼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런 부분에 중점을 뒀다. 엄씨는 극 전반에서 서사가 없지 않나. 캐릭터 자체도 극과 관객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관객들이 좀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애드리브도 잘 활용하더라.
“연출님이 애초에 엄씨라는 캐릭터가 유일하게 관객들하고 소통하는 캐릭터기 때문에 도가 지나치지 않게 정도껏 애드리브를 해도 된다고 허락을 해줬다. 애드리브를 순발력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떤 말을 뱉었을 때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되면 안 되지 않나. 혹시나 도가 지나치면 괜히 웃음도 안 나오고 공감도 안 되고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 있으니까 고민은 한다. 그 필터링이 있어야 된다. 그런 것 때문에 식은땀이 난 적이 많다.”
- 어떤 애드리브들이 있나.
“사실 패러디가 좀 있다. 내가 조승우 형을 정말 좋아한다. ‘스위니토드’ 할 때 형이랑 친하게 지냈다. 승우 형의 영화나 뮤지컬 명대사들이 조금씩 들어간다. 예를 들어서 영화 ‘타짜’에서 승우 형이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이런 내레이션을 하지 않나. 그런 걸 좀 차용했다. 공연을 좋아하는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관객들이 대중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거니까 ‘짧지만 관객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밌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담이 엄청 됐다.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에서도 MC를 했지만 힘든 건 사실이다. 관객들과 소통하고 교감을 해야 되는데 그 에너지를 잘못 읽어서 어느 순간 내가 잘못할 수도 있고 장애가 생길 수가 있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 다행히 잔칫날 큰 사고 없이 잘 했다. 관객들이 에너지를 주시니까 그만큼 잘한 것 같다. 좋더라.”
- 작품 안에서 엄씨뿐만 아니라 여러 역할들을 한다.
“백성, 소고치는 사람, 왕, 신하, 자객 등 5~6개 정도 한다. 내가 아마 옷을 제일 많이 갈아입을 거다. 잠깐잠깐 대사 한마디 한 뒤 옷 갈아입고 나오고 혼자 튀기도 하니까 지인이 ‘무슨 뮤지컬 김승용이냐, 여기저기 다 나오냐’고 하더라.(웃음) 나한테 고충은 옷을 갈아입는 거다. 배우는 무대에 설 땐 안 힘들다. 아무리 내가 숨이 차고 땀이 많이 나도 뭔가 분출하면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지 않나. 보상을 받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걸 해도 무대 위에서는 힘들단 생각이 안 든다.”
- 무대에서 재밌었던 에피소드 하나만 꼽자면.
“너무 많은데 이금결 역할을 하는 김재형이라는 친구가 있다. 나랑 동갑인데 성품도 좋고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다. 그 친구가 마술 실수를 할 때가 꽤 있다. 이금결 심사평을 할 때는 항상 하는 거 보면서 특이점 등을 체크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재밌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물론 마술을 성공했을 땐 고정된 멘트를 하지만 상황마다 다르니까 무대에선 그런 재미들이 있다.”
- 분장실에선 어떤가.
“나는 수다를 떠는 건 아닌데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가벼운 농담들을 많이 하고 애들 앞에서 상황극을 하기도 한다. 내가 콘셉트를 잡은 게 성질부리는 선배다. 막 소리지르면 애들이 되게 좋아한다. 그런 재미를 위해 노력하긴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위기가 되게 좋다.”
“취향을 많이 탈 수 있는 공연이지만 10대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뮤지컬이다. 시대가 지나서 나중에 봐도 주는 메시지도 있고 즐길 수 있는 한국적인 작품이 아닐까. 그리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문법을 정확하게 따르고 있는데 한국적인 색채를 입혀놓아서 관객들이 볼 때 신선하고 매력적일 것 같다.”
- 이 작품이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나는 항상 어른들하고 작업을 해왔다. 연출님도 나보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분들을 만났고. 근데 이 작품은 창작진이 다 신인이지 않나. 학교에서 바로 넘어와서 앙상블 친구들도 경험이 없는데 정말 열심히 한다. 나는 경험치가 생겼다고 꾀를 부릴 때가 있는데 이 친구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열정을 다 쏟아서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운다. 초심을 생각했다. 자극이 되고 환기가 된 작품이다.
- 마지막까지 쥐고 가야할 숙제는 무엇인가.
“장기공연을 하다보면 특히나 원캐스트로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힘 조절을 하게 되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게 항상 체력관리를 한다. 그날그날 객석의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그 반응에 너무 구애받으면 안 된다. 관객이 에너지를 먼저 줄 때도 있지만 관객이 에너지가 없을 때 끌어낼 수 있는 나의 힘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항상 고민을 한다.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게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게 공연을 잘 마무리하는 데 변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실제로 센스가 있는 편인가.
“그렇진 않다. 어느 정도의 경험치 때문에 나온 거라고 본다. ‘머더 포 투’가 2인극이었는데 내가 1인 13역을 했다. 그 작품도 관객들하고 놀이처럼 하는 극이다. 단순한 멀티맨이 아니라 그 공간에 있는 13인을 돌아다니면서 연기를 해야 했다. ‘머더 포 투’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을 하면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법, 순간적으로 대처하는 법 등을 많이 배웠다.”
- 성격은 어떤가.
“원래는 되게 조용하다. 어렸을 때 가정환경이 좋지 않으니까 집에선 항상 우울하다가 밖에 나가선 활발했다. 일하러 갈 때는 일부러 더 까불까불한 것도 있다. 어떻게 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 같다.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면서 살갑게 굴면 어른들도 마음을 열더라. 일은 김승용이라는 한 청년의 삶에서 탈출구 같은 거였다. 공연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 같다.”
- 배우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아버지가 암투병을 오래 하시다가 2년 전에 돌아가셨다. 공연 하면서 아버지가 생사를 넘나드는 일이 많으셨다. ‘데스노트’ 할 때도 갑자기 위독하셔서 공연을 못 서게 되는 날이 2번인가 있었다. 아버지랑 나랑 둘이 살고 내가 가장이었다. 내가 벌 수 있는 건 공연밖에 없는데 중환자실 병원비가 엄청 많이 들어갔다. 배우 중의 누군가가 내 사정을 알고 ‘데스노트’ 팀에 얘길 한 거다. 처음에 홍광호 형이 자기 방에 오라고 하더라. 갔더니 사정 들었다며 병원비에 보태라고 두둑한 봉투를 주셨다. ‘데스노트’로 돈 많이 번다고 안 갚아도 된다고 하셨는데 감사하지만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다. 꽤 큰 액수였다. 형이 내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손에 꼭 쥐어 주셔서 결국 받았다. 광호 형이 스타트를 끊고 다른 주연급 배우들, 앙상블들까지도 십시일반 모아서 병원비를 보태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름대로 내가 배우로서 포기 안 하고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데스노트’ 식구들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동네친구들과 함께 야식과 반주를 즐긴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가볍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소극장 작품들을 하면서 대학로 주변에 사는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다.”
- 어떤 친구와 자주 만나나.
“동갑내기 중에 강기둥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하면서 친하게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대학로에서 ‘연기천재’라고 소문이 난 친구다. 실제로 보니까 너무 잘하더라. 분석도 잘하고 플레이도 잘하고. 마침 동네친구라서 친하게 지낸다. 달라서 서로를 더 존중하는 편이다. 이번에 연극 ‘데스트랩’을 연출한 황희원도 동갑내기 친구인데 그 친구도 경험이 되게 많다. 그렇게 셋이 한 가지 논제를 두고 토론을 자주 한다. 서로 속 얘기도 많이 하는 편한 친구들이다.”
- 일하면서 만난 동갑 친구들이 되게 소중하지 않나.
“그렇다. 손유동도 내게 각별한 친구다. 유동이랑 ‘두 도시 이야기’ 앙상블을 같이 하면서 친해져서 대학로에서 2년을 같이 살았다. 독립해서 나가 살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까 유동이한테 부탁을 해서 월세 반을 내고 함께 지냈다. 처음엔 한두 달만 살겠다고 했는데 2년을 살았던 거다. 내가 신세를 좀 졌다. 서로 존중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때 유동이도 나도 작품을 활발하게 할 때가 아니었다. 같이 고민했던 친구가 잘 되니까 기분 좋더라. 우리는 ‘정말 일 열심히 하고 사고치지 말고 오래 가자’ 딱 그거다. 자주 연락하진 않더라도 서로 의지하는 게 있다. 유동이는 특히 더 잘됐으면 좋겠다.”
“배우란 직업은 절대로 안정될 수가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도 아니고, 공연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안주하게 된다. 특히나 이쪽은 흐름이 더 빠르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으면 관객들과 회사가 외면할 수밖에 없다. 항상 안주할 수 없게 자극을 주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내가 주변을 살필 수 있다는 게 어찌 보면 행복이 아닐까. 우리는 불안정한 삶속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불안하거나 두렵진 않다.”
- 어떤 배우로 성장하고 싶나.
“배우들은 연습과정이나 그 사람의 오늘 기분상태, 인품·성품이 무대에서 드러날 때가 있다. 온전히 주어진 것에서 즐기는 배우가 되고 싶다. 무대 위에서도 그렇고 김승용의 삶 자체에서도 마찬가지다. 내일의 해는 내일 뜨는 거지 않나. 어차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충분히 즐기고 행복을 느끼면 내가 나이를 먹어서도 혹시나 어쩔 수 없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게 되더라도 그렇게 불행할 것 같진 않다. 일단은 주어진 것 안에서 연기적으로서 더 성장하고 싶다. 작은 역할을 맡더라도 관객의 기억에 남을 수 있게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만들고 싶단 생각을 한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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