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인터넷'

 


이번 총선에서 인터넷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많은 이들을 정치판으로 끌어당겨 왔다는 점이다.

정치 관련 이슈를 다루는 사이트들은 연일 네티즌들로 붐볐고, 포털사이트 뉴스 코너에서도 정치 기사의 클릭율이 전례 없이 높았다.

그러나 '재미있는 정치' 만들기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패러디물에 대해 검찰과 선관위가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선관위는 깨끗한 선거 만들기에 많은 땀을 흘렸음에도 불구, 비난을 면치 못했다.

부작용이 많았던 길거리 유세를 제한하고 온라인 선거운동을 유도했지만, 개정 선거법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각 정당은 네티즌 비례대표를 선출하고 디지털 정당을 구축하며 사이버 공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듯 했다. 그러나 제도적 뒷받침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터넷실명제를 무리하게 통과시켜, 이런 노력들이 단지 표를 얻기 위한 '이벤트'였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신난다, 재미난다, '더 게임 오브 정치'"

이번 총선 과정에서 네티즌들의 정치에 대한 참여 열기는 이전의 어느 선거 보다 뜨거웠다.

70%∼80% 네티즌들이 반대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사이버 공간은 분노로 들끓었다.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193명 의원들의 명단이 나돌고, 인터넷 토론방에서는 연일 이들에 대한 성토가 빗발쳤다.

'근조리본(▶◀) 달기', '탄핵 반대 배너 붙이기' 등 사이버 상에서 다양한 운동도 일어났다. 또 탄핵을 반대하는 대규모 커뮤니티(cafe.daum.net/antitanhaek)가 만들어져 촛불시위 등 행사를 주도하며, 탄핵 반대 움직임의 온·오프라인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탄핵 가결에 따른 분노의 물결은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네티즌들은 넷심(心)를 져버린 국회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패러디라는 강력한 '웃음폭탄'을 제조했다. 항상 근엄한 모습으로 권좌에 앉아있던 국회의원들이 배꼽을 잡게 만드는 패러디물에 등장했다. 정치인을 비꼬고 깔아뭉갬으로써 인터넷이 '재미있는 정치'를 양산하는 장으로 바뀐 것이다.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라이브이즈닷컴(www.liveis.com), 짱노닷컴(www.zzangno.com), 조은나라닷컴(www.okjoa.com), 미디어몹(www.mediamob.co.kr) 등 대표적 패러디 사이트에선 날마다 정치인과 국회를 재물로 삼은 풍자 이미지, 플래시들이 만들어졌다.

이들 사이트가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네티즌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뤘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올려진 각종 패러디물은 인터넷 토론방, 커뮤니티로 퍼날라졌다.

그동안 포털사이트나 인터넷 뉴스사이트에서 정치뉴스를 대하면서 냉소와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네티즌들은 정치가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실제 인터넷에서 정치판과 국회의원들은 드라마나 연예인만큼 높은 인기(?)를 구가하기에 이르렀다.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 순위에서 급격히 치솟은 정치 관련 키워드나, 클릭율에서 연예가 소식을 앞지른 정치뉴스가 이를 증명해준다.

네티즌들은 보고 즐기기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다같이 정치에 참여하기를 촉구했다. 그런 열망은 이번 총선에서 투표를 하도록 호소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함께 참여하자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서 패러디는 다시 한 번 힘을 발휘했다. 디시인사이드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무적의 투표부대'가 각종 패러디를 만들어내면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도록 호소했다. 또 정치 관련 커뮤니티 회원들과 일반 '정치 폐인'들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투표참여 운동에 동참했다.

이러한 네티즌의 활동에 힘입어 이번 총선에서 투표율은 16대보다 2.7% 높아진 59.9%(잠정치)를 기록했다. 지난 85년 치러진 12대 총선에서 84.6%의 높은 투표율을 보인 이래, 16대까지 하락세를 이어오다가 이번 17대에서 상승세로 반전했다는 점이 갖는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선관위-검경 모호한 규제, 인터넷 정치참여 열기에 찬물

인터넷 정치 활동을 규제하는 선관위와 검찰·경찰의 불분명한 잣대는 네티즌들의 정치참여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특히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투표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패러디에 대한 가혹한 수사는 논란을 불러올 만했다.

인터넷 정치 패러디가 허위사실에 근거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처벌받아 마땅하다. 특히 온갖 흔색 선전과 비방이 난무하는 선거 시기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 패러디물은 네티즌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사실에 근거를 두었다. 그렇지 않은 패러디는 수천만 네티즌들로부터 철퇴를 받아 걸릴 사이트를 잃게 될 것이 자명했다.

검찰과 선관위는 아마추어 패러디 작가들에게만 단속의 눈을 부릅떴지 일반 언론사의 만평가에 대해선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시사 만평 작가 작품의 경우 공익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수사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답했다. 인터넷 정치 패러디가 공익성을 갖지 않는다는 보는 네티즌은 많지 않다.

그런가 하면 선관위는 네티즌들이 만든 패러디물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라이브이즈닷컴에 대해 수사를 의뢰한 바 있었다. 똑같은 패러디가 걸려진 포털사이트나 인터넷 언론사는 삭제요청만을 받았다. 포털사이트들은 패러디물을 게재한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떠넘기는 데도 선관위는 선거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선 "인력부족 때문에 일일이 수사를 할 수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렇듯 형평성에 어긋나는 잣대에 대해 네티즌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디시인사이드 정치·사회 갤러리에서 활동하는 네티즌들은 연행된 대학생 패러디 작가를 지지하는 '하얀쪽배무죄운동'(cafe.daum.net/hayanzzockbae)이란 카페를 개설했다.

카페 개설을 주도한 '통키'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하얀쪽배님이 올린 패러디 작품을 경찰이 선거법 상의 허위사실 유포와 사전 선거운동 조항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과잉 수사를 벌인데 분노한다"고 밝혔다.

라이브이즈닷컴은 '네티즌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특별 사이트(www.liveis.com/bbs/zboard.php?id=a_main)'를 만들기도 했다. 이 사이트는 선거법 위반 적용사례와 전문가들이 다시 만든 불법(?) 패러디, 성명서·보도자료 등을 통해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포털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선관위가 거리 유세를 제한하고 온라인으로 선거운동을 유도하면서 이에 대한 뒷받침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점도 문제가 됐다.

개정 선거법이 선거운동원 동원수, 홍보용 어깨띠와 복장 등에 대해 제한을 가함에 따라, 총선 후보들은 사이버 공간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 선거운동에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도구는 이메일이다. 그러나 대선과 달리 각 선거구 유권자에게만 표를 호소해야 했던 후보들은 해당 지역 사람들의 이메일 주소를 추출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후보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네티즌들에겐 귀찮은 스팸으로 여겨지는 선거운동 메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선관위가 이메일 주소 자동 수집기 사용에 대한 명확한 법 해석을 해주지 못해, 불법이 자행되거나 수작업으로 이메일 주소를 모으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신속하게 많은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 선거운동이 갖는 장점은 많다. 다음 선거 때는 선관위가 사이버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대부분 선거운동원들의 요구사항이었다.

◆각 정당 선심성 '꼬득이기'...네티즌 "안 속아"

정당들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인터넷과 네티즌의 도움을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데 대해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민주당은 네티즌에게 비례대표 당선권 내의 후보 번호를 배정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네티즌을 대표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고, 투표 절차에서도 여러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이 '네티즌 비례대표'는 열린우리당도 한 때 검토한 바 있다.

결국 민주당 내분 사태로 물 건너갔지만, 설영 '네티즌 비례대표'가 탄생했다 해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은 상황이었다.

넷심을 얕잡아 봤다가 대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한나라당은 '디지털 정당'임을 선포하고 젊은이들을 위한 공약을 발표했다. 20대 여성을 등장시켜 사이버 브리핑을 시도하는가 하면, 그동안 무심했던 패러디물을 홈페이지에서 활발히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이들 정당이 베푼 인터넷 활성화 방안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각 정당이 사이버 공간의 변화에 한 발 앞서 능동적으로 좋은 정책을 모색하기보다, 네티즌들에게 인기 있는 재료를 끌어와 표를 호소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이는 16대 국회에서 네티즌들이 환영할 만한 인터넷 관련 법안을 한 가지도 내놓은 바가 없다는 점이 증명해준다. 오히려 정밀한 검토 작업도 거치지 않고, 제도적 뒷받침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인터넷 실명제 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반발이 일고 있을 뿐이다.

인터넷 언론사와 시민사회단체, 네티즌들은 지난달 18일 헌법재판소에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개정 선거법 제82조의6(인터넷언론사 게시판·대화방 등의 실명확인)과 제261조(과태료)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아이뉴스24, 오마이뉴스 등 10개 한국인터넷신문협회(회장 이창호) 회원사와 참여연대, 진보네트워크,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148개 시민단체는 '인터넷 실명제 불복종' 선언을 하고 나섰다.

인터넷 실명제 법은 지난 8일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됐지만, 정부나 업체는 이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입법 당시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인터넷 업체가) 민간 신용정보 회사뿐 아니라 행자부 주민DB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서 시스템 구축비용을 줄이고 신용정보 이용 시 소외될 수 있는 사람의 글쓰기도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엔 행자부 DB를 쓸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3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실명제를 적용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현실적인 실효성이 없는 상황에서 실행되는 인터넷 실명제에 네티즌들만 혼란을 겪고 있다.

오는 6월 보궐선거에서 선관위의 1천만원 과태료 부과에 대해 인터넷 언론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권해주기자 postma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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