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주기자] "지금은 과거보다 창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크게 늘어 청년이라면 누구나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이 가라앉았듯 핵심은 진입 이후에 있다."
요즘엔 부쩍 젊은, 아니 어린 사장님들이 많아졌다. 과열된 스펙 전쟁 속에서 '청춘을 낭비하는 건 주옥같은 창의력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냐'는 청년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고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사회 분위기까지 더해진 결과물일 수 있다. 대기업에 취직해도 월급쟁이는 뻔하다는 체념도 한 몫 했음을 부정할 순 없다.
창업 장려 분위기가 무르익은 요즘 많은 청년들은 대학에서부터 토익 대신 사업 아이템을 찾는다. 과거보다 기회는 넓어졌고 이들은 수없이 도전하고 성공하며 또 실패한다.
대학에서부터 창업의 꿈을 펼쳐온 6명의 창업자들을 세대별로 만나 창업 스토리와 한국의 청년창업 환경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 학생 CEO들 "스펙 대신 사람들의 필요 찾아"
토익 시험은 본적이 없다는 20대 창업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스펙을 쌓을 시간에 가까운 곳에 널려있는 사람들의 필요사항들을 발견하고 이를 사업으로 연결시켰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이들은 친구들이 토익, 자격증 등 스펙 쌓기에 전념할 때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데 역량을 쏟았다.
경희대 경영학부에 재학중인 06학번 1987년생 안성규 대표는 지난 2012년 9월 같은 학부 06학번 이동현 씨, 08학번 민재웅 씨와 손잡고 교내 창업동아리 '유어니즈'를 창립했고 곧이어 '빌라노'도 창업했다.
서로의 주머니를 털어 모은 3천만 원 안되는 돈으로 회사를 세운 이들은 맞춤형 장학금 정보 플랫폼 '드림스폰'으로 각종 공모전에서도 수상했고 이어 중소기업청의 청년창업사관학교에 합격, 1억원의 지원금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빌라노는 장학금 정보 플랫폼 '드림스폰'의 공식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안 대표는 "반값등록금 이슈가 뜨거울 당시 학생들에게 장학금 정보가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처음 창업을 생각할 땐 수익모델을 먼저 고민했지만 드림스폰이 사람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서비스라는 가치에 우선 방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에 재학중인 08학번 1987년생 이동호 폰플 대표는 지난 2011년 3만원의 자본금으로 회사를 세우고 2012년 휴대폰 요금을 줄여주는 앱 '폰플' 공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폰플은 기업들과 연계해 광고를 볼 때 마다 해당 기업에서 일정액의 요금을 통신사에 내주는 방식으로 열심히 활동하면 통신료가 마이너스까지도 가능한 게 특징이다.
이동호 대표는 "25살 돈 없던 나이에 스마트폰 요금이 너무 비싸 이 앱을 고안한 것"이라며 "당시는 통신사들이 1천원이라는 불만족스런 가격인하로 도마에 오를 만큼 비싼 통신요금이 사회적 이슈가 되던 때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폰플은 청년창업사관학교의 운영금 지원 대상에 선정돼 6천500만원의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 연륜파 90년대 학번 "최고 자산은 사람"
90년대 학번들이 대학생이던 당시엔 닷컴버블기를 앞두고 청년들의 창업 DNA가 물밑에서 꿈틀대기 시작해지만 지금처럼 제도적인 창업 지원이 활발하진 않았다.
특히 90년대 초에는 창업을 한다는 대학생들이 '괴짜' 소리를 들었던 때이기도 하다. 이들은 국가 창업 지원도 부재하던 시절을 지낸 만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인맥'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그 중 한명이 박성준 나인플라바 대표다.
"내 나이가 많은 게 아니라 요즘 스타트업 대표들이 너무 어린 것"이라며 억울해하던 그는 1973년생으로 서울대 전기공학부 92학번. 요즘 대학생들보다 척박한 환경에서 경험을 쌓아 그는 연륜이 깊다.
그는 벤처란 말조차 잘 언급되지 않던 22살때 친한 미대생과 '스티커 명함' 사업을 시작으로 수차례 사업을 펼쳤다가 접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11년 '나인플라바'를 창립, 모바일 포인트 공동적립 서비스 '위패스'로 본엔젤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이어 다음커뮤니케이션즈로부터도 10억 원의 투자를 따냈다.
그가 나인플라바를 설립하기까지는 제도나 기관 대신 '인맥'을 이용했다. 창업 지원이 거의 부재했던 90년대 초 창업 활동을 시작한 만큼 그는 발로 구축한 인간관계를 자산으로 삼았다. 다양한 사업을 하며 친해진 형님들, 친구들을 찾아가 500만 원, 1천만 원씩 갈취(?) 했다는 게 그의 표현이다. 김도연 이음 창업자, 정성은 위버스마인드 창업자 등 스타트업을 하면서 친해진 인맥을 활용했다.
박 대표는 "프로그래머 출신이라 스스로 다 만들 줄 알다보니 멤버의 중요성을 몰랐던 게 지난 실패의 요인"이라며 "당장 투자를 얻진 못해도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포럼에도 자주 참석해 아이템을 알리다 보니 투자유치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현수 핸섬컴퍼니 대표 역시 창업의 핵심은 '사람'이다.
1973년생 박 대표와 동갑내기 친구인 그는 LG전자 휴대폰 사업부에 10년간 근무하다 서울대 글로벌 MBA에 입학해 교내 벤처 동아리의 훌쩍 어린 후배들과 세대의 벽(?)을 깨고 잘 어울리고 있다.
김현수 대표가 소셜 데이팅 서비스 '시라노 연애대작전'을 서비스하는 핸섬컴퍼니를 창업한 배경에는 그의 아이디어로 같은 학과 동기들과 함께 매주 짝을 바꾸며 친분을 쌓은 '위클리메이트'가 있다.
그는 이 놀이에 동기들이 보여준 호응에서 영감을 얻어 사업화를 추진, 2012년 핸섬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현재 월 순이익 약 3천만원의 성적을 내고 있다.
김 대표도 제도적 지원이 아닌 자신의 인맥을 활용했다. 10년 사회생활로 얻은 지인들을 모아 투자설명회를 하고 2억 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김 대표는 "미국은 매칭 서비스 시장이 연 3조 달러 이상으로 가늠되지만 국내는 아직 국가에 이바지하는 산업이라 인식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오래 사회생활을 하면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가 있어 제도적 지원 없이도 투자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98학번 이비호 스터디맥스 공동대표도 자신이 회장을 역임한 서울대 벤처 동아리 'SNUSV'에서 얻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동반자가 되고 있다.
우선 심여린 스터디맥스 공동대표부터 동아리에서 만난 그의 아내다. 대학 4학년때 '누드교과서'의 이투스를 창업해 화제가 된 바 있는 이비호 공동대표는 SNUSV 회장 당시 '대학생벤처창업경진대회'를 창설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으로 뜻이 맞는 인재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는 이투스가 SK컴즈에 인수된 후 설립한 스터디맥스의 핵심 임원진들은 모두 SNUSV 멤버들이다. KT에 근무하면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던 양회봉 개발상무, NHN 한게임 사업부(현 NHN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던 지성욱 마케팅 이사가 있다.
이비호 공동대표는 "연 2~3회 동아리 정기모임을 하며 선배들의 창업 노하우, 현 트렌드 등을 공유한다"며 "창업하기전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좋은 팀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고 무작정 하기보단 관련 분야에서 일하며 경험쌓는것도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계 큰형님 "무대책 희망 NO, 현실직시 중요"
창업 후배들이 손꼽는 '장수 벤처' 중 하나인 지란지교소프트의 오치영 대표는 1969년생으로 충남대 88학번. 창업계 '큰형님'이다. 오 대표는 "희망과 현실직시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닷컴시대가 오고 소프트웨어 기술이 크게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지란지교소프트도 급성장했지만 닷컴버블은 가라앉았고 이 회사도 지난 2003년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후 자사 아이템에 대한 맹목적 과신을 버리고 재무 흐름도 더 챙기며 다시 달린 지란지교소프트는 일본 5천여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하는 등 성장을 거듭했고 국내외 보안솔루션 시장에서 300억원 이상의 연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오 대표는 "좋아하는 일만 해선 회사 운영이 안된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때엔 개발 용역 업무를 병행한 적도 있다"며 이 역시 일종의 현실 직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창업자에게 희망이 없으면 발전이 없지만 맹목적 장미빛 희망은 독이며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세"라며 "끈기와 열정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쉬워진 창업 '옥석' 가린 지원 필요"
정부가 거듭 강조하듯이 지금의 한국이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인가라는 물음에 세대별 창업자들 모두 "창업까지는 기회가 많은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창업을 장려하는 사회다 보니 창업경진대회, 청년창업사관학교 등 상금 및 운영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지난 2011년 상법이 개정되면서 돈이 없어도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대학 창업 동아리들도 속속 생겨났다.
학생 창업자들은 공통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재정적 지원을 받거나 회사를 차리는 게 어렵다고 체감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요즘 취업회피나 스펙 대용으로 무성의하게 사업자등록증 한번 내보는 학생들도 간간히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오치영 대표는 "스펙이 화려한 인재보단 창업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인재를 더 좋게 평가한다"며 "하지만 제대로 창업에 임했는지 이력서 꾸미기용인지는 몇마디만 대화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준 나인플라바 대표는 "현재 대학생 창업은 다양한 지원책들이 늘어 진입까지는 쉽지만 지원 대상자만 많이 선정하기 보단 진입 후에 지속할 수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이 가야된다고 본다"며 "이를 위해 진입 이후 두번째 단계에 대한 지원이 늘었으면 한다"고 했다.
김현수 핸섬컴퍼니 대표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기술로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 창업 후 곧 문을 닫는 사례도 많은데, 그 해결책으로 국내에도 개발 의뢰자와 개발자 사이에 정확한 소통을 도와 해당 아이디어가 100% 구현되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전문가들이 양성돼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김 대표는 또 "현재 서울대에서 수업중인 '벤처경영학'처럼 디자인, 기술, 경영을 연계해주는 교육이 확산된다면 창업 지망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스타트업의 병역특례 대상에서 대학생을 아예 제외해 버린 정책도 신생 벤처 육성에 간접적으로 지장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강현주기자 jjo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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