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스티브 잡스가 퇴진하면서 3년 전 한 발 앞서 물러난 빌 게이츠와 오버랩되고 있다. 56세 동갑내기인 잡스와 게이츠는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 IT 시장을 쥐락펴락해왔다.
빌 게이츠는 지난 2008년 6월 말을 기점으로 33년간 몸 담았던 마이크로소프트(MS) 경영에서 손을 뗐다. 빌 게이츠는 CEO와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IBM에 침투한 트로이 목마' 신세였던 MS를 PC 시대의 주인공으로 키워냈다.
잡스는 빌 게이츠와 거의 같은 기간 애플을 이끌었다. 둘의 공통점은 적지 않다. 우선 창업 과정부터 판박이처럼 닮았다. 빌 게이츠에게 폴 앨런이란 동업자가 있었다면, 스티브 잡스에겐 '또 다른 스티브'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함께 했다. 동업자들이 3, 4살 더 많았던 점도 같았다.
하지만 공통점 못지 않게 차이점도 두드러졌다. 특히 40년 가까이 IT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면서도 신기할 정도로 전성기가 엇갈린 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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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모두 1975년 전후에 회사 설립
스티브 잡스가 애플컴퓨터를 창업한 것은 1976년 4월 1일. 때 마침 만우절이던 그날 거짓말처럼 애플컴퓨터의 닻을 올렸다. 잡스가 애플이란 이름을 선택한 데는 한 때 자신이 몸 담았던 아타리보다 알파벳 순서가 앞에 온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후문도 있다.
그 무렵 빌 게이츠도 막 회사를 설립한 뒤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 한 해 전인 1975년에 자신보다 세 살 더 많은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운 것. '작고 부드러운(Micro-Soft)' 그 회사는 최초의 PC인 알테어 8800용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는 일을 주로 했다.
잡스가 첫 작품을 내놓은 것은 1976년 7월. 애플1이라고 명명된 애플의 첫 컴퓨터는 당시 666.66달러라는 기괴한 가격에 판매됐다. 이듬 해인 1977년엔 애플의 첫 메인프레임 컴퓨터인 애플2를 내놨다.
하지만 잡스의 진짜 작품은 '조지 오웰의 예언'이 짙게 배어 있던 1984년에 나왔다. 그 유명한 매킨토시였다. 빌 게이츠의 첫 기회는 1980년에 찾아왔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첫 진출하려던 IBM에 운영체제를 공급하기로 한 것. 빌 게이츠와 폴 앨런 등은 1년 여 작업 끝에 1981년 그 유명한 도스(DOS) 프로그램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빌 게이츠가 도스로 컴퓨터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던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1, 2 등으로 1차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1982년 말 '올해의 기계'로 PC를 선정하기전 '올해의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염두에 뒀을 정도. 하지만 그의 복잡한 사생활 문제가 불거진 데다, <타임> 편집진들 역시 'PC시대'에 좀 더 무게를 두면서 'PC'로 급선회했다는 후문이 있다. ◆1980년대 들어 엇갈린 행보 이후부터 둘은 거짓말처럼 엇갈린 시간들을 보냈다. 1970년대 말 한 발 앞서 전성기를 누렸던 잡스가 시련의 시기로 접어든 반면, 빌 게이츠는 '윈도 시대'를 열면서 화려한 생활을 시작했다. 빌 게이츠는 1983년 윈도 첫 버전을 선보인 뒤 꾸준히 개발 작업을 진행한 끝에 1990년 3.0 버전을 선보였다. 윈도 3.0은 출시 2년 만에 1천만 카피가 판매되면서 윈도 시대의 화려한 개막을 알렸다. 특히 1995년 발표한 윈도95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빌 게이츠 역시 세계적인 부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1995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부자 맨 윗자리에 이름을 올린 이래 오랜 기간 그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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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터를 둔 'PC 운영체제' 부문이 서서히 영향력을 잃어간 반면, 잡스가 새롭게 시도한 디지털 음악, 휴대폰 사업은 연이어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낸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빌 게이츠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08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기조 연서를 통해 현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것. 빌 게이츠는 약속대로 2008년 6월말 MS의 일상 업무에서 손을 떼고 자선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빌 게이츠 시대가 끝을 고하면서 IT 시장의 문법은 잡스가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2007년 선보인 아이폰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데 이어 맥북에어와 아이패드 등으로 연타석 홈런쇼를 보여준 것. 결국 잡스는 지난 해 시가총액 면에서 MS를 제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올 들어선 분기 순익 면에서도 하드웨어 부문이 주를 이룬 애플이 소프트웨어 업체 MS를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줬다.
◆깔끔한 게이츠 vs 야성적인 잡스
잡스와 게이츠는 엇갈린 전성기 만큼이나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줬다. 시애틀의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를 중퇴한 빌 게이츠가 전형적인 모범생 이미지를 간직한 반면, 사생아로 태어난 잡스는 '잡초 같은 삶'을 살았다.
늘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던 빌 게이츠와 달리 잡스의 트레이드마크는 청바지였다. 잡스는 또 젊은 시절 한 때 복잡한 사생활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회사 내에서의 생활 역시 이미지만큼이나 서로 달랐다. 창업한 뒤 33년 만에 은퇴할 때까지 늘 1인자 자리를 지켰던 빌 게이츠와 달리 스티브 잡스는 한 때 빈 손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빌 게이츠가 안정된 수비 실력을 보여주는 유격수인 반면 스티브 잡스는 파인 플레이도 많이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엉뚱한 실책도 자주 범했던 유격수였다.
이런 상반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IT 산업 역사에서 둘의 우열을 가리는 건 쉽지 않다. 둘 모두 새로운 트렌드를 잘 잡아낸 뒤 그것을 사업화하는 면에선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때문이다.
지금 두 거인 중 한 명을 택하라고 하면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에다 최근 보여준 뛰어난 실적 때문에 잡스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30여 년 전에 보여준 비전 역시 결코 잡스에 뒤지지 않는다.
세상은 늘 1인자와 2인자를 가려내고 싶어하지만, 둘은 그냥 IT 시장의 양대 거인으로 남겨두는 게 어떨까? 화려한 IT 혁명의 주춧돌을 쌓고, 그 주춧돌 위에 건물을 지어 올린 뛰어난 두 장인으로.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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