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한 논쟁이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IT 산업의 충돌로 비화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도 이 싸움에 가세하는 양상이다.
정보통신부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이 법안에 반대하는 인터넷 기업과 네티즌을 지원하는 형국이고, 이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쪽에는 문화부관광부 및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저작권법 개정안 찬반을 놓고 두 세력이 전면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 5일, 닷컴 필두로 인권, 시민단체 '反 우상호 법안 전선'
저작권법 개정안(특히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안)에 대해 가장 먼저 반기를 든 압력단체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nhn, 다음 등 주요 포털을 포함 200여 개 온라인서비스사업자(OSP)가 소속돼 있는 협회 측은 지난 5일, 열린우리당 이광철 의원의 저작권법 전부개정안과 함께 같은 당 우상호 의원의 개정안이 국회 문광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직후 비판 성명을 발표하고, 조항별 문제점을 짚어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강력 규제이며, 법안이 통과되면 네티즌들의 일상적인 인터넷 이용에도 심각한 제약을 받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이 특히 문제삼은 조항은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에게 저작물 불법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 보호조치를 의무화 한 조항 제77조 3 ▲문화부 장관, 시도지사 등에게 불법 복제물 수거, 폐기 및 과태료 부과 권한을 부여한 조항 제97조의5 및 제104조 신설 ▲부분적 비친고죄 도입 조항 102조(이상 우상호 의원안)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복제, 전송의 중단요구가 있을 때 즉시 저작물 복제, 전송을 중단해야 한다는 조항 제102조(이광철 의원안) 등 모두 4가지다.
협회 측은 이튿날 국회 문광위 상임위원회에서도 같은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다시 성명을 통해 "닷컴 및 시민단체가 크게 낙담하고 있다"며 "개정안이 저작권자와 이용자간의 균형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하루 뒤인 7일에는 인권, 시민단체들도 '反 우상호 법안 전선'에 가세했다.
정보공유연대, 문화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 10개 인권, 시민단체들은 연명으로 "우상호 의원안 중 제77조의3(특수한 유형의 온라인 서비스제공자의 의무 등), 제97조의5(불법 복제물의 수거·폐기 및 삭제), 제102조 개정안(비친고죄화) 및 관련 조항을 폐기하라"며,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라"고 주장했다.
같은 기간 닷컴과 시민단체의 잇따른 반대 성명이 보도되면서 네티즌도 들끓었다. 인터넷을 공기처럼 느끼는 이들은, 관련 기사에 수천개의 덧글을 남기며, 우상호 의원에 대한 맹공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대해 우 의원 측은 7일 공식 자료를 발표하고, 방송 출연 등을 통해 "본의가 왜곡되고 있다"고 반박했으며, 이에 대한 재반박 성명도 다시 꼬리를 물었다.
◆ 저작권 戰, '국회 문광위 VS 과기정위, 문화부 VS 정통부' 차원으로 확대 양상
이처럼 엇갈리는 주장이 맞서는 가운데 우상호 의원안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의견이 보다 정치한 논리를 획득한 것은 8일, 법률전문가 집단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이 비판 논평을 통해 우 의원안에 대한 비판 논평을 내놓으면서 부터다.
닷컴과 인권, 시민단체가 문제점으로 지적해 온 내용에 대해 민변 측이 한 수 거들고 나선 셈이 됐기 때문.
민변은 이 날 언론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논평을 발표하고, "우상호 법안에 포함된 P2P에 관한 규정은 저작자와 이용자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는데다, 저작권 이용자의 자유로운 이용,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문제가 있다"며 "개정법률안이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였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 등에 위배됨을 이유로 위 해당 규정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우상호 의원안을 포함한 저작권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점치는 의견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관례에 비추어 볼 때 법사위는 대개 해당 상임위가 통과시킨 의견을 존중하는 편. 따라서 해당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된다면, 보다 광범위한 관심을 받고 있는 법안에 관심을 집중시킬 본회의에서 복잡한 권리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저작권법 개정안의 세부 조항을 시비하며 통과를 보류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
법안에 대한 뜨거운 장외투쟁 분위기 속에서도 우상호 의원안을 여과 없이 통과시킨 문광위 소속 의원실이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것 역시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의원들이 처리한 법안이 상당히 많다. 복잡한 저작권법의 중요성을 잘 모르시는 분이 대부분이다. 한나라당, 민주당 일부 의원은 이거 이렇게 통과시킬 자신이 없다. 시간을 두고 재고하자고 하기도 했다. 허나 제대로 심사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고 해도 기왕 통과된 것, 한 표 보탠 마당에 어쩌겠느냐"고 털어놓은 어느 보좌관의 고백(?)은 우상호 의원안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통과시킨 문광위원들의 안일한 현실인식과 누워서 침뱉지 못하는 해당 상임위의 껄끄러운 입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던 상황이 '본회의 통과 불투명'으로 급격히 전환된 것은 지난 12일이다.
1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변재일 의원은 우상호 의원의 저작권법 개정안과 문화산업진흥법안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의견을 발표하고, "저작권법 개정안이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에게 저작권 보호를 위해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P2P 규제 조항이) 인터넷상의 자유로운 정보유통을 제약하는 것은 물론 IT 산업 발전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변 의원은 발표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과기정위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라고 언급해 향후 저작권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국회 상임위 간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 변 의원의 주장에 즈음해 IT기업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저작권법 개정안에 내심 '불편한' 심기를 달래온 정보통신부도 '우려' 입장을 전했다.
우상호 의원의 개정안이 초안을 잡던 당시부터 문화관광부 저작권과와 의견 교환을 통해 방향을 잡았음을 고려하면, 우 의원안이 촉발시킨 저작권 전쟁이 권리자와 이용자간 반목을 넘어 '국회 문광위 VS 과기정위' 차원의 국회 버전, 나아가 '문화부 VS 정통부' 차원의 부처 버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 18개 권리자단체 15일 '저작권법 개정안 지지성명'... '엔터테인먼트 VS IT 전면전'
그러나 우상호 의원안이 촉발시킨 저작권 전쟁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당초부터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고려, 저작권법 개정안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피력해 온 닷컴 연대에 맞서 범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14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저작권법 개정안을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할 계획인 것.
저작권 논쟁 이면에 버티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VS IT업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13일, 한국음원제작자협회를 비롯 음악업계 권리자단체와 영화, 도서, 출판, 문예학술, 만화 등 18개 장르별 권리자단체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저작권법 개정과 관련하여 최근 일부 시민단체 및 관련단체가 동 법안을 왜곡, 네티즌들에게 잘못된 자료를 배포하는 등 여론을 선동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관련 법안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공동 성명을 통해 이들 18개 권리자 단체는 "한국 문화예술 산업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14일, 국회 법사위를 방문해 불법복제업체로 인한 문화산업의 피해와 저작권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며 15일 오후에 열 기자회견을 통해 저작권법 개정안 지지 성명을 공식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우상호 의원의 저작권법 개정안은 이제, 수면 아래 도사리고 있던 디지털 콘텐츠 관련 부처간, 산업간 이해관계 충돌을 부추기는 '저작권 戰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