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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이런 인연도...'사장-알바'에서 동업자된 김정률과 이원술


 

10년 전, 오락실 게임을 만들던 중소기업 '데미암'.

그때 그 곳에서 두 사람이 스치듯 만났다.

한 사람은 아르바이트생(이원술 손노리 사장)이었고, 또 한 사람은 사장(김정률 그라비티 회장)이었다.

당시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이 나중에 나스닥 상장으로 대박신화를 터트린 '그라비티'의 오너(김정률 회장)가 되고, PC게임 최고의 개발진으로 이름을 날린 '손노리'의 사령탑(이원술 사장)이 될 것임을….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난 27일.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코엑스인터콘티넨탈호텔의 대형 연회장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난 두 사람이 동업자로 어깨를 나란히 한채.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손노리가 개발하고 그라비티가 국내 외에 배급키로 계약을 맺은 신개념 포털 '스타이리아'를 함께 소개했다.

김 회장은 "세계 37개국에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를 수출하는 우리의 역량을 모아, 스타이리아를 세계적인 게임포털로 키우는 데 힘껏 돕겠습니다"고 힘줘 말했다.

두 사람이 이제는 세계 시장 개척에 힘을 모으는 파트너로 마주 선 것이다.

◆"알바생과 사장으로 만나"

이 사장이 데미암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1993년 건대 재학 중 6명으로 이뤄진 아마추어 게임 개발팀(지금의 손노리)에 몸담은 것이 계기가 됐다.

1년 후 동료들이 데미암에 병역특례로 들어가자, 그 역시 아르바이트생으로 따라 입사했다.

당시 데미암은 PC게임 개발에 첫 발을 내딛었고, 이를 위해 개발진을 찾던 중 손노리팀을 우연찮은 기회에 영입하게 되었다.

이 사장은 "그때 김 회장님 얼굴 뵌 적은 몇번 안됐죠"라며 웃었다. 그때 그는 PC 게임 제작을 거들던 아르바이트생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그때 만난 이 사장의 첫 인상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김 회장은 "중학교 시절부터 게임 개발하겠다고 미쳐 있던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 여럿이 아마추어 개발팀(손노리팀)을 만들었죠. 함께 라면 끓여 먹으면서 게임을 만들고 있었는데, 원술이(김 회장은 이 사장 이름을 격의없이 불렀다)가 리더급이었죠"라고 떠올렸다.

그는 이어 "원술이는 호기심도 많고, 모험심도 강해 늘 남달리 뭔가를 해보려고 시도했었는 데 그게 매우 인상적이었죠. 나중에 한몫 단단히 할 거라고 여겼죠. 아쉽게도 원술이가 나중에 독립을 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손노리팀이 개발한 '다크사이드스토리'는 SK를 통해 1만5천장이 팔렸다. 당시 PC가 막 보급되는 시절이었다는 점에서 그 정도는 무척 많이 팔린 것이라는 것이 김 회장의 회고다.

◆선후배의 연으로

그 후 두 사람이 자주 만나기에는 김 회장(52)과 이 사장(33)의 연배 차이가 컸다. 때문에 가끔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곤 한 게 전부였다.

그러던 두 사람이 10년 인연의 끈을 이어가게 된 것은 이 사장의 결혼식이 계기가 됐다.

이 사장은 2000년 초 김 회장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다.

이 사장은 이 얘기를 떠올리면서 결혼식을 치른 정확한 해를 기억하지 못한 채 2000년이나 2001년 쯤이라고 얼버무렸다. 그가 좌우 돌아보지 않고 게임 개발에 얼마나 몰두한 채 달려왔는 지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 사장은 자신보다 게임 시장에 20년 정도 먼저 입문했던 선배이자, 업계의 '어른'인 김 회장에게 존경심을 느껴 주례를 부탁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 부탁을 받은 뒤 망설였다.

당시만 해도 이 사장은 PC게임 최고 개발자로 전성기를 누리던 유명인이었다. 예전의 아르바이트생이 아니었다. 그가 만든 게임치고 인기를 끌지 못한 게 없었다.

실제로 90년 후반 만든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무려 10만장이 팔렸다. PC 보급률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됐던 당시의 10만장 판매 기록은 현재로 따지면 100만장 판매에 맞먹는 것이었다. 용산 상인들이 PC팔면서 이 게임을 기본으로 얹어줬을 정도다.

김 회장은 "당시 원술이는 업계에서 최고의 주목을 받던 인물이었다"며 "자격지심이 들어 처음에는 거절을 했는데, 나중에 동경게임쇼에서 다시 또 부탁을 하길래 할 수 없이 들어 줬다"고 털어 놓았다. 당시 김 회장은 IMF 위기로 비틀거렸다가 재기의 발판을 다지고 있던 시기였다.

김 회장은 그 때 주례를 서면서 신부에게 신신당부한 것이 있다.

"신부도 게임회사 출신이어서 잘 알고 있겠지만, 게임 개발자인 남편의 남다른 생활패턴을 잘 이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또 신랑에게는 "게임 개발도 좋지만, 가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게임처럼 즐거운 가정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이 사장을 잘 아는 김 회장만이 할 수 있는 주례사였다.

그 후 두 사람은 두세 달에 한번씩 만나 셀 수 없을 만큼 술잔을 돌리면서 업계 얘기를 나누고 고민을 털어 놓는 선후배의 연을 키우게 됐다.

김 회장도 가끔 결혼기념일에 부부 동반으로 초청해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현재 이 사장이 "김 회장께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개발자는 나 일 것"이라는 얘기도 서슴없이 꺼낼 만큼 두 사람의 인연은 두터워졌다.

◆이제는 동업자로

그가 지난 98년 대표를 맡으면서 출범한 게임사 손노리는 2001년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현재 CJ인터넷)에 합병되었다. 이 때 이 사장은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의 게임사업본부장을 맡았다가 2003년 다시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사직하고, 손노리를 세웠다.

그 후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가 주름잡던 PC게임 시대가 저물고 온라인 게임 시대가 열렸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공작을 내놓지 못했다. 성공에 배고픈 채 무수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 사이 김정률 회장은 수년간 100억원을 쏟아 만든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를 2002년 상용화한 후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해 22개국에서 3천만명의 사용자를 모으면서 성공을 거뒀다. 또 올초에는 나스닥에 회사를 상장하면서, 현금 1천억원을 손에 거머 쥐었다.

이번에는 김 회장이 먼저 이 사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술자리에서 만나, 이 사장은 회사 운영에 대한 조언도 구하고, 업계 돌아가는 얘기도 나누던 중에 김 회장과 자연스럽게 의기투합되었다.

김 회장은 이 사장이 만들고 있다는 게임을 시시콜콜 따져 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열정과 재능을 믿고 돕겠다고 나섰다.

김 회장은 행사장에서도 "그동안 뜨지 못했던 원술이가 이번에는 뜰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을 몰랐다면 우스개 소리로만 들었겠지만, 그 말 한마디에는 김 회장이 이 사장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사장은 "김 회장님은 게임 내용이 뭔지도 모른 채 사람만 믿고 투자를 하겠다고 나섰다"며 "믿는 사람한테는 확실하게 밀어 주는 사람이 그 분"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김 회장께서는 맨손으로 지금의 회사를 키웠다"며 "사업수완과 추진력이 놀랄 만큼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회장님처럼 높은 위치에 가고 싶다"며 "저분이 저만큼 했으니까, 나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협회 회장 등을 하면서 개발사들을 많이 챙겨줬는데, 자신도 앞으로 그렇게 살고 싶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이 사장을 어떻게 볼까.

이 사장은 열정과 재능이 넘치는 순수한 개발자다. 호인이어서 주위에 따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경영자로서는 마음이 여린 것 같아 걱정스럽다.

김 회장은 "원술이는 맺고 끊는 것이 좀 부족합니다"라며 "지금은 40~50여명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 회사처럼 500~600여명의 회사를 운영하려면 좀 더 강인해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그 때를 대비해 앞으로 더 많이 배워가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그래도 원술이가 오기가 있어 머리를 밀면서 승리의 V자를 팠을 만큼 뚝심이 있다"며 그 모습을 높이 평가했다.

또 선배 경영자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로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뭔가를 얻으려고 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정도 경영을 가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10년에 걸친 두 사람의 인연이 앞으로 어떤 결실을 맺게 될 지 그 결과가 기다려진다.

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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