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기자]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글로벌 로봇시장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투자증권의 이수정 애널리스트는 11일 글로벌 로봇산업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생산 기준 세계 4위의 로봇강국이나, 국내 로봇 보급률은 이미 높고 글로벌시장은 중국의 부상으로 치열해지고 있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미국, 일본,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이 융합된 파괴적 기술의 발전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의미한다"며 "과거 산업혁명이 '기계근육'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4차 혁명에서는 '기계두뇌'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인공지능은 빠르게 인간을 대체해나갈 것이란 전망이다.
그는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개발에 따른 기계화 혁명, 2차 산업혁명은 전기 에너지 개발에 따른 대량생산 혁명,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지식정보 혁명이었다"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IoT,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이 융합된 사이버물리시스템(CPS, Cyber-Physical System)을 통한 만물 초지능 혁명"이라고 풀이했다.
◆로봇 산업, 주요국들의 수준은?
그는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전통적 산업이 파괴되면서 승자와 패자가 나뉠 것이 자명한데, 사회 계층 간, 업종간, 국가 간 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로봇 원천기술을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으로,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인공지능 등의 원천기술을 이끌고 있다고 이 애널리스트는 풀이했다.
흔히 혼동하곤 하는 인공지능과 로봇을 더 들여다 보면,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SW), 로봇은 하드웨어(HW)다. 인공지능은 전자과학, 로봇은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의 산물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지능형 로봇이 신성장동력으로 대두함에 따라 두 분야는 점차 분리할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다"며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는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을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특히 순수 로봇 제조업체보다 미국 IT 기업, 그 중에서도 구글에 주목했다. 지능정보기술은 기술력과 지식이 축적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에 가속도가 붙어 후발주자들이 이를 따라잡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로 미뤄 국가 단위에서는 원천기술 분야에 경쟁력이 있는 미국이 향후 지능형 로봇 산업을 선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로봇 강국으로 일컬어지는 일본에 대해 이 애널리스트는 "현재는 일본이 글로벌 로봇 산업의 강자이나, 앞으로도 유지될지는 점검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일본에서는 다수의 제조 및 서비스 업종에서 다양한 형태로 로봇이 활용되고 있으며, 로봇산업 시장규모는 1조6천억엔(2015년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일본경제산업성 자료).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등에 대응하고자 자동화 설비투자가 확대됐고, 노인층 부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서비스 로봇 개발 강화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그러나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다가 한국, 중국 등 신흥국 경쟁업체들이 대두하고 있으며, 서비스 로봇의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력 확보 유무 등 리스크 요인이 부각되고 있다"며 로봇산업 강자로서의 일본의 위상이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표시했다.
중국의 경우, 산업용 로봇의 최대 소비국으로서, 지난 2013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소비국으로 부상한 바 있다. 세계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14년 중국의 산업용 로봇 판매 대수는 5만7천대로 전 세계 22만대의 25%를 차지했다. 2015년 판매 데이터는 아직 공식 발표되진 않았으나, 전년 대비 32% 증가한 7만5천대에 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중국이 산업용 로봇의 최대 소비국으로 부상한 원인으로 이 애널리스트는 "제조업에서의 인건비 상승과 인력난 심화,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 등이 있었다"며 "이 중에서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은 중국의 산업용 로봇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추진기(Booster)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 내수 로봇 시장은 외국기업들이 70% 전후로 독과점하면서 프리미엄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중국 로컬기업들은 중저가제품을 생산하는 수준으로 기술력이 선진국 대비 약 10년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애널리스트는 "급성장하는 중국 로봇시장에서 로컬 업체들의 경쟁력은 '시스템 통합>완제품>핵심 부품' 순이 될 것"이라며 "시스템 통합 분야에서는 중국 로컬업체들이 상대적 우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수치상으로는 로봇 강국인데…
한국의 경우 수치로만 보면 로봇 강국 중 하나다. IFR에 따르면, 한국은 연간 3만4천800대를 생산하는 세계 4위의 로봇 강국으로, 로봇밀도(고용인구 1만명당 로봇설치대수)는 478대로 세계 1위다. 산업화 과정에서 자동차, 전기전자, 전지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다양한 제조업 분야의 생산자동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산업용 로봇의 수요가 커 나타난 결과다.
이 애널리스트는 그러나 "국내 산업용 로봇시장이 추가적인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제조업 성장이 둔화됐고, 이미 보급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수출 시장에서는 중국 및 일본과의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핵심부품의 국산화도 과제로 거론됐다. 부품 수입 의존률이 39%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로봇기술수준은 세계 최고수준과 비교해 80% 미만인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로봇산업협회 자료에 의하면, 로봇의 구동부는 세계 최고인 일본 대비 76% 수준으로 기술격차는 2.7년이고 대부분 스위스, 독일산 제품의 수입에 의존한다. 센서부는 세계 최고인 일본 대비 72% 수준으로 기술격차는 2.7년이다. 센서부분에서 중국은 한국의 93% 수준으로 한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시장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제어부의 세계 최고 국가는 미국으로, 한국은 미국 대비 78% 수준으로 격차는 2년이다. 한국 기술이 선진국에 가장 못 미치는 분야는 시스템 관련 소프트웨어(SW)기술로 아직까지 100%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서비스용 로봇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로봇청소기' 정도가 고작이다. 산업용 로봇에 비해 단기적으로 가시적 수익성이 보이지 않아 대기업들의 투자가 부진했기 때문이라고 이 애널리스트는 판단했다.
다만 한국은 서비스/지능형 로봇의 핵심 요인인 소프트웨어 쪽에서 후진국이지만 서비스 로봇 개발/보급 환경이 좋은 것은 다행스러운 점으로 꼽혔다. 네트워크 기반이 훌륭하고 IT에 친숙한 개발 환경이 양호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정책도 지능형 중심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이 애널리스트는 위와 같은 주요국들의 로봇산업 현황으로 미뤄, 과거 IT, 기계/중공업 산업에서 나타났던 한중일 기업 간의 경쟁환경이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재현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중장기 로봇 산업 성장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 로컬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경우,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이 시장을 견인하고 있어 시스템통합 (SI)업체가 우선적인 수혜주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일본은 중국과 경쟁하게 될 로봇 완제품 분야보다 핵심부품 공급업체를 육성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혜경기자 vixe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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