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배기자] "우리나라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레퍼런스(reference·도입사례)가 돼 달라면 손사래를 쳐요."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국내 소프트웨어(SW)들이 '2R'에 목말라 하고 있다. 바로 레퍼런스(reference)와 평판(reputation)이다.
국내도 마찬가지지만 해외 고객들 역시 SW 기업들에게 기능, 성능 이상으로 요구하는 것이 레퍼런스다. '제품이 좋은 건 알겠다. 그래서 너희 제품을 쓰는 고객이 어딘데?'라는 식이다.
미국 시장에 주력하고 있는 조규곤 파수닷컴 대표는 "기능을 비교하고 성능테스트를 하면 우리가 지는 적은 거의 없다"며 "(하지만) 평판이나 레퍼런스에서 걸린다"고 말했다.
◆"몰모트 되기 싫다"는 공공기관, 도움의 손길 구하는 SW기업
이 때문에 국내 SW 기업들은 공공기관이 첫 번째 사용 고객이 돼주길 희망하지만 정작 공공기관들은 꺼리는 게 현실이다. 실험대상이 되긴 싫다는 이유다.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장은 "중소기업에 기술이전을 해서 공공기관에 SW 제품을 가져가면 공무원들은 '레퍼런스가 어디냐'고 먼저 묻는다"며 "처음 적용하는데 레퍼런스가 어디 있느냐고 하면 나를 '몰모트'로 삼지말고 딴 곳에서 쓰면 '2번 타자'는 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고객이 됐다고 해도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해외 고객 확보 과정에서 협조를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공공기관이 특정 기업의 마케팅을 도와준다는 오해를 낳을까 하는 부담감 탓도 있다.
조규곤 대표는 "새로운 고객들은 기존 고객이 제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지만 이런 부탁(전화연결 등)을 하면 우리나라 대기업, 공공기관은 다 손사래를 친다"며 "보안 분야 SW이다 보니 그런 면도 있지만 그러다 보니 이 회사가 고객과 관계가 별로 안 좋은 게 아닌가 염려하기도 한다"고 아쉬워했다.
물론 고객 입장에서 검증된 제품을 쓰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심리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해온 SW 시장에서 우리나라 SW 기업들은 대부분 이제 레퍼런스를 만들어야 하는 '갈 길이 먼' 입장이다. 내수시장의 기반이 되는 공공기관이 레퍼런스가 돼 줘야 한다는 호소가 나오는 배경이다.
국방·항공 SW에 주력하는 이상헌 MDS테크놀로지 대표는 "최근 인도의 항공 내비게이션 시스템 회사에 SW를 팔러 갔는데 레퍼런스를 제일 먼저 요구하더라"며 "이쪽 레퍼런스는 사실 정부밖에 없어 레퍼런스를 쌓을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R&D 뿐 아니라 다양한 마케팅 지원도 필요"
레퍼런스와 더불어 해외 진출에 필요한 또 한 가지가 평판이지만 이마저 얻기가 쉽지 않다. 좋은 평판을 만들기 위한 마케팅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배 나모인터랙티브 대표는 "평판은 수상 내역, 해외 전시회 참가, 국제 학술지 게재 등 제품을 객관화시키는 과정"이라며 "이런 평판 확보에는 마케팅 역량이 작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해외 전시회에 나가보면 한국 기업은 거의 없다보니 세력을 형성하기도 어렵고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이 든다"며 "정부가 제품 R&D에 대해선 적극 도와주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마케팅 지원은 작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개별 기업의 평판이 곧 우리나라 SW 산업의 평판"이라며 "개별 기업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관심을 갖고 도와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국배기자 verme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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