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교체 소송에 발목 잡힌 재개발·재건축

[아이뉴스24 이수현 기자] 서울 주택시장에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진 가운데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이 시공사를 교체한 뒤, 소송에서 패배하는 사례가 연달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시공사를 교체한 책임이 조합에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 분담금이 늘어나 조합원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일부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DL이앤씨가 신당제8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1심 판결을 통해 조합에게 약 80억원과 그에 따른 이자비용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앞서 신당8구역 조합은 2020년 DL이앤씨를 시공사로 선정했으나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자 2021년 일방적으로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이에 DL이앤씨는 2022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1심에서 일부승소한 것이다. 현재는 2심으로 넘어간 상태다.

또 해당 판결로 인해 조합 소유 부동산 25필지에 대한 강제경매 결정이 이뤄져 경매 절차가 진행 중이다. 또한 2심에서 손해배상액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일부 인용(132억원)돼 조합 소유 부동산 5필지가 추가로 가압류됐다.

업계에서는 1심 판결에 따른 신당8구역 조합의 이자 비용만 월 8000만원 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소송이 장기화 할수록 조합원들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조합은 정상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 조합 소유 부동산 경매 및 가압류 법원 결정에 따른 약 219억원을 공탁해야 하는 상황으로, 미이행 시 사업의 추진 여부조차 확신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다른 현장에서도 시공사 교체 후 조합과 시공사 사이 소송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제3주구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시공사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9월 1심에서 승소했다. 2018년 반포주공1단지 제3주구조합은 공사비와 설계 등을 두고 우선협상대상자인 HDC현대산업개발과 갈등을 겪은 끝에 우선협상자 지위를 박탈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이에 반발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1심 법원은 조합이 146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HDC현대산업개발은 이 사업을 시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행이익)인 411억원을 지연손해금으로 전부 배상해달라며 항소를 결정,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에는 서울 서초구 방배5구역 주택재건축사업을 두고 조합이 시공 사업단인 GS건설과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에 총 525억원을 지급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3개 건설사가 방배5구역 조합을 대상으로 제기한 시공자지위확인소송과 관련해 화해 권고를 결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공사비가 상승하면서 조합 내 갈등과 시공사와 조합 사이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경기 침체에 인허가 물량이 감소한 가운데 소송으로 공급 일정이 미뤄질 경우 주택 공급 물량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손명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수도권 전체 정비구역 554곳 중 103개 구역이 소송 중이다. 그 중 서울은 419곳 중 81곳(19.3%)이 소송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분쟁 등에 따라 조합이 시공사 계약을 해지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이 결국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합이 시공사 계약을 해지한 후 벌어진 소송 상당수가 조합에 귀책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시공사 계약 해지를 고려할 경우 소송 비용과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