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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병의 통찰(洞察)] 트럼프 이후를 준비하자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사진=아이뉴스24 DB]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사진=아이뉴스24 DB]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

"평화시기는 사람과 경제를 게으르게 한다. 정부는 한눈을 팔고 있고, 공무원들은 그들의 존재 이유를 잊고 있다. 국경도 위협받고 있다. '평화의 역설'이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거대한 국제기구의 틀 안에서 부(富)와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이런 운 좋은 힘의 구조는 지난 10년 동안 뚜렷이 변했다. 미국의 위상은 약해졌고, 다른 나라들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모든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제 미국의 시기는 끝나가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하는 날, 미국과 세계는 매우 다른 것으로 바뀔 것이다. 그는 전임자들 같은 방법으로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는데 관심이 없다. 민주주의와 법치에 관심이 없고, 독재자를 존경한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은 심대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두 글은 트럼프 등장 이전과 이후에 미국 언론에 실린 것입니다.

평화를 뜻하는 팍스(Pax)의 실상은 '경제력과 군사력에 의한 체제의 유지'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공적 덕성(public virtue)에 바탕을 둔 삼권분립과 법치에 의한 대의제 민주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의 지성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의 이상이 유지될 지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장점이자 단점은 자신감입니다. 그는 자기 사업이 다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회계사의 판단입니다. 그동안 탄탄해 보이던 미국 경제가 트럼프가 취임한 지 두 달이 채 안 되어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우방들은 "미국은 자유 세계 리더 자격 잃었다. 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며 자기 살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손자병법의 진수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려면 경제를 먼저 챙기라 했습니다. 그 첫째가 속전(速戰)이고, 둘째가 현지 조달입니다. 전쟁을 오래 끌면 재정이 고갈되고,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지며, 백성들의 불만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미국은 베트남과 아프간에서 20년씩 전쟁을 치르면서 재정은 고갈되었고, 국민들은 지쳤습니다. 지금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런 양상입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전쟁으로 상한 국민들의 자부심을 다시 세우려는 슬로건으로, 베트남 전쟁 뒤 레이건이 한 말을, 트럼프가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트럼프의 공약은 한마디로, '내 돈 들여 남 좋은 일하는 것은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 방책이 전쟁 종식과 무역 적자 해소인데, 중동에서 가자 지구를 개발하겠다는 생각이나, 우크라이나에 희소광물을 달라는 것이 손자병법을 통독한 그 다운 전략입니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미국이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1972년 닉슨은 마오쩌둥과 손을 잡고 냉전 시대를 끝냈지만, 중국이라는 미래의 적을 키운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싼 제품에 맛을 들인 탓에 무역 적자는 쌓여갔고, 기술은 빠져나갔습니다. 중국은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트럼프는 중국을 이기려 하지만, 손자병법의 나라 중국도 패를 많이 쥐고 있어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팍스 아메리카나 이후(Post Pax Americana)

부시 전 대통령은 2009년 중국을 방문하여 "세계 경제 중심이 아시아로 넘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팍스'가 태평양을 건너온다면 어느 나라가 바톤을 이어받을까요?

일본인가? 1980년대만 해도 '팍스 자포니카'의 시대가 온다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1994년에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로선 세계 최초로 4만달러 벽을 허물었지만 거기서 멈췄습니다. '잇쇼켄메이(一生懸命, 평생 한 곳에 목숨을 거는 삶)'의 사무라이 정신은 세계 대전을 치를 만큼 나라를 키웠지만, 신분의 고착화와 폐쇄성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변화를 수용하기 어려운 마인드로는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령화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은 삶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를 잃고 있습니다. 일본은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중국인가? 덩샤오핑은, '미국을 이기려면 백 년을 더 기다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장기 집권을 꿈꾸는 시진핑은 인민들의 중화 열망을 부추겨 미국에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라는 괴물이 나타난 겁니다.

2020년 시진핑은 "소강 사회를 기본적으로 실현했다"고 선언합니다. '소강(小康)사회'란 의식주가 해결된 생활 수준을 말하는데, 목표의 평균치는 실현했지만 빈부 격차는 커졌습니다. '더불어 잘 살자'는 꿈이 의식주가 해결되자 빈부격차로 나타난 겁니다. 사회주의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이자, 한계입니다. 베이징대 장웨이잉 교수는 중국의 체제를 '정치는 일당독재, 경제는 국가기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시장이 정치에 부담이 되면 언제든지 통제에 나서는 나라라는 겁니다. 중국의 가장 큰 약점은 정보 조작과 폐쇄성입니다. 중국의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인민의 대표들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했던 시진핑은 황제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의 초등학생은 시진핑 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중화(中華)의 부활은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유독 중국의 젊은이들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는 '팍스' 시대를 열 수 없습니다. 그들의 행동 강령에 있듯이 그 이념을 실행하는 수단은 협의가 아니라 선동이고, 평화가 아니라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한국인가? 지금 한국의 경제력과 기술력, 문화 수준 등은 그런 기대를 갖게도 합니다.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나 활동을 보면, '팍스 코리아나'가 멀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정치도 지금 이 고비를 슬기롭게 넘기면 자유민주주의의 모델이 될 것이고, 경제도 트럼프의 파도를 잘 타고 넘으면 순항할 것입니다. 제 판단이 아니라 세계적 평가기관들의 판단입니다. 단지 평가기관들의 공통된 전제가 있습니다. 구조 조정입니다.

특히 노동 구조 조정의 최대 걸림돌은 우리 주변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사회주의적 생각들입니다. 그들이 꿈꾸는 기본사회는 시진핑의 소강사회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본'이라는 말은 상대적 개념입니다. '벌은 없고 상만 있는 학교'에서도, 상을 못 받는 아이의 상대적 박탈감은 마찬가지입니다. 전 국민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은 저소득국가가 채용할 수 있는 사회주의적 개념입니다. 옛 소련과 중국이 초기에 그렇게 성공하였지만, 어느 단계에 오르면 이 이론은 맞지 않음이 증명되었습니다. 기본소득과 빈부격차는 별개의 주제입니다. 세계 10대 경제국인 대한민국에서 기본소득을 논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문명 제국이 아닌 문화 강국으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은, 생각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 선입견 없이 사물을 보던 눈이, 자라면서 사물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면 '산은 산이 아니요…'라는 부정적 마음이 생깁니다. 여기서 생각이 멈춰버리면 나이가 들어도 부정적 관념을 붙잡고 자신이 정의롭다는 생각을 굳힙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잘 넘기면 사물은 다시 긍정적이고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한 외국인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옥중에 있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성숙해지려면 법을 중시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한국인들은 임계점에 이르면 야수로 변한다. 한국에서는 이 야수를 '민심'이라 부른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이번 계엄 사태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야수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숙해진 우리의 마음은 '산은 산이요…'로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트럼프 시대에는 새로운 동맹체제가 만들어질 것이라 합니다. 이해관계 없는 동맹은 없습니다. '미국이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주었냐'는 말은 결코 당당하지 않습니다. 6·25전쟁으로 미군 14만명이 희생되었고, 베트남전쟁에서는 한국군 5000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 가족들이 지금도 그들을 가슴에 묻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인들이 '건국의 아버지들'의 이상을 지켜나가는 한, 우리는 그들과 함께 가는 것이 당당한 자세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더 이상 사회주의 망상이 걸림돌이 되면 안 됩니다.

트럼프의 시대는 4년이면 지나갑니다. 그러나 신의를 지키는 나라라는 국격(國格)은 오래 남을 것입니다. 김구 선생은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비롯하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꿈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문화를 이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하늘의 뜻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서 당당함을 봅니다. 대한민국은 문명 제국(civilized empire)이 아니라 문화 강국(cultural powerhouse)이 될 것을 믿습니다.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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