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선훈 기자] 고용노동부가 우아한형제들 등 배달앱 업체들과 로지올(생각대로) 등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들에 안전모(헬멧) 관련 문제로 무더기로 과태료를 부과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위반했다는 명목이다. 이를 두고 고용부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법 적용을 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최근 잇따른 라이더(배달기사) 사망 사고로 인해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이 일제히 배달 라이더 안전 문제에 대해 업체들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업계는 라이더 안전 강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자칫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20여개 업체에 과태료 조치…업계 "소통 제대로 안 돼"
14일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최근 배달앱·배달대행 플랫폼 업체 20여곳을 대상으로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다. 고용부는 지난 10월부터 배달앱 업체들과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 28곳을 대상으로 산안법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업체들이 과태료 통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는 이번에 업체들을 대상으로 최초 등록 시 면허증·안전모 보유 여부 확인, 도로교통법상 안전 운전 관련 사항 주기적 공지 여부, 앱상 배달시간 제한 등 지나친 배달 독촉 여부, 이륜차 정비 상태 등을 다각적으로 점검했다. 현재 주요 업체들에 대한 점검은 대부분 끝난 상태로 고용부는 이르면 다음주 중, 늦어도 올해 안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고용부가 복수 업체들에 과태료를 부과한 것은 안전모 보유 여부 확인 항목과 관련해 업체들이 산안법 시행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 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 제673조1항을 보면, 이륜자동차로 물건의 수거·배달 등을 하는 사람이 이동통신단말장치의 소프트웨어에 등록하는 경우 이륜차를 운행할 수 있는 면허와 승차용 안전모의 보유 여부를 플랫폼사들이 확인하도록 돼 있다. 이는 라이더뿐 아니라 퀵서비스 기사, 택배기사 등 이륜차 운전자들이 광범위하게 포함된다.
플랫폼사들은 이에 따라 안전모 보유 관련 사항을 라이더들에게 안내했고 처음 플랫폼에 등록할 때 안전모를 인증하도록 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조사 대상이 된 대다수 플랫폼에 과태료 부과를 통지했다. 안전모와 관련한 세부 요건들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다만 일부 대형 업체들은 과태료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32조에는 '승차용 안전모'와 관련해 ▲무게 2kg 이하일 것 ▲상하좌우로 충분한 시야를 가질 것 ▲충격 흡수성이 있고 내관통성이 있을 것 등 안전모 관련 세부 요건들이 명시돼 있다. 이 역시 이륜차로 물건의 수거·배달 등을 하는 직종을 모두 포괄한다.
업계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실태조사 당시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과태료 부과 통지를 해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장 점검 당시에는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더욱이 최소한의 안전모 보유 여부 확인을 공지한 업체와 그조차 하지 않은 업체 간 동일한 과태료를 부과했는데 이 역시 이해가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더욱이 라이더들이 안전모를 플랫폼에 등록해 인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플랫폼사들이 안전모가 규정에 맞는지를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KC 안전인증을 받은 헬멧은 대부분 세부 규정에 부합하기는 하지만, 일부 헬멧의 경우 KC 인증마크가 헬멧 안쪽에 부착돼 마크 부착을 증명하기가 어렵다. 배달대행 플랫폼사의 경우 라이더들과 직접적인 위·수탁 계약을 맺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안전관리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금천구나 선릉역 등에서 라이더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산안법 관련 조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라며 이미 정해져 있는 법을 토대로 한 기준에 따라 현장 점검을 처음 대대적으로 한 것인데, 현장에서 비합리적이라는 목소리가 크다고 하면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라고 말했다.
◆고용부에 국토부·경찰청까지 라이더 안전 문제 '주목'
고용부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역시 라이더 안전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역시 배달앱과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들과 최근 잇따라 만나며 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이다.
국토부는 지난 1일 우아한형제들, 메쉬코리아(부릉 운영업체) 등을 대상으로 라이더 안전 문제를 논의하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AI 배차가 주요 논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I 배차란 인공지능(AI)이 라이더들에게 최적의 경로를 찾아 추천해 주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많은 경우 경로 추천 시 예상 배달 시간이 표시된다. 국토부는 일부 배달 관련 앱들의 AI 배차 시스템이 시간을 지나치게 촉박하게 표시하고 있다는 점을 주로 지적했다. AI 배차 시스템이 직선거리를 기준으로 시간을 정해 실제 주행 시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잦다는 점도 거론됐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최근 배달 라이더들을 대상으로 AI 배차 관련 실증조사도 진행했다. 일부 라이더들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벌였으며 실제 라이더들의 주행 장면을 블랙박스를 통해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국토부는 일부 라이더들이 AI 배차가 표시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교통 법규를 어기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AI 배차는 고용부에서도 지켜보는 부분이다. AI 배차가 지나치게 시간을 촉박하게 표시할 경우, 산업재해를 유발할 정도로 배달을 독촉하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배달 시간을 띄우는 것만으로는 '독촉'으로 볼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고용부에서도 조사를 통해 전반적인 측면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AI 배차를 지나치게 많이 거절할 경우 배차가 지연되거나 배달료가 줄어드는 등의 불이익이 가해진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배달앱 업체들은 이와 관련된 직접적인 페널티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라이더들은 이러한 이유로 인해 쉽사리 AI 배차 거부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울경찰청도 라이더들의 주행 중 스마트폰 조작금지 기능 도입과 관련해 지난달 배달업체들을 대상으로 의견 청취를 진행했다. 서울경찰청은 장기적 대책으로 이를 명문화하는 법률 개정도 검토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내년부터는 라이더들에게 적용되면서 사업자들의 라이더 보호에 대한 책임이 강화됐다. 안전사고로 라이더가 사망할 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처럼 라이더 안전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커지면서 업체들도 최대한 정부의 방침에 발을 맞추고 있다. 다만 과도한 규제가 자칫 시장 성장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부처들이 배달 시장의 현황에 대해 보다 제대로 파악하고 법을 집행할 때 보다 신중했으면 한다"라고 토로했다.
/윤선훈 기자(kre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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