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수기자] 지난 2014년 8월 국내에서 이용이 차단된 페이스북 게임이 1년6개월이 넘도록 열리지 않고 있다. 글로벌 게임이라는 페이스북의 입장과 국내서 서비스되는 게임은 사전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정부 입장이 충돌한 결과다.
페이스북을 통해 유통되던 PC 게임들이 사전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정부가 문제삼자 페이스북은 국내 접속 차단이라는 강수를 뒀다.
미국 밸브의 글로벌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에서는 한국어를 제공하는 게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은 사전심의를 받도록 해외 개발자들에게 요청하자, 이들이 아예 한국어를 제공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스팀 게임을 즐기던 이용자들이 고스란히 그 여파를 떠안아야 했다.
게임은 국경이 의미없는 산업이다. 미국서 유통되는 게임을 한국에서도 간단히 플레이할 수 있다.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확대됐다. 그러나 한국 게임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 있다. 정부 주도의 사전심의다.
90년대말 게임을 문화 콘텐츠로 보지 못하고 해로운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정부 주도의 사전심의 제도는 글로벌 시대인 2016년 시장 상황과 큰 괴리감을 보이며 게임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들린다. 미국의 민간협회인 ESRB, 유럽의 EPGI, 일본의 CERO 등은 모두 자율적으로 심의를 시행하고 있다. 반드시 등급을 받아야 한다는 법적 의무는 지지 않는다. 게임물의 사전심의를 법으로 강제한 한국과 다른 점이다.
정부 주도의 사전심의를 손보려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내 사전심의 제도에 반발한 애플과 구글이 오픈마켓 내 게임 카테고리를 차단하자, 모바일 게임에 한해서는 사업자가 자체 심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법 개정안이 2011년 통과됐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이뤄진 게임물 심의 기능이 일부분 민간에 위탁되기도 했다.
아쉬움도 남는다. 온라인, 모바일 등 플랫폼 구분없이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등급을 분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게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잠들어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박주선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현재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기약없이 계류돼 있다. 게임 정부 주도의 사전심의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다드'에 동참할 기회가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최근 시끌한 국내 정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 법안이 회기내 통과될 가능성도 낮아보인다.
문제는 이로인한 피해가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페이스북, 스팀과 같은 촌극이 2016년 다시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는 차세대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는 가상현실(VR) 산업에서다.
올해 출시를 앞둔 가상현실 헤드셋 '오큘러스 리프트'는 '오큘러스 쉐어'라는 글로벌 플랫폼서 콘텐츠가 유통되는 구조다. 페이스북, 스팀 등의 사례를 비춰볼때 이곳에서 유통되는 PC 기반 가상현실 게임들은 사전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 딱지가 붙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근 정부가 가상현실 분야에 1천800억 국고를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그 과실을 누리지 못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십수년 전 마련된 낡은 심의제도로 차세대 산업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조기 상실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정치권이 나설 때다.
문영수기자 m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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