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더타임즈는 최근 'MS를 위협하는 10대 천재가 등장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조금은 선정적인 제목의 이 기사가 초점을 맞춘 인물은 올해 열아홉살에 불과한 블레이크 로스(Blake Ross)였다.
스탠퍼드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블레이크 로스는 아직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주축이 돼 만든 파이어폭스(Firefox)는 지금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절대 아성이었던 브라우저 시장을 뒤흔들면서 '오픈소스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파이어폭스 돌풍'의 주역 블레이크 로스.
일곱살 때 심시티 게임을 하고, 열살 때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그는 이미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그는 대학 진학 전부터 파이어폭스 개발 작업에 참여, 파이어폭스 출시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기자는 로스와 두 차례에 걸쳐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최근 들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로스는, 의외로 기자의 질문에 성실한 답변을 보내왔다. 블레이크 로스가 국내 언론과 직접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이어폭스 돌풍의 한가운데 서 있는 '무서운 10대 천재' 블레이크 로스. 파이어폭스에 열정을 바친 10대 개발자의 다부진 포부를 들어보자.
블레이크 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함께 뒹굴며 지냈다. 게임에 대해 남다른 흥미를 갖고 있던 로스는 자연스럽게 컴퓨터 속 세상으로 빠져들어갔다.
특히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심시티(Simcity)에 몰두했다. 도시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인 심시티는 상당한 두뇌와 실력이 요구되는 게임. 하지만 그는 컴퓨터 천재답게 어린 시절부터 심시티 게임에서도 남다른 실력을 과시했다.
◆ 게임광에서 소프트웨어 천재로- 일곱살 때부터 심시티를 즐기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일곱살이면 사실 심시티처럼 '진지한' 게임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서기에는 다소 이른 나이 같은데, 그런 게임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 "내가 게임에 취미를 갖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어렸을 때 심시티와 킹스 퀘스트를 비롯한 게임 몇 개를 부모님께서 사다 주셨다. 나는 당장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이내 게임에 쏙 빠져버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물론 로스의 부모님이 사다준 게임 중에는 교육용 게임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자녀가 게임을 하면서도 동시에 공부를 하기를 원하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큰 차이가 없는 듯 하다. 어쨌든 로스는 어릴 적부터 여러 종의 게임을 공급해 준 부모님 덕에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친하게 됐다. - 당신이 개발자가 되는 데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것 같다. 혹시 부모님들이 컴퓨터 관련 직종에 종사하시는가?"그렇진 않다. 부모님들은 내가 몇 시간동안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어도 무엇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신다. 그렇지만 내가 비록 아이답지 않은 행동을 해도, 이를테면 어린 나이에 심시티 같은 게임에 빠져도 '내가 스스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존중해주셨다. 그 점에 대해서는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직업은 컴퓨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부모님들은 로스의 전폭적인 지지자다. 특히 어머니의 자녀 사랑은 남달랐다. 어머니는 로스가 고등학교 시절 여름방학마다 넷스케이프에서 인턴십을 할 때는 직접 차로 데려다주는 정성을 쏟기도 했다. 로스의 집은 휴양지로 유명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있다. 반면, 넷스케이프는 미국 서부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틀고 있다. 마이애미에서 실리콘밸리까지는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로스의 어머니는 더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도 "아들은 뭐든지 잘한다. 소프트웨어 뿐 아니라 피아노도 잘 치고 글도 잘쓴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식자랑을 했다. - 고등학교 때부터 넷스케이프의 스카우트를 받아 3년간 인턴생활을 했다는데, 그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 또 고등학생이 일하기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넷스케이프 및 아메리카 온라인(AOL)의 다양한 제품을 두루 다루면서 일을 배웠다. 그 중에는 넷스케이프 버전 6과 버전 7처럼 공개적으로 출시된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어른들 틈에 끼어서 일하는 것이 흔한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어색하지는 않았다. 컴퓨터 산업의 가장 큰 강점을 꼽으라면 나이와 경험, 교육수준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에 대한 열정과 해낼 수 있는 재능이다. 넷스케이프에서 만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나중에 파이어폭스 작업도 함께 했다. 기억에 남는 사람이라면…, 내 친구이자 성실한 조언자인 데이비드 하이야트를 꼽고 싶다. 그는 나와 함께 파이어폭스를 만들었다. 또, 소비자들이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깨닫고 이해하는 재능있는 기술자다." ◆ 열아홉에 벌써 소프트웨어 회사 경영 로스는 지금 스탠퍼드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전공은 컴퓨터 과학(Computer Science). 하지만 그는 그냥 공부와 리포트 작성에만 몰두하는 단순한 대학생은 아니다. 나이 열아홉에 벌써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조숙한 천재에게 '멀티태스킹'은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른다. - 컴퓨터 개발자로 계속 남았다면 고수익을 받으면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왜 대학에 갔나?"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넷스케이프에서 일했고 지금도 스탠퍼드 대학에 있으면서도 소프트웨어 회사를 하나 경영하고 있다. 여러가지 일을 함께 하면서도 두루 좋은 결과가 나왔다." - 공부와 파이어폭스 개발, 소프트웨어 회사 경영까지 정말 눈코뜰 새 없을 것 같다. 새로 만든 소프트웨어 회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회사이며 누국와 함께 일하고 있는가. 같은 과 친구나 넷스케이프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인가."넷스케이프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파이어폭스 프로젝트에서 나와 같은 팀에 있던 조 휴이트(Joe Hewitt)와 동업해 회사를 만들었다. 내 사업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히 말할 단계가 아니다. 파이어폭스와 연관된 것은 맞다. 처음 파이어폭스를 만들 때는 부모님 세대도 웹을 쉽게 '볼' (그는 자신의 인터뷰 답변에서 '바라본다'는 뜻의 'view'를 특히 강조했다)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였다.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푸는 사업이 될 것이다." - 공개 소프트웨어, 그 중에서도 오픈소스 브라우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수백 만명이 매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가슴 뛰는 일이다. 또, 오픈소스야말로 세계 각지 사람들이 인종, 교육수준, 문화, 나이를 불문하고 함께 쓰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로스는 파이어폭스에 대해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파이어폭스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브라우저"라면서 브라우저 시장에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할 것으로 자신했다. 그는 최근의 파이어폭스 돌풍을 일종의 '반사이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선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고객들이 파이어폭스를 '첨단 인터넷 기술'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로스는 파이어폭스가 '작지만 강한 브라우저'라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파이어폭스는 분신이자 자존심인 듯 했다. ◆ 파이어폭스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브라우저 - 파이어폭스를 만들기로 결심한 때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개발을 해보도록 용기를 준 사람이 있었나? 익스플로러를 능가하는 최고의 브라우저를 만들겠다는 욕심이라도 있었나?"파이어폭스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데는 넷스케이프에서 짜증나는 경험들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회사 내에서는 '같은 값을 주고도 형편없는 제품(넷스케이프)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 불만스럽다'는 얘기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실제로 당시 넷스케이프의 브라우저는 성능면에서 그리 뛰어난 편이 못되었다. 우리는 자랑스러워할 만한 제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파이어폭스를 시작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 데는 익스플로러보다는 넷스케이프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 파이어폭스 개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또 출시까지는 얼마나 걸렸나?"처음부터 파이어폭스를 만들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넷스케이프 인턴시절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함께 기존 프로그램 코드를 좀 능동적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게 6개월 후에 파이어폭스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하지만 그 무렵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참여도는 줄었다. 최초 프로젝트를 시작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2년이 약간 못 된다. 하지만 파이어폭스의 일부 기술은 프로젝트 전에 수년간 개발중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 기간을 모두 합하면 아주 오래 걸린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파이어폭스 프로젝트에는 모질라재단 사람들의 노력 외에도 열의 넘치는 자원봉사자들이 많다. 이들은 지대한 공헌을 했다. 프로젝트 안에서 나는 개발이라는 특별한 영역에만 한정해 일하지 않고 제품과 관계된 영역이라면 대부분 손댔다. 지난 여름에는 마케팅 전략를 세우는 데도 참여했다." - 파이어폭스 프로젝트의 목표는 무엇인가? 1.0 버전 출시로 그 목표를 달성했는가?"파이어폭스는 많은 사람들이 웹의 잠재능력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데서 시작했다. 익스플로러가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수록 바이러스 및 스파이웨어 제작자들의 명성 역시 함께 드높아 갔다. 시간이 갈수록 인터넷 사용이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작지만 빠른 브라우저를 만드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브라우저. 그것이 내 꿈이었다. 나는 1.0 출시를 통해 이것을 이뤘다고 자신한다. 브라우저를 써본 사용자들로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 '파이어폭스'라는 이름에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이름을 만들어낸 과정이 궁금하다. 파이어폭스란 이름은 맘에 드나?"원래 이 프로젝트 이름은 '피닉스'였다. 죽어서 생긴 재에서 다시 태어나 영원히 산다는 새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당초 프로젝트의 의도가 기존 브라우저의 코드를 기반으로 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닉스'란 이름이 상표권 침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시끄러워지자 비슷한 표현인 '파이어버드'(firebird)로 대신했다. 그러나 파이어버드 역시 다른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에서 쓰고 있어서 이미 그 이름은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였다." 결국 그들은 '파이어'라는 단어는 그대로 두고 뒷부분만 바꾸기로 했다. 이 때부터 이들은 '파이어' 뒤에 온갖 단어를 붙여 소리내 읽어보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파이어폭스'라는 이름이다. 블레이크 로스는 파이어폭스란 이름을 확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기자가 보기엔 파이어폭스란 이름 자체가 현재의 상황에 훨씬 더 잘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닉스가 상징적으로 딱 들어맞는 이미지라면, 파이어폭스는 브라우저 시장의 신흥 강자란 이미지를 담는 데는 훨씬 더 적격이기 때문이다. - 파이어폭스가 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이하 익스플로러)보다 두드러지게 뛰어난 강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끊임없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MS 익스플로러는 넷스케이프와 브라우저 전쟁에서 이긴 후 브라우저 시장은 장악했지만 능동적으로 시장을 지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시장 지배력이 워낙 강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팝업광고와 스파이웨어, 웜바이러스로 골치를 썩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파이어폭스를 선택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이 파이어폭스를 첨단 인터넷 기술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MS가 익스플로러 개발을 다시 시작하더라도 시장의 지배력을 되찾고나서 다시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사람들은 진보하지 않는 제품, 앞으로도 진보하지 않을 것이 뻔한 제품을 사용하다보면 신경질을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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