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정부가 올해 말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를 앞둔 상황에서 사실상 쌀 관세화 수용 방침을 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일 경기 의왕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열린 'WTO 쌀 관세화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에서 "국내 쌀 소비량이 감소하는 추세에서 의무수입량을 늘리는 것은 국내 쌀 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송주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때는 예외조항을 인정해 우리나라가 쌀 관세화를 미룰 수 있었다"면서 "내년부터는 쌀 관세화와 한시적 의무면제 2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자는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것으로 의무수입량을 줄일 수 있지만 시장개방에 따른 수입량이 급증한다는 부담이 있다. 후자는 수입량을 제한할 수 있지만 의무수입량을 늘려야 해 국내에서 소비되지 않는 물량이 늘어나는 데다 추가 개방을 수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19일 WTO로부터 5년간 쌀 관세화 의무를 한시적 면제하기로 한 필리핀은 앞으로 쌀 의무수입량을 지금보다 2.3배 늘리고 관세율도 40%에서 35%에서 낮추는 한편 쌀 이외의 품목에 대한 개방 폭을 확대했다.
송 연구위원은 "국내 쌀 산업보호를 위해 어느 대안이 더 유리한지 선택해야 한다"며 "관세화가 의무면제보다 수입량이 더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젠가 관세화할 때를 대비해 쌀 산업 발전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패널토의에서도 산업부와 농림부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의무면제보다 낫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산업부 박건수 통상정책심의관은 "우리나라는 현재 관세화와 관세화 의무 한시적 면제 두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WTO 농업협정에는 농산물에 대한 예외 없는 관세화 원칙을 명시하고 있어 우리나라 역시 이를 이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림부 김경규 식량정책관도 "우리나라가 20년간 쌀 관세화를 유예하는 동안 국내 쌀 소비량이 감소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의무수입량을 늘리면 국내 쌀 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쌀 산업 발전에 필요한 핵심 요소를 발굴하고 정책을 세우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입장에 농민단체는 강력 반발했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쌀 관세화 유예종료는 관세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농업협정문 어디에도 2015년부터 관세화 의무가 발생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쌀 협상을 위해 국회-정부-농민이 함께 협의하는 WTO 삼자합의체 구성, 비준동의안 수준의 국회 사전처리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 관문을 거친 후 그 결과를 보고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며 "처음부터 관세화로 전환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결정하고 협상장에 나서는 것은 자충수를 두는 것"라고 꼬집었다.
장 부소장은 또 "현상유지를 포함해 최선의 해법을 찾는 것은 논리보다는 정부의 적극적 통상협상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언급했다.
한편 이날 패널토의에 나선 전문가들은 현재 고려 가능한 대안은 관세화 또는 의무면제를 통한 관세화 유예의 두 가지 방안이 있으나, TRQ 증량의 부담을 감안할 때 관세화를 선택하고 고율관세 산정 및 쌀 산업 정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공청회에서 제기된 의견과 그간 진행된 지역 설명회, 토론회, 전문가 포럼 등의 논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리 쌀 산업에 최선의 선택이 되는 방향으로 쌀 관세화 문제에 관한 정부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후속조치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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