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0일 긴급할당관세(물가안정 등을 위해 기본 관세율의 40%포인트 범위 내에서 한시적으로 세율을 낮춰 적용하는 탄력관세제도)를 적용해 수입 설탕 완제품 10만톤을 무관세로 들여오기로 했다.
과녁엔 두 개의 표적이 놓여 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하나는 액면 그대로의 설탕 값, 다른 하나는 설탕 전쟁으로 에둘러 묶일 밀가루 값이다.
◆설탕과 빵·과자값 묶는다
앞서 국내 3대 제당 업체 중 하나인 CJ제일제당(대표 김진수)은 8월 1일자로 설탕 출고가를 평균 8.3% 인상했다. 설탕의 원료가 되는 국제 원당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에서다.
가격 인상에 따라 공장도 가격 기준 하얀 설탕 1kg은 1천109원에서 1천196원으로 7.8% 값이 올랐다. 15kg은 1만4천197원에서 1만5천404원으로 8.5% 가격이 조정됐다. 설탕 값을 올렸지만 CJ제일제당 측은 여전히 "가격 인상 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정부는 하반기 정책 중심을 친서민·물가안정에 두고 있다. 설탕과 설탕을 쓰는 빵, 과자, 아이스크림 등 체감물가에 큰 영향을 주는 제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는 걸 원치 않는다. 할당관세로 세율을 대폭 내려 수입 설탕 완제품과 국산 설탕 사이에 경쟁을 붙인 배경이다.
수입 설탕 완제품 가격은 원당을 들여와 가공해 파는 국산 설탕보다 40% 남짓 저렴하다. 이번 결정으로 완제품에 대한 관세가 사라지면 수입산 설탕의 가격 경쟁력이 한층 높아진다. 제과·제빵 업계의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할당관세 적용 대상(쿼터)으로 정한 10만톤은 국내 제당 3사(CJ제일제당·삼양·TS대한제당)가 연간 생산하는 설탕(100만톤·대한제당협회)의 10% 수준이다. 업계에 큰 타격을 줄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가격 인하를 압박하기엔 충분한 양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시선이다.
◆설탕으로 밀가루 값 묶는다?
시장 일각에선 여기에 더해 '숨은 뜻'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당 3사가 사실상 제분 시장(CJ제일제당ㆍ삼양 · 대한제분)도 나눠 갖고 있다는 데 착안해서다.
풀이하면, 설탕 값을 올려도 큰 수익이 없도록 강력한 정책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다음 차례인 밀가루 값 인상 카드는 아예 생각지도 못하게 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정부는 6월 이후 두 달 새 밀 선물 시세가 70% 이상 오르는 등 최근 국제 밀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런 흐름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세계 3위의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가 기상 이변을 이유로 연말까지 곡물 수출을 금지했지만, 미국 등 주요 밀 생산국의 작황이 좋고, 세계 곡물 재고량도 풍부해 수급 불안이 길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상품 가격을 좌우하는 환율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금융위기 이후 운송비용과 국제 원유 가격도 비교적 안정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밀 값 오름세가 '애그플레이션'(Agflation·곡물가격이 뛰어 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그간 국제 원자재 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단기 가격 상승을 이유로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품목의 가격을 올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를 펴왔다.
반면 업계에서는 설탕 관세로 압박해 밀가루 값을 묶어두려는 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CJ제일제당 측은 "아직 2~3개월분 정도 미리 사둔 비축 물량이 있어 당장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3개월 후에도 지금과 같은 밀 시세가 유지된다면 4분기 이후 인상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원 관계자 역시 "밀가루 값은 80%가 원재료 가격인 만큼 현재 국제 밀 시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제분업계가 통상 수매와 운송, 생산 기간을 고려해 석 달치 밀을 비축해둔다"며 "현재는 10월분까지 밀가루를 생산하기 위한 원료를 확보해 둬 당장 가격 인상을 고려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향후 현재와 같은 시세로 계속 밀을 사들이게 된다면 11월부터는 인상분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정부 "설탕은 설탕, 밀가루는 밀가루"
정부는 그러나 설탕과 밀가루를 연계해 들여다보고 있다는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설탕 완제품에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것과 밀가루 가격을 올리는 문제는 완전히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긋는다.
재정부 변상구 관세정책관은 "원당 가격 인상으로 국내 설탕 가격이 올라 제과·제빵 업체의 부담이 커졌다"며 "관련 업계가 보다 싼 값에 수입 설탕을 쓸 수 있도록 해 물가 인상폭을 줄이자는 게 이번 결정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치는 밀 가격 등락과는 무관하다"며 "곡물가가 급등할 경우에도 할당관세를 적용할 수는 있지만, 곡물은 관세가 매우 낮아 실효가 적고 현재로서는 검토하고 있는 내용도 없다"고 말했다.
이억원 물가정책과장 역시 "1일자로 국내 설탕 가격이 인상돼 빵과 과자 등 설탕을 쓰는 제품 가격이 뛸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수입 설탕 일부의 관세를 면제하기로 했다"며 "밀가루 가격 인상 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설탕 완제품 관세율(35%)은 공산품 관세(8% 안팎)와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이어서 제과·제빵 업계의 부담이 컸다"며 "이번 조치로 빵과 과자 등 식품물가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정은미기자 indi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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