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나 블로그를 사용하다보면 간혹 '정'을 끊지 못해 곤란한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필요해서 메신저를 서로 연결했는데, 조금 지나고 보니 상대방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과감하게 연결을 끊지는 못한다. '매정하다'고 욕을 먹을 것 같아서다. 솔직히 말해, 기자도 이런 경험이 꽤 있다.
구체적 상호관계란 '즉각적으로 주고 받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친구에게 밥을 한번 샀다고 하자. 구체적 상호관계가 지배하는 사이에선 밥 얻어먹은 친구는 다음에는 반드시 내게 밥을 사야 한다. 그래야 관계가 제대로 유지된다. 철저하게 '주고 받기(give and take)'식으로 연결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쓸 돈이 궁한 학생시절에 이런 관계가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선후배 개념이 생기면서 대인관계가 조금 달라지게 된다. 내가 후배에게 밥을 사면 그 후배도 자신의 후배에게 밥을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한테 바로 보답하진 않겠지만, 공동체 내의 다른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퍼트남은 '일반적 상호관계'라고 불렀다.
퍼트남은 일반적 상호관계를 기반으로 한 사회가 구체적 상호관계로 뭉친 사회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상호 신뢰가 더 돈독하기 때문이다. 물물교환보다 화폐 경제가 더 효율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관계는 소셜 미디어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다. 서로 동의해야 일촌이 성립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뿐 아니라 블로그에서도 '구체적 상호관계'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초기에 포털의 블로그를 이용했던 기자는 "이웃추가 부탁드립니다"는 글들 때문에 꽤나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적지 않다. "내가 널 이웃 추가했으니, 너도 추가해야지"란 무언의 압력이었다.
최근 들어 인기를 누리고 있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이런 부분에서 다소 자유로운 편이다. 최근 트위터를 사용해 본 기자는 '구체적 상호관계'를 강요하지 않는 '팔로잉'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또 내 쪽에서도 굳이 상대방의 동의를 구할 것 없이 그냥 마음에 드는 트위터를 찾아서 팔로잉하면 된다.
소셜 미디어가 발전해나갈수록 '구체적 상호관계'에서 '일반적 상호관계'로 바뀔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내가 누군가와 일촌을 맺었는데, 어느 순간 상대방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될까? '구체적 상호관계'가 강조되는 소셜 미디어라면 간단하게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젊은 층에게는 인기를 누린 반면, 상대적으로 나이든 사람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한 것도 이런 시스템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체적 상호관계'로 엉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것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감정적인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기자 역시 블로그에서 이웃관계를 무시하거나 차단하는 것보다, 트위터에서 '언팔로우'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옥스퍼드출판부가 16일(현지 시간) '올해의 단어'로 '친구 삭제(unfriend)'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언프렌드'는 페이스북 같은 사이트의 친구 목록에서 삭제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라고 한다. '언프렌드'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는 걸 보면,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 목록에 올렸던 친구를 다시 삭제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유용할 것 같아서 '친구'로 등록하거나, '팔로잉'을 했는데, 생각처럼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생길 테니 말이다. 게다가 트위터에서는 "내용은 괜찮은데, 너무 많은 글을 올려서 불편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엔 자신의 건강한 트위터 생활을 위해서도 과감하게 '언팔로우'를 할 필요가 있다.
소셜 미디어가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선 이런 감정적인 부분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친구 삭제'를 당해도 상처받지 않고, 또 유용하지 않을 땐 '친구 삭제'를 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나도 오늘 저녁엔 사이버 공간의 불필요한 친구 관계를 과감하게 정리해야겠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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