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 행보를 보이며 정치 현안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껴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친이계를 비롯해 당 지도부를 향해 한 마디 말문을 열자 당내가 술렁이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쓴소리가 파문을 일으키자 당은 부랴부랴 확산 차단과 수습에 나서 당 안팎으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중량감을 재확인했다.
박 전 대표는 5일 5개월여만에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했다. 지난 주말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국회에 폭력사태가 벌어진 직후 열린 당 긴급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법안들이 지금 국민에게 오리혀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며 "당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당 지도부를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이는 친이계와 당 지도부를 겨냥한 것으로 쟁점법안 처리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데 대한 강한 경고성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한나라당 172석중 60여석을 차지하고 있는 친박계의 수장인 박 전 대표가 친이계와 당 지도부를 향해 일침을 가하자 여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박희태 대표 등 지도부는 즉각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며 확산 차단에 나섰지만 박 전 대표의 파괴력을 재차 실감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대표는 6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연속 출연해 "법안 자체의 내용이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다는 게 아니고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절차성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안다"며 "대화와 타협을 끝까지 해보라는 것"이라고 박 전 대표 발언의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그는 "의원총회를 거쳐 통일된 의견을 갖고 홍준표 원내대표가 지금 야당과 협상 중으로 또 다른 의견을 낸다든지 당내 이견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172석을 가진 거대정당이라 어떤 문제가 나왔을 때 한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친이재오계인 공성진 최고위원은 5일 CBS라디오에서 "박 전 대표가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오해 아닌 오해가 일파만파로 번졌을 것"이라면서 "예민한 시기여서 발언 자체의 파괴력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당 지도부는 적극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이러한 해명 자체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는 모습이다.
친박계도 사태 확산 차단에 나섰다. 친박계 허태열 최고위원은 이날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강행처리가 될 상황이 아니고 여야 대화가 복원된다고 하니,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안심을 줄 수 있는 정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허 최고위원은 "그런 차원에서 국회 현안도 처리하는 것이 옳지 않겠냐고 한 것"이라며 "정치적 의도를 갖고 '새해에는 행보를 적극 할 것이다'라는 여러 억측이 나오는데 그렇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당장 오는 4월 재보선 공천이 걸려 있고, 계파간 2010년 지방선거를 향한 물밑 움직임이 본격화된다. 때문에 2009년은 또 다시 양 계파간 공천 신경전이 불가피한 상황.
특히 친박과 사사건건 대립했던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 의사를 나타내는 등 친이-친박 갈등을 예고하고 있어 이제는 당내 중요한 현안마다 박 전 대표가 자신의 목소리를 점차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민철기자 mc07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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