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권용삼 기자] "이제 총파업 해결을 위해 이재용 회장이 직접 나서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위원장이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손 위원장은 이날 "사측은 아직까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경영자들은 여전히 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재용 회장은 본인이 이야기한 '무노조 경영 폐기'의 약속을 꼭 지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최초 총파업이 진행되고 24일이 지난 시점이지만 이 회장은 정작 이 사태에 아무런 입장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8일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노조 총파업에 돌입한 전삼노는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경기도 기흥캠퍼스 인근 회의실에서 사측과 임금 인상, 성과급 제도 개선 등의 사안을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지난달 31일 최종 결렬을 선언했다. 이번 집중 교섭 기간 노사는 일부 안에 대해 견해차를 좁히기는 했으나, 협상 막판에 노조 측이 현금성 포인트 지급을 요구하면서 절충점을 도출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노조는 △성과급 제도 개선 △노동조합 창립 휴가 1일 보장 △전 조합원 기본 인상률 3.5%(성과급 인상률 2.1% 포함 시 5.6%) △파업에 따른 조합원 경제적 손실 보상 등을 요구해 왔다. 이에 사측은 △노조 총회 4시간 유급 노조활동 인정 △전 직원 50만 여가포인트 지급 △향후 성과급 산정 기준 개선 시 노조 의견 수렴 △연차 의무사용일수 15일에서 10일로 축소 등을 제시하며 노조 측 안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다만 노조가 교섭 막판에 삼성전자 임직원 자사 제품 구매 사이트인 '삼성 패밀리넷' 200만 포인트를 추가로 요구하며 교섭이 결국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파업에 따른 노조원 임금 손실을 우회적으로 보전받기 위한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어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사측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사측이 여가포인트(웰스토리)에서 패밀리넷 포인트로는 절충하는 듯했지만, 50만원과 200만원의 간극을 좁히지는 못했다"며 "우리는 그거(패밀리넷 포인트 200만원)라도 준다면 일선으로 돌아가 일할 각오도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성과급 제도와 베이스업(공통 인상률) 0.5% 인상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부위원장은 "성과급 수준을 예상할 수 있도록 제도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요지"라며 "월급 기준 평균 3만4000원 수준인 베이스업 0.5% 인상의 경우도 돈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 삼성전자에 헌신한 우리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선 전삼노가 과도한 요구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협상 결렬' 책임을 회사로 돌리면서 집행부 말만 믿고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만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됐단 분석이다. 실제 지난달 8일부터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적어도 대리급은 400만원, 과장급은 500만원의 임금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아울러 오는 5일 '대표 교섭권' 만료를 앞두고 전삼노는 기타 단체들과의 연대 형식으로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지만, 결렬된 노사 협상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현재 삼성전자에는 사무직노조(1노조), 구미네트워크노조(2노조), 삼성전자노조 동행(동행노조·3노조), 전삼노(4노조), 디바이스경험(DX)노조(5노조) 등 5개 노조가 있다. 만약 이들 노조 가운데 한 개의 노조라도 교섭을 요구하면 전삼노는 쟁의권을 잃게 돼 더 이상 합법적인 파업이 불가능하다.
앞서 동행노조는 지난달 26일 사내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기대했던 대표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통한 협상이 회사와의 첨예한 대립으로 더 이상 합리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며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강성 노조의 힘은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실망만 안겨줄 것"이라고 전삼노의 파업을 비판한 바 있다. 이에 향후 동행노조의 교섭권 요구 여부에 따라 당초 노사 간 논쟁이 '노노'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전날 열린 삼성전자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나온 사측의 "반도체 생산 차질 없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언급이 나왔다. 이 부위원장은 "반도체 공정은 당장 타격이 나타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일은 모르는 것"이라며 "현재 우리가 확인하기로는 반도체 공정 중 필름 공정에서 문제가 생겨 웨이퍼 1000랏(lot)이 대기 중"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김재원 전삼노 화성대의원은 "반도체 공정은 기능검사가 필요한데, 현재 정확한 계측이 안 되고 있다"며 "웨이퍼 불량이 판단이 안 된 채 생산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조기술센터에서 이미 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며 "TAT(실리콘 웨이퍼가 공정 과정을 거쳐 반도체 칩의 형태로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가 3주 가량이라 20여일이 지났으니, 곧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사측은 전날 진행된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파업이 조기 종결될 수 있도록 노조와 지속적으로 소통과 협의를 하고 있다"면서도 "파업에도 고객 물량 대응에 전혀 문제가 없다. 노조 파업이 지속되더라도 경영과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적법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 일각에선 노조의 이번 이재용 회장 자택 앞 기자회견을 두고 사회적 이슈화를 통해 떨어진 투쟁의 동력을 다시 결집시키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현재 이재용 회장이 '2024 파리 올림픽' 참관과 비즈니스 미팅 등을 위해 유럽 출장 중임에도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한 것이 그 이유라는 주장이다.
앞서 전삼노는 지난달 8일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 당시 "이재용 회장은 '바지 회장'일 뿐"이라며 정현호 사업지원 TF 부회장의 책임을 강조했다. 당시 전삼노 집행부는 결의대회 단상에서 정현호 부회장의 사진을 찢는 퍼포먼스를 연출한 바 있다.
이 밖에 이날 기자회견이 길어지면서 다소 격한 발언도 나왔다. 이 부위원장은 "30년 반도체 1위는 이재용 회장이 만든 게 아니다"라며 "그 자는 감옥에 있었고 노동조합을 탄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의 단체급식, 식자재유통 및 그룹 사내 쇼핑몰 운영 업체인 삼성웰스토리의 수익금은 결국 이 회장에게 간다"고 덧붙였다.
전삼노의 이런 발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서 지난달 8일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 당시에도 이재용 회장을 비롯해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 김기남 고문 등 주요 경영진의 이름을 일일히 거론하며 '노동자 무시하는 오인방, 에라이 XXX'와 같은 날선 구호를 제창한 바 있다.
한편 전삼노는 향후 투쟁 계획에 대해 △현장 장악력 강화·챌린저(대의원 대리) 제도 도입 △쟁의기금 마련 △시민·사회·인권단체, 학계, 법조계, 국회와의 연대 △산업재해 은폐에 따른 집단 산재 추진 등을 골자로 내세웠으며 오는 5일 국회에서 추가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권용삼 기자(dragonbu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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