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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게이머 권리장전의 날"


 

"게이머 권리장전의 날이죠."

공정거래위가 16일 11개 온라인게임 사업자의 이용약관과 운영규정에 대해 약관법 위반 판정을 내리자, 그동안 심사 과정에 소비자 대표로 참석해 왔던 정준모 변호사가 밝힌 소감이다.

실제로 이날 공정위는 11개 게임사의 약관 중 문제가 될 수 있는 12개 조항을 도마에 올려 놓고 그 중 8개 조항을 무효로 판정했다.

그의 소감대로 이번 공정위의 판정은, 온라인 게임 사업자가 게임세계 속의 감시자 노릇을 하면서 전횡을 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한 획기적인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단, 공정위는 '아이템 등의 현금거래 금지조항'에 대해서는 지난 2000년과 마찬가지로 유효한 것으로 인정해, 아이템 거래 양성화 논란의 교착 상태는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전횡은 그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용약관을 놓고 '노비문서'로 부르기도 했다. 게임사가 고압적이고 편의적인 내용으로 약관을 만들고 운영정책을 펴왔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이번에 위법 판정을 받은 약관 조항 중에는 '회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한하여 본 정보(이용자 간의 모든 채팅내용)를 열람하도로 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 약관은 사업자가 임의대로 개개인의 채팅 내용을 열어 볼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에서, 사생활 침해는 물론이고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다분했다.

무효 판정을 받은 또 다른 약관 조항에는 사업자에 ▲아이템 현금거래 적발하면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계정을 영구압류하고 ▲게임의 기획이나 운영상에 필요하다고 판단된면 이용자들의 계정을 정지시키고 ▲이용자가 경미한 의무 위반에도 사전통보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등의 고압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공정위는 "아이템 현금거래 행위가 제재 대상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사안의 경중을 구별하지 않고 1차 적발시 곧바로 계정을 영구압류하는 것은 과다한 제재"라고 말했다.

또 "사업자가 게임의 기획이나 운영에 필요하다고 사전에 고지한 적 없이, 이용정지 기간도 제대로 명시하지 않은 채 계정을 정지시키는 것은 사업자 스스로가 상당한 이유없이 이행해야 할 급부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권한 남용이라는 얘기다.

◆'책임은 질만큼 져라'

반대로 게임사는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최소화하는 약관을 유지해 왔다.

실제로 위법으로 판정된 약관 내용에는 '회사는 회사에서 명백히 인지할 수 없는 사유로 인한 접속지연과 서비스 이용자들이 통칭하는 랙으로 인한 손해(아이템 분실, 경험치 손실)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이는 회사가 명백히 인지할 수 없는 사유로 인한 손해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으로 규정해 사실상 입증이 곤란한 접속 지연 등의 책임을 이용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시키고 있다.

또 '귀책사유로 게임이 중단되어도 4시간 이상 연속해서 중지되거나 장애가 발생한 경우에 해당 시간의 3배에 해당하는 이용시간을 무료로 연장해 준다'는 조항도 4시간 안에 복구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점에서 더 줄일 수 있다.

이외에도 미성년자가 법적대리인의 통장 등으로 이용요금을 지불했다고 해서 이를 사후동의(민법상의 미성년자 계약 취소권 포기)로 간주한 것도 부당 조항.

◆아이템 양성화 논란은 '교착상태'

이번 심사에서도 공정위는 '아이템 등의 현금거래 금지 조항'은 유효하다는 2000년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해 아이템 양성화 논란은 여전히 종전과 다름없는 '교착상태'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아이템 거래 시장은 올해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될 만큼 양성화돼 있지만, 법적으로는 근거가 없는 법외의 활동으로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게임사는 약관을 근거로 현금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공정위는 "사업자의 지적재산권 보호, 현금거래로 인한 부작용 등을 감안할 때 약관법 위반으로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아이템 현금거래에 관한 법률이 없으므로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현금거래 허용 여부는 사업자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며, 이를 무효로 판단할 만한 약관법 조항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템 양성화 논란은 결국 아이템 거래 자체를 법외의 활동에서 법내의 활동으로 포함시키는 과정의 논의를 통해 결판이 날 전망이다.

◆남은 과제

공정위는 이 같은 내용의 시정 권고를 2개월 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해당 게임사에 전달하고, 이 기간 중 해당 게임사가 약관 내용을 시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해당 게임사가 이에 불응하면 행정지도인 시정명령을 내리게 된다.

공정위 약관제도과 조성국 과장은 "이미 게임사들과 오랜 동안 충분히 협의를 해 왔기 때문에 불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다고, 게임사가 이번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행정소송을 벌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실제로 공정위와 충분한 얘기는 다 나눴다"며 "절차상의 문제가 적잖게 지적되고 있어 회원사 중에 문제를 제기하면 협회도 이를 지원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행정소송을 벌이게 되면 이번 시정조치의 적용이 상당기간 뒤로 미뤄질 수 밖에 없다.

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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