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근로자의 사망·사고 시 경영진을 1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기업들의 경영 활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내년 1월부터 근로자 50인 이상 기업, 오는 2024년에는 50인 미만 기업까지 적용되면서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여야는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법을 통과시켰다. 재적 의원 266명에 찬성 164명, 반대 44명, 기권 58명이었다. 그동안 경영계가 요청한 핵심 사항을 대부분 반영하지 않은 채 중대재해법 처리를 강행하자 기업들의 반발은 극에 달한 상태다.
앞서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지난 7일 회의를 열고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시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인이나 기관도 50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노동자들이 여러 명 다치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경영책임자가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 벌금형을, 법인이나 기관은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또 법 시행 유예기간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 3년이 주어졌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경영책임자의 범위는 대표이사 또는 안전관리이사로 정해졌고, 공무원 처벌 부분은 제외됐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재해를 발생시켰을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원청 기업이 용역·도급 계약을 맺은 하청 기업 직원의 사고에 대한 책임도 공동으로 지는 방안도 확정됐다. 법 시행은 법안 공포 후 1년 뒤다.
일단 50인 미만 기업은 법 시행 후 2년 유예된다. 50인 미만 기업의 경우 법 시행 후 4년 유예한다는 당초 원안보다는 후퇴한 것이다. 이는 정의당과 노조의 반발이 심하자 땜질식 수정을 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경영계는 그 동안 중대재해법이 헌법과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 과임금지 원칙 등에 크게 위배돼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과 산업현장 관리에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안이라고 보고 법안 제정을 꾸준히 반대해 왔다.
특히 이 법안이 여전히 징역형의 하한(1년 이상)이 설정돼 있고, 법인에 대한 벌칙수준도 매우 과도한 데다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한 경우 처벌에 대한 면책규정도 없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최고의 처벌 규정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중대재해법의 모델이 된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이 13년에 걸친 오랜 기간의 심층적인 논의와 평가를 통해 제정된 것에 비해 노조 의견에만 치우쳐 졸속으로 법안을 만든 것이란 비판도 쏟아 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아랑곳하지 않고 중대재해법 제정 추진을 강행하자 경영계는 "정치권이 정치적 고려만을 우선 시하면서 그간 요청한 핵심 사항을 대부분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연일 비판 강도를 높여갔다. 여러 경제단체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강력한 기업처벌"이라며 "인적·재정적 여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너무나 가혹한 법으로,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정치권은 중대재해법 심사를 거치면서 일부 안에 대해선 처벌 수위를 다소 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정의당과 노동계의 반발을 일으켰다. 노동계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차별을 두겠다는 노골적인 차별 조장이자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재해살인 방조 합의는 재논의돼야 한다"고 비난했다.
중대재해법을 두고 기업과 노동계가 모두 만족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정치권이 법안 제정을 강행하면서 향후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대재해는 하청에서 발생했는데 원청만 처벌 ▲국내 중소기업 수주 큰 폭 감소 우려 ▲중대재해 발생 시 전문성 있는 근로감독관 대신 경찰이 수사 ▲AI도 준법대상을 알기 어려울 만큼 준수의무가 광범위하고 모호 ▲기업의 생산기지 해외이전으로 다른 나라 국부 창출에 기여할 것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추광호 전경련 상무는 "우리나라는 중대재해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강도가 이미 세계적으로 강력한 수준"이라며 "영국 등 해외사례를 볼 때 처벌 강화의 산업재해 감소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책 입안 시 기업에게 강한 처벌을 부과하는 것보다는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법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모순된 부분도 적지 않다"며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원청기업의 책임은 그대로 둔 탓에 하청업체 근로자 사고는 오롯이 원청기업의 책임이 되는 구조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경영계는 ▲중대산업재해 정의를 '다수의 사망자가 반복해서 발생한 경우'로 수정할 것 ▲경영책임자에 대한 하한설정의 징역형(1년 이상) 규정 삭제해 상한만 규정할 것 ▲경영책임자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한 경우 또는 의무위반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규정 마련 ▲법인에 대한 벌금수준 하향 및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3배 이내로 제한 ▲중소기업에 대한 법시행 유예 시 원청의 책임규정 적용제외 등을 반영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영계는 이날 중대재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크게 낙담하며 강한 유감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여야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법, 정인이 방지법 등을 처리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원·하청 동시 처벌과 처벌 수위의 상향 조정은 헌법상 자기책임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중소기업의 수주 감소에 따른 경영악화, 하청 대신 자동화 등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도급 등 탄력적인 외부 인력운용의 위축에 따른 기업경쟁력 훼손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지 1년여 밖에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원인과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전적으로 기업과 경영진에게만 책임과 처벌을 지운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국회와 정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논의에 즉시 착수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경총 역시 "경영책임자와 원청이 그 역할과 관리범위에 따른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한 경우에도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등 세계 최대의 가혹한 처벌을 부과하는 위헌적 법이 제정된 데 대해 경영계로서는 그저 참담할 뿐"이라며 "법안은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과도한 의무를 부과한 후 사고 발생 시 중한 형벌을 부여한 것으로, 기업들은 공포감에 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제계는 그간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이어 지난 연말에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 특고 고용보험법이 개정되고 이번에 중대재해처벌법까지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업 경영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법과 정책들이 일변도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의 기업경영 환경은 더욱 어렵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총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산업수준과 산업구조로는 감당해낼 수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안전·환경 규제가 가해진다면 우리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은 글로벌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고용과 투자 등 실물경제 기반도 약화되는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에서도 '선 산재예방정책 강화, 후 처벌강화'라는 기조 하에 선진경쟁국 사례 등을 토대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 다시 한 번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합헌적·합리적인 법이 되도록 개정을 추진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를 의식해 여당 측은 일단 법을 제정한 뒤 보완할 것이란 의지를 드러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부족하지만 중대재해를 예방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보완해가길 바란다"며 "어려운 법안을 여야 합의로 마련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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