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경계현 삼성전기 대표가 취임 첫 해부터 '새판짜기'에 힘을 쏟고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을 앞세워 수익성이 낮은 비주력 부문을 정리하는 대신, 성장성이 높은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회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특히 5G 통신사업과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사업 등 하이엔드 기술 부문에 집중함으로써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방안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최근 와이파이 모듈 사업 매각에 이어 RFPCB 사업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와이파이 모듈 매각을 위해선 최근 매각 주관사를 선정해 9개 기업에 인수를 제안, 현재 예비 입찰을 통해 후보군을 4개 회사로 좁혔다. 매각 예상 금액은 1천400억 원 규모다.
RFPCB는 단단한 '경성(Rigid)'과 유연한 '연성(Flexible)' PCB가 하나로 결합된 기판으로, 인체 혈관과 같이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주로 플렉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 탑재돼 디스플레이와 메인기판을 연결하는 용도로 사용되며, 일반 PCB보다 기술 수준이 높아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분류된다.
삼성전기 RFPCB는 삼성디스플레이를 거쳐 애플,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에 탑재되고 있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또 RFPCB 수요도 점차 줄어들면서 매출 하락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이에 삼성전기는 최근 고객사들에게 RFPCB 공급을 중단할 것이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이를 사업을 철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여러 방안들을 검토 중"이라며 "관련 내용들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기는 지난해에도 매출 비중이 낮은 무선충전모듈 사업부를 벤더사 켐트로닉스에 넘겼다. 또 반도체 패키징 사업(PLP)은 삼성전자에 매각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8천억 원 가량의 자금은 대부분 전장용과 산업용 MLCC 사업 강화에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난해 12월에는 HDI PCB 기판사업을 담당하는 중국 쿤산 생산법인의 청산을 결정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지속되는 수익성 악화에 따라 경쟁력을 잃었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전임자였던 이윤태 전 사장이 성장성이 정체된 삼성전기를 안정 궤도에 들어서게 했다면, 경 사장은 수익성 개선과 시장 확대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경영 활동에 나서는 모습"이라며 "전방 수요처인 스마트폰 성장 둔화로 사업 방향을 놓고 고민하던 중 이번에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와이파이 모듈과 RFPCB 정리에 나선 듯 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삼성전기가 앞으로 5G 통신, 전장 사업 등에 역량을 더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삼성전기는 지난 2016년부터 MLCC 관련 사업에 지속 투자하고 있다. 특히 기존 IT용 MLCC에서 범위를 넓혀 자동차 등에 활용되는 전장용 MLCC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부산과 중국 톈진(천진)에 전장용 MLCC 생산라인을 증설 개시했다. 부산사업장에는 전장 전용 원재료 공장도 구축 중이다. 유전체, 내부전극, 외부전극으로 구성되는 MLCC를 원재료부터 관리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전기는 오는 2020년까지 MLCC 매출에서 전장용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는 6% 정도다. 또 2022년에는 전 세계 전장용 MLCC 시장에서 '톱2'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도 세워놨다.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업계에선 경 사장이 취임 첫 해부터 탄탄한 중장기 성장 전략을 바탕으로 사업 조정에 나서 자신만의 경영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올해 초 취임 후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났지만 합리적 의사결정과 수평적 소통문화를 바탕으로 질적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앞서 경 사장은 지난 4월 사내 방송을 통해 "코로나19는 올해 비즈니스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전시에는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는데 그때마다 전략도 다르게 수립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강조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경 사장이 삼성전기의 기술 혁신을 이끌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 학사와 석사, 박사를 받았고, 2001년부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근무하며, 세계 메모리 시장을 선도한 경험이 있다. 삼성전기를 한 단계 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업 매각 및 철수와 관련해 삼성전기에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라며 "창립기념일인 11월 1일을 앞두고 경 사장이 이달 말께 이와 관련해 임직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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