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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별세] '50년 지기' 오쿠노 쇼 "신격호, 슈퍼맨 같았다"


신격호 부탁에 롯데월드·호텔 등 다양한 프로젝트 참여…"관광보국 이뤄"

[아이뉴스24 장유미, 황금빛 기자] "신격호 명예회장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부족한 위대한 분이었습니다. 마치 슈퍼맨 같았습니다. "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50년 지기였던 일본 건축가 오쿠노 쇼가 21일 오후 3시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인간적으로 따뜻한 분이었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50년 지기인 일본 건축가 오쿠노 쇼 [사진=아이뉴스24 DB]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50년 지기인 일본 건축가 오쿠노 쇼 [사진=아이뉴스24 DB]

오쿠노 쇼는 일본 도쿄에서 '쇼 오쿠노 아키텍트'라는 건축물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신 명예회장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30살 때 롯데가 도쿄에서 추진 중이던 프로젝트를 맡으며 신 명예회장과 친분을 쌓게 됐다는 오쿠노 쇼는 소공동에 있는 롯데호텔부터 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등의 건축 설계를 담당하며 롯데와 오랜 인연을 쌓아왔다.

오쿠노 쇼는 "신 명예회장의 부탁으로 그 동안 롯데가 한국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았다"며 "정부 요청으로 신 명예회장이 당시 반도호텔을 소공동 롯데호텔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할 때 한국으로 날 불렀다"고 말했다.

이어 "그 때 서울은 택시 바닥이 뚫려 있을 정도로 낙후됐었지만, 신 명예회장은 그 때 당시 1천 실이나 되는 호텔을 짓겠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사업들을 많이 진행시켰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신 명예회장은 관광 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 관광보국(觀光報國)의 신념으로 관광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관광산업은 투자 회수율이 낮은 데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됐던 만큼 당시 기업들은 잘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은 관광을 통해 국력을 키우고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내 최초의 독자적 브랜드의 호텔을 건설하고 세계 최대의 실내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신 명예회장은 평소 "한국의 장래를 깊이 생각했다"며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오쿠노 쇼는 신 명예회장 곁을 지키며 한국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조력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소공동 롯데호텔을 시작으로 1989년에는 롯데월드 사업본부가 만들어지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

오쿠노 쇼는 "잠실 롯데월드는 신 명예회장이 가장 인생의 절정기 때 추진한 프로젝트로, 신 명예회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었다"며 "지금은 롯데월드가 롯데를 상징하는 심볼이 돼 전 세계에 롯데를 알리는 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롯데월드가 평범한 놀이공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것으로 평가됐다"며 "이를 추진한 신 명예회장이 선견지명이 있고 뛰어난 재능이 있는 분이라고 당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89년 7월 12일 롯데월드 개관식에 참석한 모습과 1990년 3월 24일 매직 아일랜드 개관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롯데지주]
(왼쪽부터)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89년 7월 12일 롯데월드 개관식에 참석한 모습과 1990년 3월 24일 매직 아일랜드 개관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롯데지주]

신 명예회장은 '88 올림픽' 개최 후 대한민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여가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면서 '관광'이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를 건설키로 마음을 먹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삼성이 만든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이 가장 유명했다.

신 명예회장의 지시로 만들어진 롯데월드를 건설하는 데는 꼬박 4년이 걸렸다. 6천5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롯데월드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1989년 7월 12일 문을 열었다. 어트랙션 수는 18종, 캐릭터 수는 14종에 불과했지만 30여년 만에 어트랙션 수는 3배, 캐릭터 수는 5배나 늘었다.

롯데월드는 서울 잠실 일대에 계획 중이던 '도심 속 또 하나의 도시'라는 프로젝트에서부터 시작된 곳으로, 신 명예회장은 이곳에 테마파크를 비롯해 백화점, 마트, 호텔, 스포츠 등 여가생활을 논스톱으로 즐길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몰링(malling) 문화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처음부터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대한 계획이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잠실은 지하철 2호선과 8호선이 지나가고 수많은 버스가 거쳐가지만, 롯데월드가 들어서기 전에는 서울 도심과 떨어진 공터인 만큼 사업 타당성이 좋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받았다.

또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데 있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날씨의 영향도 중요했다. 당시 롯데월드 어드벤처는 디즈니랜드 등 대다수 유명 테마파크와 같이 실외 공원으로 계획됐지만 한겨울에 평균 영하 7도까지 떨어지는 서울 날씨로 많은 사람들이 롯데월드에 방문하지 못할 것이라고 신 명예회장은 판단했다.

이에 신 명예회장은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실내 테마파크로서 날씨 영향을 극복하고, 세계 최대 규모로서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이후 그 계획은 곧 실행에 옮겨져 1989년 7월 실내 테마파크인 '어드벤처(Adventure)'가 먼저 오픈하고, 석촌 호수를 메워 만든 '매직 아일랜드(Magic Island)'는 1990년 3월 모습을 드러내며 지금의 파크 형태를 갖추게 됐다.

롯데월드 개장 당시 입장료는 어른 4천500원, 어린이 3천500원으로 용인 자연농원(어른 2천500원, 어린이 1천200원)보다 비쌌다. 그러나 새로운 콘셉트의 테마파크가 들어서자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들도 급속히 늘어 이듬해 456만명이 방문하며 성공을 거뒀다. 특히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 등을 본떠 만든 '로티'와 '로리' 두 캐릭터를 내세운 것이 집객력을 높이는 데 큰 효과를 거뒀다.

오쿠노 쇼는 "롯데월드를 지을 때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 짓기 위해 노력했다"며 "신 명예회장은 항상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세계 최고, 최초'가 되는 것을 만들라고 요구하며 일을 맡겼다"고 회상했다.

오쿠노 쇼(오른쪽 세번째)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가운데)이 롯데월드타워 건설과 관련해 회의 중인 모습. [사진=롯데지주]
오쿠노 쇼(오른쪽 세번째)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가운데)이 롯데월드타워 건설과 관련해 회의 중인 모습. [사진=롯데지주]

이 외에도 오쿠노 쇼는 롯데월드타워 디자인에도 한 때 참여하며 신 명예회장과 더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롯데물산에 따르면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부지 매입 이후 20여 차례나 디자인이 바뀌었으며, 오쿠노 쇼가 1989년 가장 먼저 로켓 발사대를 연상시키는 건물 디자인을 내놨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붓모양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강조한 지금의 롯데월드타워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오쿠노 쇼는 "신 명예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분이었다"며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에도 롯데월드를 만들려고 했지만 생전에 이루지 못해 많이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뉴욕에 롯데월드가 지어졌다면 롯데는 지금보다 더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활약하는 기업이 됐을 것"이라며 "신 명예회장의 두 아들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아버지의 훌륭한 DNA를 이어 받은 분들이어서 기대감이 크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황금빛 기자 gold@inews24.com, 사진=조성우 기자 xconfin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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