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한국 반도체 산업이 최악의 위기는 넘긴 분위기다. 일본 수출규제라는 초대형 악재가 당초 우려보다 별다른 피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지난해 연말부터 큰폭으로 떨어진 메모리 가격의 흐름도 최근 진정 국면을 맞이했다.
세계적으로 5G 상용화 확산과 맞물려 네트워크, 서버 부문의 대규모 투자가 이어질 전망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결합한 ICT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또 다른 호황 국면이 점쳐지기도 한다. 지금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재도약을 위해 체질을 강화할 적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3일 반도체 및 소재·장비·부품 등 관련 업계의 분위기를 종합하면 일본 수출규제 사태가 100여일이 지난 상황에서 그 피해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한일 양국간 협의를 위한 대일 압박을 강화하고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고강도로 추진하는 한편 반도체 업계가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규제 품목의 재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태 초기 우려했던 생산차질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추가적인 수출규제) 불확실성은 여전한 만큼 대체 공급처 확보를 위한 노력은 지속 중"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도 "일부 반도체 소재의 수출승인이 이뤄지고 추가제재도 이어지지 않아 생산, 재고상의 수출규제 영향은 크지 않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초 반도체, 디스플레이 필수소재 3종에 대한 수출규제 방침을 기습 발표했다. 별다른 제한 없이 한국이 수입하던 이들 소재를 전략물자 수출통제를 이유로 심사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한국 수출 승인이 이뤄진 경우는 EUV 포토레스트가 3건, 고순도 불화수소가 3건, 불화 폴리이미드가 1건 정도다. 이 중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의 세정 및 회로 생성에 폭넓게 사용되는 불화수소는 일본산의 경우 8~9월 국내 수입액이 아예 '0'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방침 발표 당시는 오사카 G20 정상회담 직후로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 미 대통령의 판문점 3자 회동이 열린 다음날이다. 비핵화 및 평화협상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보니 수출규제로 인한 충격은 상대적으로 더 컸다.
반도체는 국내 수출 25%를 차지하는 제1 수출산업이다. 일본의 직접적인 수출규제가 작용하는 소재 3종의 경우 일본 업체들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최대 90% 이상에 달한다. 전적으로 일본 업체들에 의존하는 품목도 있어 반도체 생산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더구나 8월 일본이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우대국(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위기감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 소재 3종과 같은 추가적인 개별허가 품목은 지정하지 않고 있다. 백색국가 제외 이후에도 일본 내 주요 수출기업으로 이뤄진 1천300여개 수출통제 자율준수기업(CP)의 경우 종전처럼 포괄허가를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국내 불매운동이 거세지면서 일본의 대한국 수출, 방일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가시적인 피해는 일본에서 더 크게 발생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 업계 관계자는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이 중국, 대만 등 해외법인을 통한 한국 수출을 지속하고 있어 소재수급이 막힌 것은 아니다"라며 "반도체 대기업 경영진도 9월 말 이후로는 더 이상 수출규제를 긴급 현안으로 다루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실적악화 주범인 메모리 가격의 급락세는 최근 들어 진정세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세계 1위 품목인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의 지난해 대대적인 호황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는 매분기마다 사상 최대실적 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연말 이후 조정 국면으로 접어들며 메모리 가격은 올해 5월을 제외하고 매월 10%대 하락세를 나타냈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고정거래가격(DDR4 8Gb 1Gx8 2133MHz 기준)은 9월 말 현재 2.94달러를 기록, 2개월 연속 같은 가격을 유지했다. 낸드플래시의 경우 6월부터 상승 국면으로 전환해 9월 말 4.11달러로 3개월 전보다 4.5% 올랐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들의 재고 소진으로 메모리 수요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는 것이 가격 흐름으로 나타난 것"이라며 "연말까지 고객사 재고량이 정상 범위로 돌아오면서 내년 초부터는 반등 국면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석근 기자 mysun@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