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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연 “극일 전제는 기술경쟁력 강화·기업 환경개선”


‘소재·부품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

[아이뉴스24 양창균 기자] 극일(克日)의 전제 조건으로 기술경쟁력 강화와 경영환경 개선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 정부의 추가 경제 보복으로 소재·부품산업의 국산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나온 주장이다.

특히 공급구조의 일시적인 변화가 어렵다는 점에서 R&D투자 활성화와 기업 환경개선부터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국경제연구원(원장 권태신)은 12일 전경련 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소재·부품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소재부품 산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대책들이 논의되고 있으나 가장 근본적 해결책은 기업환경 개선을 통한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R&D 관련 세제 지원 확대 등 혁신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동시에, 연구계 주 52시간 획일적 적용과 전문연구요원제 감축, 화학물질 규제 등 과학기술 및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논의를 재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자료=한국경제연구원]
[자료=한국경제연구원]

이 날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소재부품 경쟁력 강화 논의는 글로벌 무역구조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반도체와 일본의 소재 산업은 글로벌 분업과 협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라고 말하며,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국 반도체의 일본 소재산업 종속론, 과학기술계의 소재부품산업 외면과 대기업의 중소기업 육성 회피 주장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이 교수는 한국 소재 부품산업의 경쟁력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원 부족국가로서 필요 소재를 수입해야 하므로 완벽한 국산화는 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일본 수출규제의 대상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탈일본화는 중국산 저순도 불화수소 또는 형석과 황산 수입의 증가를 의미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소재의 수입은 거부하면서 완제품은 수출하겠다는 발상은 자유무역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국가 간 분업과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무역 체계 선도국가로서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재 발제를 맡은 이홍배 동의대 무역학부 교수는 한일 소재부품산업은 자유무역을 통한 무역증대효과가 한국과 일본에 각각 368억 달러, 331억 달러로 총 698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고 했다.

특히 대(對)세계 1천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나타낸 한국 소재부품산업은 여전히 생산기술의 차이로 일본에는 큰 폭의 적자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일 소재부품 적자는 2000년 103억 달러에서 2010년 242억 달러로 최고치를 경신했으나 지난해 151억 달러로 감소했으며, 이는 기술격차 감소와 쌍방향 분업구조 정착으로 인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심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일본 소재·부품 산업이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소재·부품 산업은 중기술 개발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10년 안에 한국의 기술 수준이 일본의 99.5%까지 높아져도, 남은 0.5%의 차이가 일본의 핵심 경쟁력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기술 품목 중심의 생산협력과 함께 기술투자 민관 협력, 공동 법인 설립 등을 제시했다.

한일 소재부품 산업 격차의 원인으로 화학물질 평가 및 관리 규제의 차이를 들기도 했다.

곽노성 한양대 과학정책학과 특임교수는 “화학물질 평가 규제 강도가 일본, 미국, EU, 한국 순으로 일본과 한국이 극명히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일본과 미국은 신규물질만 신고하지만 한국 화평법은 신규 및 기존 물질을 모두 신고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기존 물질 신고제를 운영하는 EU와 비교해서도 전문 인력의 질적 역량은 물론 수적 현격한 차이로 인해 EU방식은 한국에서 혼란만 초래할 뿐 실행 불가능하다”며 “비공개로 진행되는 한국과 달리 EU는 평가과정을 전면 공개하고 민간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한, 화학물질 관리 관련 법률 측면에서도 일본 화관법은 562종을 관리하지만 한국 화관법은 1940종 이상을 관리하는 등 관리대상이 약 3.5배 차이가 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언급했다. 이는 유해성(독성)만 평가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노출량을 고려한 평가를 통해 위해성 높은 물질 관리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규제 목적의 전환을 강조하며 안전 외에도 산업의 발전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규제의 주무부처가 환경부인데 비해 일본은 경제산업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해에도 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약 1만 4천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규제 설계 및 집행에 있어 기업의 필요와 애로사항을 청취 및 반영하고 있다는 게 곽 교수의 의견이다.

 [자료=한국경제연구원]
[자료=한국경제연구원]

하지만 한국 화평법과 화관법에서는 기업에게 평가 책임을 부과하고 있어 비슷한 평가를 반복하고 있으며, 민간은 지적재산권 문제로 EU의 평가결과를 활용할 수 없어 국력이 낭비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화학물질 안전규제는 현재 화평법, 화관법 외에도 산안법에서 관리되고 있는데 물질 등록은 법률마다 별도로, 관리체계는 중복되어 있어 비효율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법률 간 역할이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는 국민이 아닌 부처 입장의 법률 제정에서 찾았다. 곽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법률의 전면 재정비와 화학물질 규제를 일본 수준으로의 완화를 주장했다.

토론에서 이덕환 교수는 화학 산업을 비롯한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경계했다. 환경부 인력이 3년 사이에 25% 증원되는 등 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데다 최근 주민 반대로 용인의 데이터 센터 건립이 무산되는 등 과학기술계와 산업계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밝히면서 우리 사회의 현대과학기술에 대한 수용능력 증대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의 사회를 맡은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전무는 “경쟁력 강화 및 기업환경 개선 논의가 소재부품 산업에 국한되기 보다는 국내 기업 및 산업 전반의 혁신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들이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양창균 기자 yangc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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