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 1세대(1G)부터 5세대통신(5G) 도입기까지 한눈에 살펴보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연재 중입니다 -
2009년 11월 28일 KT를 통해 국내 정식으로 첫 선을 보인 애플 아이폰(아이폰3GS)는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적으로 대항마로 불린 휴대폰들이 줄줄이 시련을 겪으면서 반사효과를 얻기도 했다. 2010년 9월 10일 KT가 두번째 아이폰(아이폰4)를 내놓자 당시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고민도 더 커졌다.
결국 SK텔레콤은 KT보다는 늦었지만 2011년 3월 16일 아이폰4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사실 KT와 SK텔레콤이 동시에 아이폰을 판매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애플의 정책상 한 지역에 복수 이통사를 선택치 않는다. 이러한 정책의 예외 시장이 바로 한국 시장인 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의 3강 구도와 쏟아지는 외산폰 속에서도 아이폰을 점차 힘을 키워 두 자릿수 점유율을 유지했다. SK텔레콤과 KT 역시 대대적인 이벤트와 마케팅을 쏟아부으며, 아이폰이 나올때마다 가입자 뺏기에 힘을 들였다.
절정은 2011년 11월 11일. '11'이라는 숫자가 3번이나 겹치는 소위 '빼빼로데이'에서였다. KT와 SK텔레콤이 국내 처음으로 아이폰4를 두고 같은날 동시에 승부를 벌였다. 비가 내리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폰4를 구매하기 위한 긴 행렬이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속 타는 곳은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였다. LG유플러스는 당시 통신규격과 주파수 대역으로 인해 외산폰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애플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는 유럽식 GSM 방식으로 ‘아이폰’을 설계했기에 2G CDMA를 채택한 LG유플러스는 그림의 떡이었다.
물론 애플이 GSM 방식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미국 이통사 AT&T와 함께 버라이즌에서도 아이폰을 공급하기로 결정, 버라이즌에 맞는 CDMA망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폰’을 별도로 내놨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파수 대역에 발목이 잡혔다. 애플이 설계한 2G용 아이폰은 800MHz와 1.9GHz 주파수 대역의 리비전.A 통신규격을 지원했는데 당시 LG유플러스는 1.8GHz 에서만 리비전.A를 서비스하고 있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아이폰은 그 이후 국내서 나락의 길을 걸었다. 외형상 큰 변화가 없었던 아이폰4S와 3.5인치에서 크기를 4인치로 키운 아이폰5, 역시 디자인이 비슷했던 아이폰5S까지 오면서 국내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부족함을 보였다. 당시 국내서는 대화면과 높은 해상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성이 높은 제품들이 각광 받았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아이폰은 국내서 한자릿수 점유율로 내려왔다.
하지만 2014년 아이폰에게 반등의 기회가 찾아왔다. 국내 이통시장이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애플에게 유리하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우선 순차 영업정지 및 단말기 유통법 도입으로 인해 불법보조금 기반의 마케팅 경쟁이 소강상태에 접어 들었다. 보조금의 경우 이통사가 지원금을, 제조사가 장려금을 주는 형태인데 애플은 그간 장려금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즉, 보조금으로 인한 단말 가격차가 줄었다. 또한 보조금 대신 선택약정할인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발생하면서 아이폰의 선택 기회가 넓어졌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 등 3강 구도가 깨지고, 팬택이 회생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비집고 들어갈 빈자리가 생겨났다. 타 외산업체가 대부분 한국을 빠져나가 경쟁상대가 많지 않은 것 또한 유리한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애플은 팀 쿡 CEO 체제로 전환하면서 아이폰6에 승부수를 띄웠다. 팀 쿡 CEO는 2014년 9월 9일 미국 쿠퍼티노에 위치한 디 앤자 칼리지 내 공연시설인 플린트센터에서 열린 이벤트에서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를 공개했다. 두 개의 모델이 동시 출시되며, 화면은 4.7인치, 5.5인치로 더 커졌다. 대화면을 선호하는 국내 사업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모델이었다.
무엇보다 국내 아이폰 부활의 큰 영향을 미쳤던 사실 하나는 LG유플러스의 참전이었다. 통신규격과 주파수 대역 부족으로 인해 상당한 골치를 앓았던 LG유플러스는 LTE를 통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LTE를 시작한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장애로 지적된던 통신규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LG유플러스의 참전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드문 상황이었다. 한 지역의 모든 이통사가 아이폰을 출시하는 것도 이례적인 사건이 었다.
LG유플러스는 아이폰6를 국내서 출시된 아이폰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인 78만9800원으로 책정됐다. 물론 그 전에 '아이폰5C'가 가장 저렴하기는 했으나 파생형 보급형폰임을 감안했을 때 LG유플러스의 아이폰6 출고가는 역대 가격 중 가장 쌌다.
이러한 여러가지 상황이 들어 맞으면서 애플의 아이폰은 국내 시장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외산폰으로써 입지를 굳혔다.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점유율을 두 자릿수로 회복, 당시 2위였던 LG전자를 강하게 압박했고, 연말에는 삼성전자에 이어 2위 업체로 부상하기도 했다.
한편, 2014년말 애플과 삼성전자는 나란히 시련을 겪기도 했다. 애플은 아이폰6 플러스가 악력에 의해 휠 수 있는 일명 '밴드게이트'로, 삼성전자 갤럭시노트4는 명함이 꽂히는 '유격 논란'을 경험한 바 있다. 애플은 이후 케이스 재질을 바꿨다. 삼성전자의 경우 수리 편의성을 위한 제조방식의 변경으로 인한 헤프닝으로 정리됐다.
[연재] 한눈에 살펴보는 이동통신 연대기
1부. 카폰·삐삐, '모바일'을 깨우다 2부. 이통 5강 구도 'CDMA·PCS'의 시작 3부. 이통경쟁구도 '5→3강' 고착화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