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신경정신과에서 수면제를 처방 받았는데, 보험 가입을 거절당하나요?" "수면 장애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하면 다른 상해·질병에도 보험금을 받을 수 없나요?"
일명 'F코드 괴담' 탓에 정신과 치료를 꺼리는 환자가 여전히 많다. 정신과 진단을 의미하는 F코드를 받으면 보험 가입이 거절되고, 보험에 이미 가입했더라도 보험금 지급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우려 탓이다. 경증 정신질환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는 믿음에 수면제 등 약물 처방을 포기한 환자도 적지 않다.
수면제를 처방받으면 보험 가입에 가입할 수 없다는 속설은 사실일까. 결론적으로 정신과 질환 치료의 일환으로 처방받았다면 보험 가입은 물론 보험금 지급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대형 생명·손해보험사 7곳을 포함해 보험사 10곳에 문의한 결과 정신과 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수면제 등 약물을 처방받은 경우 생명보험이나 실손의료보험에 당장 가입할 수 없다. 보험업계는 정신과 질환 치료용 약물을 처방 받은 경우 최소 서류심사 강화 등 일반 가입자보다 까다로운 언더라이팅을 거쳐야 한다고 답했다.
단순 수면장애로 인한 수면제 처방에는 비교적 제약이 낮았지만, 수면제를 처방받은 배경에 따라 아예 가입을 거절하는 곳도 있었다. 치료 코드에 따라 단기 불면증 치료는 가입 가능성이 높았으나 다른 질환을 동반하거나 장기 치료를 받은 경우에는 가입이 유보됐다.
수면제 처방 배경이 정신과 외적 치료 목적이라면 유병자 보험이 해답이 되지만 정신과 질환 치료를 위해서였다면 유예기간이 필요했다. 완치 이후 가입이 가능한 기간은 보험사별, 배경 질환별로 3개월부터 5년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생명보험과 실손의료보험 등이 특히 정신과 약물 처방 환자를 꺼렸다. 보험업계는 정신질환 환자의 행동 패턴이나 손해율에 대한 명확한 통계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수면제 처방 여부는 보험 가입자 고지 의무에도 포함됐다. 만약 수면제 등 정신질환 치료 목적의 약물 처방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경우, 정신과 관련 상해나 질환이 아님에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사례가 나왔다.
정신과 약물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품은 암보험이 유일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신과 질환과 암 발병의 상관관계가 증명되지 않았고, 암 보험의 특성상 단순 사망이나 상해, 질병이 아닌 암이 발생해야만 보험금을 지급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제약이 없다"고 설명했다.
보험연구원의 조사 결과도 이와 같았다. 이정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신질환 위험 보장 강화 방안' 보고서에서 "실무적으로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경우 경험통계가 부족해 보험인수를 거절할 수밖에 없고, 경증 정신질환자도 해외 보험사와 비교하면 까다로운 가입조건을 내세워 가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2015년 12월 실손보험 표준약관이 변경돼 2016년 1월부터 ▲정신분열병, 분열형 및 망상성 장애 ▲기분장애 ▲신경성, 스트레스성 신체형 장애 등 정신질환이 보장 내용에 포함됐다.
금융당국은 올해 안으로 정신적인 이유의 수면장애도 실손의료보험에서 보장토록 유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입 장벽 자체가 높다 보니 법과 현실의 괴리가 나타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경증 정신질환자를 포용하는 보험상품은 검토 단계에 머물러있다고 보험업계는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경증 정신질환이라 하더라도 정신질환에 의해 파생되는 다른 정신질환이나 상해사고의 위험성이 존재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경증 정신질환 보험을 언급했기 때문에 실무부서에서 확인하고 있지만 상품 설계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치매급수 세분화 등 기존 보장질환에 대한 보험금 강화는 일부 보험사에서 계획 중이다.
정신질환 진단이 보험 가입, 취업 등 사회화의 장벽이 되다 보니 초기 정신질환 치료도 유독 더디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2016년 정신질환 경험자 중 15.3%만이 정신의료 서비스를 이용했다. 미국(39.7%)과 호주(34.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방치된 환자들의 병력은 날로 깊어져 우리나라의 정신병원 강제입원 환자는 67%로 독일(17%), 영국(13%), 이탈리아(12%)와 비교해 4~5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 연구위원은 "우울증과 같은 경증 정신질환의 경우 치료 가능성이 높지만 치료를 받는 경우는 극히 일부"라며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 통계와 같은 국민통계를 활용해 정신질환에 따른 다양한 인수 기준을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있다면 민영보험에서 정신질환 보장은 개선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허인혜기자 frees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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