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대체 어떤 앱이길래.”
지난 해 3월. 야후가 17세 고교생이 만든 섬리란 앱을 3천300만 달러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들 술렁였다. ‘억만장자가 된 17세 소년’에 화제가 집중됐다.
연이어 뒷 얘기가 쏟아져나왔다. 섬리는 뉴스 요약 앱으로 앱스토어에서 제법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 마리사 메이어 최고경영자(CEO)가 구글에 있을 당시 ‘섬리’를 만든 닉 달로이시오를 눈여겨 봤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억만장자 고교생’이란 세속적 관심이 가라앉자 조금 차분한 분석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야후가 뉴스 요약 앱으로 뭘 하려는 걸까? 인수 직후 곧바로 앱스토어에서 섬리를 빼 버리자 이런 궁금증은 더 커졌다.
“야후의 방대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뉴스 서비스를 하려는 복안일 것”이란 분석이 가장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졌다. 마리사 메이어 최고경영자(CEO)가 연이어 미디어 거물들을 영입하면서 이런 설명에 힘이 더 실렸다.
그리고 10개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다시 섬리가 화제로 떠올랐다. 야후의 품에서 눈을 감았던 섬리가 7일(현지 시간)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Yahoo News Digest)’란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한 때문이다.
◆개인 맞춤형 뉴스 서비스는 아니다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는 곧바로 앱스토어에 올라갔다. 현재는 미국 독자들만 이용할 수 있다. 반응을 봐가면서 안드로이드용도 만들고 서비스 지역도 활대할 예정이란 게 야후 측의 공식 설명. 당연히 궁금증이 이어지고 있다.
“대체 어떤 서비스일까? 야후 콘텐츠 전략의 접점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기자도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자료를 뒤져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 IT 매체 더버지의 표현이 가슴에 와 닿았다.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는 “신문에 대한 존경(digital homage to a newspaper)”의 표시란 것. 딱 그 표현 그대로였다.
아침, 저녁 하루 두 차례 뉴스 요약 푸시 서비스. 한 번 보내줄 때 최대 9건까지 수록. ‘원자(atom)’로 불리는 각 뉴스는 알고리즘과 편집자들이 “그날 꼭 알아야 할 뉴스”라고 엄선한 것.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곧바로 연상되는 것이 있다. 그렇다. 바로 신문이다.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는 조간과 석간 신문을 읽던 전통적인 뉴스 소비 방식에 강한 존경심을 보내고 있다.
또 하나. 당초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개인화된 서비스’는 아니다. 야후가 골라준 그날의 가장 중요한 뉴스. 이게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의 기본 콘셉트다.
◆개인 맞춤형 뉴스 서비스는 아니다
지난 2012년 등장한 서카(Circa) 역시 일종의 뉴스 큐레이션 전문 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무수하게 흩어져 있는 뉴스들 중에서 관심 가질만한 것들, 남들이 많이 거론한 것들을 골라준다는 것. 또 하나는 ‘모두의 뉴스’ 보다는 ‘내게 맞는 뉴스’를 골라준다는 것이다.
자이트를 예로 들어보자. 아이패드용 앱인 자이트에서 뉴스를 볼 때마다 “이런 류의 뉴스, 혹은 이 매체의 뉴스를 더 보고 싶은가?”라고 물어온다.
처음엔 답하는 게 성가시다. 하지만 성의껏 답을 하다 보면 어느 새 “내가 관심 가질만한 뉴스”들을 집중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된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1990년대 ‘디지털이다’란 책을 통해 처음 제기한 ‘나만을 위한 신문(The Daily Me)’이 그대로 실현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는 이들과는 좀 다르다. 서비스 책임자인 닉 달로이시오가 더버지와 인터뷰를 통해 이 부분을 분명히 했다. 디지털 뉴스 소비의 핵심 가치 중 하나로 꼽혔던 개인맞춤형 서비스가 절대 아니라는 것.
달로이시오가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자.
“우린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가 보내주는 콘텐츠가) 여러분들이 관심 가질만한 내용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꼭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이란 얘길 하고 있는 것이다.”
◆"끝 없는 뉴스피드 홍수에서 해방시켜 주겠다"
더버지는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알렉시스 마드리걸이 지난 달 ‘애틀랜틱’에 기고한 글을 인용했다. 당시 마드리걸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요즘 인기 절정의 소셜 미디어들의 기본 디자인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끝 없이 이어지는 글이란 개념이 독자들의 독서 습관과 정면 배치된다는 것.
마드리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인터넷의 글을 읽느니 차라리 ‘율리시스’를 읽는 게 훨씬 수월하다. 최소한 ‘율리시스’는 결말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끝이 없다.”
참고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난해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읽기 까다로운 작품이다. 영어권 독자, 그것도 전공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달로이시오 역시 이 부분엔 인식을 같이 했다. 사람들이 정보 과부하에 시다리고 있다는 것. 끝없이 이어지는 ‘뉴스 스트림’을 읽어나가느라 지쳐 있다는 것이 달로이시오의 주장이다.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는 간략하게 정리한 완성품으로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여 주겠다는 야심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끝이 없는 이야기에 지친 독자들에게 완결된 상품을 보내주겠다. 이게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의 궁극적인 목표다. 당연한 얘기지만 ‘독자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맞춤형 뉴스’가 아니라 ‘야후의 알고리즘과 편집진들이 선별한 그 날의 가장 중요한 뉴스’가 정보 홍수 속에 푹 빠진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할 청량제란 얘기다.
◆미국 주요 매체들도 '유보적인 평가' 내놔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에 대해 외신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와우”란 반응은 아닌 것 같다. 약간 시니컬한 제목을 단 매체도 눈에 띈다.
더버지는 “최근 추세를 거스르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지난 해 야후 날씨를 내놓은 이후 가장 대담한 앱이란 것. “성공할 경우 다른 개발자들을 스트림 홍수에서 벗어나도록 해 줄 것”이란 평가도 덧붙이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성공할 경우’란 전제가 꽤 무겁게 다가오는 평가다.
벤처비트는 레딧과 서카를 결합한 모델이라고 분석했다. 그럴 경우 “5시 뉴스의 업데이트 버전”이 탄생한다는 얘기도 함께 했다.
하이테크 전문 매체 베타비트는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 제목이 다소 신경질적이다. “딕, 인스타페이퍼 외에 이것까지 또 봐야 한다고?”란 문구. 기자의 속내가 그대로 담겨 있다.
야후가 내놓은 해답은 (나를 포함한) 많은 기자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는 얘기일 것. 물론 기자들의 초기 평가가 제품 성공과 그대로 연결되는 확률은 그다지 높진 않다. 그러니 이 서비스가 어떤 운명을 맞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로. 며느리조차 모른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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