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국 법무법인 화우 ESG센터장] 2025년, 글로벌 ESG는 현재 격랑 속에 있다. 유럽연합(EU)은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와 공급망 실사 의무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미국은 트럼프 정부의 재등장과 함께 ESG 정책을 전면 재조정하고 있다.
규제는 후퇴하고, 방향은 혼란스럽다. ESG는 끝난 것인가?
EU 의회는 지난 4월 3일 (일정 관련) ESG 옴니버스 패키지(Omnibus I)를 통과시키며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과 기업 공급망 실사지침(CS3D)의 보고, 실사의무 이행 일정을 연기했다.
이번 조치로 첫 CSRD 공시 시한이 2026년에서 2028년으로 2년 유예되고, 향후 규제 대상 범위를 축소하는 입법도 확정되면 지속가능성 보고의무 대상 기업 수가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망 실사(CS3D) 역시 국내법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기가 기존 2026년에서 2027년으로 연기되고, 향후 심층 실사대상을 1차 협력업체로 집중하게 하고, 정기 실사 주기를 1년에서 4~5년으로 늘리는 등 기업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신승국 법무법인 화우 ESG센터장. [사진=법무법인 화우]](https://image.inews24.com/v1/4fc34984bb9510.jpg)
이러한 규제 간소화 방안에 대해 유럽 기업들과 이해관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행정비용 절감을 환영하는 목소리를 낸 반면, 환경단체들은 기후대응과 인권보호의 후퇴라며 우려를 표했다.
네슬레, 유니레버 등 일부 유럽 글로벌 선도기업들과 투자기관들은 EU 지도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이미 많은 자원을 투입해 새 규정 준수를 준비해온 만큼 옴니버스 입법과정에서 법안을 약화시키지 말 것을 요청하며 오히려 규제 일관성 유지를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연방 ESG 정책이 급격한 역주행을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직후 전임 바이든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사실상 전면 철회하기 시작했다.
그 예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3월 기업의 기후정보 공시규정에 대한 법적 방어를 중단하며 해당 규정을 사실상 폐기했다. 과도하고 불필요하게 기업 활동을 침해한다는 이유다.
이처럼 트럼프 2.0 정부는 에너지 업계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석유 시추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공약처럼 환경규제를 풀어주는 방향으로 정책 키를 잡았다.
미국 정부 기조 변화에 대응해 기업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월가의 주요 은행들은 2024년 말부터 유엔 넷제로은행연합(NZBA)을 잇달아 탈퇴하며 정치적 환경 변화에 맞춘 전략적 조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2025년 1월 초까지 미국 주요 은행들이 탄소중립을 추구하는 금융그룹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에 따른 기후행동 역풍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조치로 분석된다.
정말 ESG가 끝난 것일까? 사실, EU의 규제 완화는 방향 상실이 아니라 속도 조절이다. 규정의 복잡성과 비용 문제에 직면한 유럽 기업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 것도 사실이지만, 글로벌 선도기업들이 EU에 “법을 약화시키지 말라”는 공개서한을 보낸 이유처럼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규제는 기업의 장기 전략 수립에 필수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 연방 정부가 ESG를 뒷걸음질치는 사이에도 뉴욕 등을 비롯한 일부 주정부는 자체적으로 기후공시 규정을 추진하는 등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어 규제 환경의 단층선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넷제로 정책을 폐기하고 있는 미국 대형 은행들과는 달리 유럽과 아시아의 은행들은 여전히 NZBA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ESG를 부담이 아닌 기회로 여기는 기업들에게 규제는 오히려 정교한 길잡이가 된다.
ESG는 규제가 아니라 가치의 언어다. 트럼프 정부는 기후정책 폐기를 선언했지만, 캘리포니아·뉴욕 등은 오히려 주 단위의 ESG 공시와 기후 리스크 규제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여전히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의 핵심 지표로 삼고 있다.
한쪽에서는 ESG를 정치적 전선으로 삼지만, 다른 쪽에서는 오히려 기업의 윤리적 책임과 전략적 가치 창출 사이의 균형을 묻고 있는 것이다. 전례 없이 출렁이는 규제 지형 속에서, 기업의 ESG 책임자들은 이중 대응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하나의 글로벌 표준에 기대기보다 지역별 규제 차이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EU의 경우 규제 시행이 늦춰졌다고 안도할 것이 아니라, 늘어난 유예기간 동안 향후 보고와 실사 의무 이행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ESG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진화할 뿐이다. 과거의 추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환경, 인권, 공급망, 그린워싱, 거버넌스, 책임투자 등 구체적 주제로 분화되고 있으며, 이는 오히려 ESG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이다.
ESG의 본질은 법규의 조문에 갇힌 언어가 아니라, 좋은 기업, 착한 기업을 향한 사회의 요구이며 시장의 기대다. ESG는 기업이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속가능한가?”, “우리는 신뢰받는가?”, “우리는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가?”
synn@hwaw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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