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기후위기] 국내 금융기관 ‘탈석탄’…겉으론 선언, 속으론 미적미적


기후솔루션, 국내 100대 금융기관 2021년 기후변화 정책 평가 보고서 발간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탈석탄이 큰 흐름이 되고 있다. 2050년 이전까지 대부분 석탄화력발전은 퇴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석탄화력에 그동안 투자를 해 왔던 국내 금융기관의 겉과 속이 서로 다른 모습이 나타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겉으로는 ‘탈석탄’을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미적미적하는 태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주요 금융기관의 기후변화 정책을 분석한 결과,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대응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솔루션은 4일 ‘국내 100대 금융기관 기후변화 정책 평가’ 보고서를 내놓았다.

국내 금융기관의 탈석탄은 선언만 있고 구체적 정책 수립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기후솔루션]

많은 금융기관이 실효성 있는 기후변화 정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탈석탄 선언이 잇따랐다. 지난 4월 기후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5월 서울에서 열린 P4G 정상회의를 앞두고서는 민간 금융권에서 탈석탄 선언이 연이어 나왔다.

문제는 ‘선언’만 있고 이후 ‘행동’은 뒤따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기후솔루션 보고서를 보면 주요 금융기관 100개 중 탈석탄 선언을 한 기관은 70개였다. 이들 중 67개 기관은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투자 중단’ 정책만 수립했다.

한수연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신규 석탄발전 사업 투자 중단 정책만으로는 투자 실무에 있어 탈석탄 선언 전후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탈석탄 선언이 ‘보여주기식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구체적 탈석탄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은 독일의 비영리 기관인 우르게발트(Urgewald)가 마련했다. 우르게발트는 ▲석탄 산업의 범위 ▲석탄 기업의 범위 ▲투자 배제 범위 등 3가지 기준을 필수로 설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기후솔루션은 평가 대상인 100개 기관 중 이 3개 요소를 포함한 탈석탄 정책을 세운 기관은 SC제일은행, 삼성화재, 미래에셋증권 등 3개 기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자산 포트폴리오의 2050년 탄소중립 정책을 세운 기관은 100개 중 16개에 그쳤다. 이 중 구체적 탄소 감축 계획을 제시한 곳은 스탠다드차타드 그룹(SC그룹),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산하 금융기관 11개로 조사됐다. 신한금융그룹은 2030년까지 자산 포트폴리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38.6%, KB금융그룹은 33.3% 감축하겠다는 방침이다. SC그룹은 발전, 철강 등 특정 산업에 대한 탄소집약도 감축 목표만을 제시한 상태다.

‘석탄 기업’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세워 금융제공에서 배제하고 있는 기관은 삼성화재와 SC제일은행, 미래에셋증권 등 3개 기관에 불과했다.

정책금융기관과 연기금 등 공적 금융기관의 기후변화 정책은 민간 영역보다 소극적이었다. 자산 포트폴리오상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거나 구체적 탄소 감축 계획을 수립한 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900조 원이 넘는 기금 적립금으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는 국민연금공단의 기후변화 정책 역시 유명무실한 상태다.

국민연금은 지난 5월 탈석탄 선언을 했는데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를 제한한다는 방침만 수립했을 뿐 반년 넘게 구체적 탈석탄 투자 기준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반면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재무적, 환경적 위험을 고려할 때 금융기관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금융권 안팎에서 형성됐다. 이를 바탕으로 종합적 탈석탄 기준을 투자에 적용하고 있다. 2021년에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포함한 화석연료 전체에 대한 투자 제한인 ‘탈화석연료’ 방침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됐다.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유럽 주요국, 미국, 캐나다 등 34개 나라와 5개 금융기구가 화석연료에 대한 공적 금융을 중단하겠다는 선언문을 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민간 영역에서는 프랑스 보험그룹인 악사(AXA)가 대표적이다. 악사는 전체 매출 중 석탄에서 발생하는 매출이 30% 이상인 기업을 ‘석탄 기업’으로 규정해 이 기업들에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내에서는 석탄 투자를 모두 회수하고, 2040년까지는 이외 국가들에서도 석탄 투자를 회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유사한 투자 제한 정책을 가진 네덜란드 공적연금운용공사(APG)와 영국의 국가퇴직연금신탁(NEST)은 실제로 2021년 석탄발전 사업을 지속하고 있는 한국전력의 주식을 전량 매각한 바 있다. APG는 석유와 가스 생산 업체도 투자 대상에서 배제했다.

한수연 연구원은 “K-대중문화는 세계를 선도하는데 K-금융의 기후변화 정책은 낙제점 수준”이라면서 “2022년에는 한국 금융기관들도 실효성 있는 탈석탄 정책, 화석연료 전반에 대한 기후변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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