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훈기자] "사기업 아이디어를 정부가 도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공공기관의 특혜를 악용해 경쟁조차 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부당합니다."
에듀테크 스타트업 바풀 청년 CEO 이민희 대표의 하소연이다. 바풀은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 과외 서비스 '바풀공부방'과 무료 공부 Q/A 앱 '바로풀기'를 운영하고 있는 교육 스타트업이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교육정보원은 지난 2014년 말 바풀의 서비스와 똑같은 무료 공부 앱 서비스 '꿀박사'를 출시한 바 있다.
두 서비스 모두 학생들이 공부하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이를 스마트폰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해 앱에 게재해 지정된 선생님으로부터 풀이법을 받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당시 업계에서는 '정부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바탕 논란이 됐다.
이민희 바풀 대표는 "1년전 교육정보원장과 실무팀과 만나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대화를 하기는 했다"라며 "하지만 현재까지 어떤 진전도 없었고 당시의 담당자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기고 흐지부지 됐다"고 토로했다.
교육정보원의 꿀박사는 그 사이 몇번의 업데이트를 거치며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꿀박사의 경우 교육청에서 지정한 선생님과 예비교원들이 해답을 알려주면 교사들이 승진에 필요한 부가점수를 받는다. 바풀의 경우 이같은 '특혜'는 없다.
이 대표는 "우리도 똑같은 조건으로 해달라고 요청해도 '사기업은 안된다'는 답변만 받았다"라며 "아이디어 도용은 둘째치고라도 경쟁을 할 수 없는 조건으로 공기관의 특혜를 이용해 사람들(교사)을 끌어모으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월부터 시작한 '주소 일괄 변경 시스템'도 국내 중소기업 '짚코드'가 16년전부터 제공해 왔던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금융소비자가 이사나 이직시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 금융사에 등록된 주소를 한번에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짚코드는 금융권을 포함해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 등록된 주소까지 변경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짚코드측은 "금감원과 우리 서비스는 이메일 수집과 전화번호 수집의 차이만 있을뿐 모든 것이 똑같다"라며 "금융업체라면 이제 우리와 제휴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대기업들 베끼기 횡포 여전
최근에도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 도용해 논란이 된 사건이 있다.
지난 12일 SK커뮤니케이션즈의 사진보정 앱 '싸이메라'에 신규 사진 필터로 올라왔던 사쿠라, 프렌치, 메어리미, 그랜드 부다페스트 등이 삭제됐다.
이 필터는 스타트업 오디너리팩토리가 유료로 판매중인 필터와 똑같은 것으로 SK컴즈가 무료로 배포에 나서면서 오디너리팩토리는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장두원 오디너리팩토리 대표는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개발한 꿈을 대기업(SK컴즈)이 짓밟았다는 내용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이 내용이 여기저기 공유되면서 논란의 불은 더 거세졌다.
결국 SK컴즈는 해당 필터를 삭제했지만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지적은 인정하지 않았다.
SK컴즈 관계자는 "여러 도시의 감성을 담은 필터는 100% 개발팀의 아이디어"라며 "필터를 내린 것은 많은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공감하는 취지로 진행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드론을 연동해 고화질로 영상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 카메라 솔루션 스타트업 대표 A씨도 최근 모 대기업에 피팅을 갔다가 개발 APK를 오픈해줄 수 있느냐는 요구를 받았다.
A씨는 "유독 핵심 기술에 대한 질문이 집요하게 이어졌다"라며 "메인 개발자를 데려오지 않았던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해당 대기업에서는 현재도 지속적으로 문의를 해오고 있다고.
지난해 11월에도 이랜드가 중소 브랜드 제품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는 등 대기업의 벤처 아이디어 도용은 잊을만하면 업계 이슈로 떠오르곤 한다.
◆저작권 인식 부재 만연
스타트업들 사이에서도 잊을만 하면 저작권 문제로 입에 오르내리는 기업이 있다.
공룡벤처로 불리는 옐로모바일은 지난 3월 말 회사 페이스북을 통해 전환사채에 대한 설명을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해 포스팅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인기 애니메이션 '마징가Z'에 등장하는 아수라백작 캐릭터를 무단 도용해 논란이 됐다. 도용이 아니냐는 문의가 이어지자 아수라백작 캐릭터는 해당 포스팅에서 조용히 삭제됐다.
옐로모바일 자회사 쿠차는 지난 1월 캐시슬라이드의 디자인을 표절해 결국 캐시슬라이드 개발사인 NBT에 사과의 뜻을 전하고 디자인을 수정해야 했고 또 다른 자회사 피키캐스트는 지난 3월 초 언론사 기자의 사진을 무단 도용해 업계에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피키캐스트의 경우 최근에는 대만에서도 국내 큐레이션 서비스 쉐어하우스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게재하면서 또 다시 한바탕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아이디어 도용 횡포도 문제지만 죄의식 없이 무단으로 남의 콘텐츠를 가져다 쓰는 문화가 만연한 것도 문제"라며 "내꺼는 내꺼, 니꺼도 내꺼라는 인식은 고질적인 문제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성상훈기자 hns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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