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무기자]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였던 개성공단이 영구 폐쇄 위기를 맞았다. 정부가 10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이어진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와 관련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미사일 고도화를 차단하기 위해 대북 제재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시점에서 개성공단 가동이 북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이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이런 엄중한 인식을 바탕으로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을 통해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물꼬를 튼 이후 남북 교류협력의 옥동자로 평가받았던 개성공단은 그간 남북관계 위기 속에서 숱한 위기를 거듭해 왔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뒤 이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영구 폐쇄 위기를 맞게 됐다.
2000년 현대아산과 북한이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인력과 토지를 결합한다는 명분으로 합의서를 채택하면서 시작했지만 개성공단은 2001년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2002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2003년 6월에야 개성공단 1단계(330만㎡) 개발에 착공하게 된다.
2005년 9월 개성공단 1단계로 24개 기업에 분양한 이후 2006년 11월에는 북한 근로자 1만명 고용을 돌파했고, 2007년 1월에는 누적 생산액 1억달러를 달성하고, 2007년 11월 북한 근로자 고용이 2만명을 돌파하는 등 발전이 이어졌다.
그러나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권 등장 후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개성공단도 위기를 거듭했다.
2008년 3월에는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선제타격 발언을 문제삼아 북한이 개성공단 내 한국 공무원 11명 철수를 요구했고, 2009년 5월에는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가 북한 종업원 탈북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유씨를 억류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다. 천안함 폭침으로 인한 우리 정부의 5.24 조치로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 투자가 금지되고 공단 체류 인원이 절반 수준으로 축소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인 2013년에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출입을 제한시켜 공단이 160여일 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숱한 위기 속에도 가동됐던 개성공단은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 도발을 이어가고 정부가 10일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또 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중단 이유로 발표하면서 개성공단 중단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채송무기자 dedanh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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