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훈기자] 카카오가 지난해 10월 감청논란 이후 거부해왔던 감청영장(통신제한조치) 협조를 1년만에 재개하기로 결정하자 사실상 정부의 압박에 백기를 든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이 확산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카카오의 이같은 행보를 두고 자신들이 또다시 잠재적 감시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6일 수사기관의 요청시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하는 조건으로 이용자들의 대화 내용을 수사기관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카카오는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익명화 처리된 사람들 중 범죄 관련이 있는 사람이 나올 경우에 한해 대상자를 특정해 추가로 전화번호를 요청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때도 관할 수사기관장의 승인을 받은 공문으로만 요청하도록 엄격한 절차를 규정했다고 말한다.
카카오 측은 아울러 유괴, 살인 등 중범죄자 수사에 차질을 빚는다는 비판과 디지털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이에 대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협조 재개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1년만에 협조재개, 사실상 '백기?'
카카오톡 감청논란이 불거진 것은 지난해 6월부터다. 당시 노동당 정진우 전 부대표는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 등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해산명령에 응하지 않은 혐의로 체포됐다.
수사과정에서 혐의자는 정 전 부대표 1명이었지만 그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등 총 2천368명의 대화명과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검찰에 넘어갔다. 영장 발부 여부와 관계없이 사이버사찰 논란이 일어난 것은 이때부터다.
같은해 10월 이석우 전 다음카카오(현 카카오) 공동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이버 검열 논란에 공식 사과하는 한편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고 전면 거부 입장을 표명했다.
기업이 법집행을 따르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당시 이 전 대표는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제공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이같은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1년 사이에 카카오는 100일 연속으로 세무조사를 받았다. 전례없는 강도높은 세무조사라는 점에서 보복성 세무조사가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카카오는 컨소시엄을 이끌고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받기 위해 준비중이다. 업계 일부 관계자는 카카오 입장에서 정부의 눈밖에 나서 좋을게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1년만에 통신제한조치를 해제한 것이 사실상 정부에 백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름은 안볼게?"
카카오의 통신제한조치 협조 재개 소식에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클리앙, 오늘의유머 등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관련 글들과 댓글을 보면 대부분 '카카오의 선택'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더 많다.
친구 사이라도 '카톡 대화 내용을 보고싶은데 보여줄 수 있겠나 이름은 가리고 보겠다'라고 물으면 과연 몇명이나 선뜻 스마트폰을 건넬 수 있겠냐는 것이다.
카카오는 수사 대상자 외에 다른 사람의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해 수사기관에 제공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익명화 되어 있다고 해도 누군가가 자신의 대화 내용을 본다고 하는 자체가 그리 유쾌한 일도 아닐뿐더러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의견도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2의 텔레그램 망명 사태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건부 해제(통신제한조치)라 할지라도 결국 카카오가 이용자의 대화 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기기로 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라며 "이용자들은 국정원 RCS 사태이후 감청, 해킹 등 과 같은 단어에 예민해져 있다보니 지난해보다 논란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성상훈기자 hns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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