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정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제동을 건 엘리엇은 포퓰리즘을 동원하고 있다. 국익을 저해하는 일종의 '알박기' 펀드나 다름없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앞두고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방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외국계 투기자본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과 합병비율 산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른바 포퓰리즘을 동원한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 행위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25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엘리엇·삼성 분쟁이 주는 교훈' 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신장섭 교수는 "엘리엇은 삼성과의 분쟁에서 포퓰리즘을 동원하고 있다"며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알박기 펀드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알박기는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일부 토지를 매입한 뒤, 다른 토지 소유자들이 개발업체와 합의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업 진행을 막고, 일반 보상가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얻어내는 수법을 말한다.
신장섭 교수는 "엘리엇은 원래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어떻게 되든 아무 관심도, 이해관계도 없는 주체였다"며 "단지 삼성물산 주식을 확보해 놓으면 큰 수익을 올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투자한 사건 반응형 금융 투자자"라고 비판했다.
이어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는 것은 이같은 '알박기'와 다를 바 없다"며 "지난해까지 삼성물산의 주주명부에 등재되지도 않았는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간 합병 물밑 작업이 진행되던 올 3월부터 주식을 매집했다"며 이를 전형적인 알박기 행태로 규정했다.
이번 합병비율 산정에는 문제가 없으며, 이번 합병 성사에 열쇠를 쥔 국민연금 역시 국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신 교수는 "엘리엇은 합병비율 산정에 문제가 있고, 삼성이 삼성물산 주가를 방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은 자산 가치가 아니라 시장가치를 고려해 합병비율을 산정하고 있고, (삼성물산) 주가를 오래도록 낮은 수준에 있도록 조작했다는 주장에는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민연금은 개인 투자자들과 달리 국익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투자를 해야 한다"며 "국익을 해치는 정도로까지 투자를 해서 연금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국민 연금이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에도 있는 차등 의결권제도도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신 교수는 "한국은 경영권 승계에 가장 비우호적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며 "상법으로 1주 1의결권 원칙을 강제적으로 적용하는 나라에 포함된다"고 이같이 지적했다.
이어 "이는 반재벌 정서와 이상향적 기업관 때문으로, 현실적 기업관으로 재벌정책을 재검토해 단기적으로 포이즌필(poisonpill)과 같이 투기자본의 공격에 대항할 제도를, 중장기적으로는 차등의결권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 외에도 이날 토론회에서는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주장이 이어졌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소버린, 헤르메스, 아이칸, 론스타 등 투기자본은 대주주의 전횡에 대한 소액주주 이익보호를 주장했지만, 종국엔 막대한 이익만 챙겨 떠났다"며 "반기업 정서에 편승,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투기자본의 힘을 빌렸다가는 국부유출과 기업투자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00년 이후 다수의 헤지펀드가 한국 기업들을 난타했지만 아직도 배운 게 없다는 게 뼈아프다"며 "우리나라는 미국도 일본도 다 인정하는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은 "경영자는 단순히 주주의 대리인이 아니다"라며 "경영자와 주주를 단순히 '주인-대리인' 관점이 아닌 주인-청지기간 '계약적' 관점으로 전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현행법상 1주1표 의결권 방식이 '주주평등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한 강행 법규로 여겨졌다"며 "이제는 일정한 제한하에서 개별회사의 정관으로 변경할 수 있는 임의 법규로 해석하는 전향적 자세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혜정기자 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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