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가 폭발적 흥행몰이를 하면서 웜홀(worm hole)이나 블랙홀(black hole), 상대성이론과 같은 물리학 용어들이 주인공 이름보다 흔하게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겐 '인터스텔라'의 쿠퍼(매튜 맥커너헤이) 이전에 그가 있었다, '도민준'!
지난해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도민준(김수현)은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인으로 조선시대부터 수 백 년을 이 땅에 살고, 다시 돌아갈 시점에도 혜성으로 위장한 우주선을 이용할 계획이었으나 실패한다.
비극으로 끝날 뻔 했던 드라마는 도민준이 구닥다리 '기계' 우주선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별을 오갈 수 있는 '통로'를 찾아내 돌아오는 걸로 마무리된다. 드라마 속에서 명확하게 표현되진 않았지만 그 통로는 아마 '웜홀'일 것이다.
인터스텔라 이전에도 웜홀은 SF영화나 소설에서 우주여행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돼 왔다.그 밖에도 SF소설의 고전이자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결말 부분에도 주인공을 태운 캡슐이 웜홀을 통과한다. '스타트랙', '스타게이트', '바빌론5'와 같은 우주 공간을 다룬 SF영화나 드라마에서 웜홀은 우주공간에서의 이동을 위한 필수 장치다.
웜홀(wormhole)은 공간에 나 있는 가상의 터널을 칭하는 용어다. 요즘은 드물지만, 예전에는 겉은 멀쩡한데 속에 벌레 구멍이 난 사과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마치 인간이 산에 뚫은 터널처럼 벌레가 사과 속을 파먹으며 지나간 자국, 웜홀이란 이름은 거기서 나왔다. 공간을 뚫어 만든 일종의 지름길인 셈이다. 하지만 웜홀은 사과 벌레 구멍이나 산에 뚫은 터널과 중요한 차이가 있다.
웜홀은 멀리 떨어진 두 공간에 중력을 가해 공간을 휘어지게 만들어 공간상의 한 지점과 다른 지점을 연결해주는 지름길이다. 이때 웜홀의 입구와 출구의 양쪽 끝만 기존 공간에 연결되어 있고 통로가 되는 중간 지점은 '다른' 공간에 속해 있게 된다. 웜홀은 기존의 공간을 통과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웜홀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육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웜홀이 제거되고 나면 웜홀이 점유하고 있던 공간도 사라진다.
우주여행을 위해서 왜 웜홀, 그러니까 지름길이 필요한 걸까? 우주 공간의 장대함은 상상을 벗어난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도 38만km, 태양은 1억5천만km 정도 떨어져 있다.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깝다는 안드로메다 은하는 200만 광년 거리다. 빛의 속도로 갈 때 200만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현재 가장 빠른 우주탐사선의 속도는 시속 6만km 정도. 우주선 탑승자가 냉동상태로 이동한다고 해도 수 십 만 년의 세월을 견딜 수 있겠는가. 만에 하나 왕복 여행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돌아왔을 때 지구의 문명이 어떠하리란 보장이 없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그러하듯 인간의 문명은 이미 붕괴하고 다른 생명체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수도 있다. 때문에 성간여행을 꿈꿀 때 웜홀과 같은 지름길이 필요하다. 웜홀 같은 구조의 우주 지름길이 존재한다면 25광년 떨어진 베가성까지 8시간 만에도 왕복할 수 있다.
웜홀은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존 A 휠러가 이름 붙인 것인데, 물리학자 킵손(Kip Steven Thorne) 박사가 '웜홀, 타임머신 그리고 약에너지 조건', '시공간의 웜홀과 성간여행에서의 유용성'과 같은 논문을 통해 웜홀의 가능성을 지지하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부각됐다.
웜홀의 존재 가능성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15년 발표한 일반상대성 이론에 근거한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주위의 시공간이 중력으로 굽어지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 이론은 블랙홀의 존재를 예언했고, 이후 이론의 발전과 간접적 관측을 통해 블랙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웜홀에 대한 이론이 서게 된 것이다.
웜홀을 이용한 우주여행은 가능할까? 현재 웜홀은 수학적으로만 존재한다. 또 웜홀이 존재한다고 해도 지속시간의 문제, 안정성 문제 등 우주여행 통로로 사용하기에 적합지 않을 수 있다. 또 어떤 방식으로 통과할 수 있으며, 굽어진 공간을 통과할 때의 중력을 견딜 수 있는가 등도 문제다. 물론 웜홀의 존재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상황을 예상해 보는 것은 모두 덧없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지구 밖, 우주를 꿈꾸는 것은 인간에겐 제어할 수 없는 꿈이 아닌가.
올해는 민간 우주여행의 원년이 되리란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민간 우주비즈니스 회사 미국 오비탈사이언스의 화물우주선이 발사 6초 만에 폭발한 사고와 영국 버진그룹이 추진하던 민간우주선 스페이스십2가 모하비 사막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장밋빛 전망은 흐려지고 있다.
우주에 가고 싶은 꿈만큼 여건이 준비되진 않은 것이다. 영화 '그래비티'가 보여준 것처럼 지구 밖에서 인간은 옷 하나 없이 정글에 던져진 아이처럼 무기력하다. 지구는 우주의 오아시스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별을 꿈꾼다. 별에서 그대가 오기를, 또 우리가 별로 간 그대가 되기를. 웜홀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며 언제든 내키는 대로 수십만 광년의 거리를 한달음에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을 말이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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