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을 앞두고 보조금이 줄어들었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누구든 차별받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법률을 제정했지만, '손해' 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은 나에게 손해나는 것일까? 단통법이 담은 의미와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곳에 주안점을 줘야 하는 것일까? [편집자 주]
[허준기자] 이동통신업계의 눈과 귀가 미래창조과학부가 만들고 있는 단통법 세부사항(고시)에 쏠리고 있다. 10월부터 시행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때문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은 불법 보조금으로 얼룩진 지금의 휴대폰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로,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해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은 이른바 '보조금 투명화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처럼 누구는 보조금을 많이 받고 누구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휴대폰의 유통구조를 개선, 차별없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보조금 공시를 의무화한 것이다. 10월부터 이동통신사는 정부가 정한 상한선 안에서 휴대폰에 지급되는 보조금을 구매자들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공시해야 한다.
정부가 정한 보조금 상한이 50만원이라면 갤럭시S5 보조금은 40만원, G3 보조금은 25만원 등으로 공시한다. 상한선 내에서 이통사는 자유롭게 휴대폰 보조금을 공시할 수 있다. 단 보조금을 공시하면 모든 구매자들에게 동등하게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구매자는 보조금 공시를 보고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을 확인한 뒤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 사전에 알 수 있다
이 공시제도는 지금의 널뛰기 보조금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다. 지금은 휴대폰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하면 시시각각 보조금이 변한다. 보조금이 수십만원씩 지급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보조금이 없는 날도 태반이다. 휴대폰을 구매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오늘 휴대폰 가격을 물어보고 내일 구매하려고 하면 가격이 바뀌어 있다.
휴대폰 판매점 직원들도 휴대폰 가격을 문의하는 고객에게 "본사에서 매일 새로운 보조금 정책이 내려오는데 우리도 내일 내려올 보조금 지침을 모른다"며 "오늘 안 살거면 가격을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10월부터는 사전에 보조금을 확인할 수 있다. 보조금을 공시하면 공시한 금액 이상의 보조금 지급은 금지된다. 휴대폰 구매자를 차별하면 안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판매점별로 공시된 금액의 15%까지 더 지급할 수는 있다.
보조금이 균등하게 지급되기 때문에 과거 80만~90만원 하는 스마트폰을 '공짜'로 샀던 일부 소비자들은 불만을 터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극히 일부 소비자에게만 돌아갔던 보조금 혜택이 모든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 외에도 보조금을 많이 주는 대신 3개월간 고가 요금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방식의 변형된 영업이 금지된다. 보조금 대신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됐다.
◆출고가 부풀리기 사라지고 중저가 단말기 시장 확대된다
일각에서는 모두가 비싸게 휴대폰을 사게 만드는 법률이라는 반발도 있다. 하지만 이 법률이 제대로 자리잡으면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가계통신비 경감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누구나 보조금을 균등하게 받게 되면 그동안 보조금을 통해 가입자를 확보하는 이통사들의 전략이 요금경쟁으로 전환돼 통신요금 자체가 내려갈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통사들이 수조원씩 쏟아 붓던 보조금이 요금인하에 쓰인다면 국민 모두가 통신비를 절감할 수 있다.
100만원을 넘어선 고가 스마트폰의 출고가를 내리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안에 제조사의 장려금 관련 자료 제출 의무화 조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제조사가 휴대폰 하나를 팔기 위해 얼마의 마케팅 비용을 투자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보조금 공시와 자료제출 의무화 규정은 제조사의 출고가 부풀리기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 부분"이라며 "과도하게 출고가를 높여 출시한 이후 장려금을 많이 투입하는 현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현재는 고가 단말기 중심의 휴대폰 시장이지만 이 법안 시행 이후에는 자급제 단말기, 중저가 단말기 시장도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자급제 단말기를 이용하고 있는 이용자는 약 37만3천여명(3월말 기준)으로 전체 이동전화 가입자 수 대비 약 0.7% 수준에 불과하다. 고가 단말기를 보조금을 받아 싸게 살 수 있는데 굳이 자급제 단말기를 구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2세대(2G) 휴대폰 이용자나 3G 서비스이용자처럼 제조사나 통신사가 밀고 있지 않는 상품을 쓰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 이 또한 단통법 시행의 세부제도 개선을 통해 차별을 적게 받을 수 있도록 바뀐다.
이렇게 된다면, 불필요한 고가 단말구매도 줄일 수 있다.
미래부는 "보조금이 투명화, 안정화되면 자급 단말기와 중저가 단말기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고가 단말기 중심의 시장이 정상화되고 단말기 비용 부담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불법, 편법 보조금 원천 봉쇄 가능할까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가계통신비 인하를 이끌기 위해서는 보조금을 공시한대로 지급하는지 감독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사실상 단통법의 성패는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페이백'이라는 감시망을 무력화시키는 편법 보조금 지급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편법 보조금을 근절시키지 않으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요금인하까지 이어질 수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보조금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같은 지금의 제재보다는 징벌적 요금할인 등의 제재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불법 보조금 지급이 확인되면 이통사에 가입자 전체 요금을 5% 인하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이다.
법안 시행령에 포함된 긴급중지명령도 과감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 시행령에 따르면 정부가 이통사의 불법행위를 확인하면 30일 이내 범위에서 해당 행위의 긴급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동안 정부 제재는 불법 보조금이 지급된 이후에 사실조사를 진행해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사후처벌' 방식이었다. 하지만 10월 이후에는 즉시 신규 이용자 모집 금지 등의 긴급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긴급중지명령으로 사업자의 불법행위를 즉시 차단할 수 있도록 했다"며 "신규 가입자 모집 금지 등 이용자 이익 저해를 막기 위한 강력한 조치들을 도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준기자 jjoony@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