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배기자] 무료 캡쳐 프로그램 '오픈캡쳐'의 유료화로 인한 법적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해당 프로그램의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저장'에 대한 복제권 침해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용 과정에서 프로그램의 일부가 메모리에 일시적으로 저장되는 것이 저작권법 상 '일시적 복제'에 해당하는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것.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국내 판례가 없는 상태라 더욱 관심이 모이는 상황이다. 복제권은 소프트웨어(SW) 저작권 침해 유형 중 하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오픈캡쳐 판매 업체인 아이에스디케이(ISDK)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한 기업과 기관은 총 178개사로 늘어났다. 지난 4월 8개 기업이 1차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현재 6차 소송까지 이어지며 참여 기업이 2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다음 기일은 오는 6일로 예정돼 있다.
저작권사와 기업 간의 이번 갈등은 2003년 처음 개발돼 2011년까지 약 9년간 인터넷에서 개인과 기업 사용자 모두에게 무료로 배포되던 오픈캡쳐가 지난해 2월 기업 대상으로 유료로 전환되면서 촉발됐다.
작년말부터 ISDK가 국내 사용 기업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구매하지 않으면 민형사상의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면서 집단소송으로 번진 것이다. ISDK는 이 SW의 저작권을 산 엣지소프트의 국내 독점 총판이다.
새롭게 떠오른 쟁점은 이용 과정에서 프로그램의 일부가 메모리에 잠깐 동안 저장되는 것을 '복제권 침해'라고 봐야 하는지가 핵심이다.
기업들은 해당 프로그램 전체를 일부러 복제하지 않은 데다 이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인 메모리 저장 과정을 복제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실행 원리에 대한 고려가 빠졌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은 이번 사태가 저작권법 상에 명시된 복제의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작권법 상 복제로 인정되기 위해선 '유형물에의 고정'이 필수이나 임시적 작업 공간인 메모리에 저장하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저작권법 제2조 22항에서는 일시적 복제를 '복제는 인쇄·사진촬영·복사·녹음·녹화 그 밖의 방법으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것을 말하며, 건축물의 경우에는 그 건축을 위한 모형 또는 설계도서에 따라 이를 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일시적 복제의 범위에 대한 구체적 판례는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일시적 복제는 원래 법 규정이 없다가 한미 FTA 이행을 위해 새롭게 법문에 규정하게 됐다.
민후 법률사무소 최주선 변호사는 "모든 일시적 저장이 저작권법 상의 일시적 복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어떤 일시적 저장이 저작권법상의 일시적 복제에 해당하고 또는 해당하지 않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저작권법 제35조의2 등 규정이 존재하기는 하나 이 또한 애매모호한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일시적 저장' 저작권 침해 여부, 국제적으로도 통일된 기준 없어
현재 국제적으로도 '일시적 저장'과 관련한 일관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다. 한국이 모델로 삼은 미국에서조차 판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저작권 조약도 일시적 저장에 따른 복제권 침해 여부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아 해석의 여지도 넓은 편.
미국의 경우 1993년 MAI 판례 등을 통해 일시적 저장에 대한 보호를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사건(Cartoon v. CSC)에서는 미국 제5연방순회법원이 이를 재해석하면서 과거 법원의 판단을 뒤집기도 했다.
이 법원은 '극히 순간인 것보다는 오랜 기간'이 어떤 것인지가 문제라며 전체 저작물 중 일부가 순차적으로 저장된 1.2초 이하의 시간은 '극히 순간'인 경우라 복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일본에서는 메모리에서 일어나는 일시적 저장을 반드시 복제의 개념에 포함시켜야 할 의무는 없다는 해석이 더 많다. 일본의 '컴퓨터프로그램의 저작권 문제에 관한 조사연구협력자회의보고서'에 따르면 프로그램의 실행에 따른 복제는 순간적이고 과도한 것이라 저작권 상의 복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영국 대법원은 올해 4월 인터넷 검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복제'는 저작권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원 저작권자의 명시적 동의가 없으면 저작권 침해가 된다고 본 고등법원과 항소법원의 판결을 파기한 것이다.
최주선 변호사는 "수많은 혼란스러운 기준 중 하나가 아닌 모든 기준을 정리하고 통합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의 정립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제까지 오픈캡쳐 관련 소송에서 복제권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한 주된 논의 대상이었던 '업데이트 절차' 역시 여전히 중요한 논점이다. 이는 오픈캡쳐(6.7 버전)을 실행하면 사용자가 프로그램의 설치 또는 업데이트를 모두 완료한 후 비로소 약관이 나오기 때문에 앞서 일어난 업데이트 행위 자체는 허용된 행위로서 불법적 행위가 아니라는 게 골자다.
김국배기자 verme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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