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는 아주 성황이었다. 300명쯤 들어갈 수 있는 행사장이 꽉 찼다. 주최쪽은 500명쯤이 모인 듯 하다고 했다. 뜻밖에 현지 참가자들이 많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진지했다.
행사는 10개의 선발된 한국 스타트업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현지 VC와 엔젤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질문답변을 한 뒤, 1등을 뽑는 형식으로 진행이 됐다. 물론 그 앞과 뒤, 사이사이에 어젠다에서 보듯 강의와 대담이 있었다.
두 회사, 쉐이커와 에스이웍스의 사례를 소개한다.
쉐이커(/www.shakr.com)는 영상 전문가들이 일반인들의 영상앨범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다. 일종의 마켓플레이스라 보면 된다. 무대에 오른 데이비드 리 대표는 쉐이커를 대개 이렇게 설명했다.
“프리랜서가 돈을 버는건 아주 힘이 든다. 영상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정말 뛰어난 편집기술이 있고, 너무 멋진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지만 고객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런데 같은 프리랜서라도 공예가들에게는 엣치(www.etsy.com)가 있고, 웹디자이너에게는 워드프레스(wordpress.org/)와 텀블러(www.tumblr.com)가 있다. 그 사람들은 거기서 자신이 만든 작품을 올리고, 블로그 테마 탬플릿을 팔면서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영상전문가를 위해 쉐이커를 만들었다!”
그는 이어서 쉐이커가 기본적으로 무료로 전문가들이 만든 동영상 탬플릿을 이용할 수 있으며, HD급으로 올리고 싶을 때만 돈을 내면 된다는 것, 서비스를 오픈한지 3개월이 되었는데 사용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것, 유료 전환율이 20%가 넘어 평균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는 것들을 설명했다. 그는 내용뿐 아니라 영어 발표 실력도 아주 훌륭해서, 발표가 끝난 뒤 심사위원을 맡은 빌 드레이퍼의 첫 질문이 “Who are you?”였다. 상당한 찬사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비드 리의 발표는, 앞으로 영어로 현지 투자자들에게 발표를 해야 할 스타트업들에게는 한번쯤은 봐두면 좋을 자료다. 물론 1등을 차지했다.
에스이웍스(www.seworks.co.kr)는 모바일 보안회사다. 안드로이드용앱의 소스코드를 해킹으로부터 지켜주는 메두사(medusah.net/)라는 솔루션을 들고 나왔다. 이 회사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삼성과도 계약을 맺은 회사다. 하지만 발표는 재앙에 가까웠다. 이 회사가 왜 뛰어난지, 다른 수많은 보안회사에 비춰 무엇이 더 나은지, 여기 왜 나왔는지, 어느 것도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발표한 사람은 CEO가 아니었고, 특히 엔지니어도 아니었다. 즉,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빌 드레이퍼는 점잖고 능숙했다. 그는 발표자가 무안하지 않게 농담을 섞어가며 부드럽게 분위기를 바꾼 뒤 영어를 잘못하는 CEO를 불러냈다. 그가 한국말로 답을 하면 진행자가 통역을 했다.
몇가지 교훈을 얻을 것이 있다. 우선 발표는 창업자가 하는게 옳다. 영어를 못한다면 통째로 외워서라도 해야 한다. 질문답변시간엔 통역을 붙여도 좋을 것이다. 발표는 그 제품이나 서비스에 완전히 정통한 사람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 스타트업에서는 그 사람이 창업자다.
적어도 발표자료는 완전히 외워야 한다. 무대에서 스크린을 힐끔거리면서 해서는 안된다. 완전히 외워서 물흐르듯 진행이 돼도 막상 무대에선 실수가 나올 수 있다. 몇몇 팀은 자료를 다 외우지 못한 듯 보였다. 성실하지 못하거나, 아마추어같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철저하게 실용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이런 곳은 선수들이 선수들을 만나는 곳이다. 개론에 가까운 설명이나 어설픈 비유는 나쁜 인상을 줄 수 밖에 없다. 불과 10분의 시간에 그런 일을 해서는 역시 서툴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초점을 분명히 맞춰야 한다. 아주 잘하는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심사위원들의 집중력이 떨어져 버린다. ‘와, 가능성이 많네'가 아니라 ‘뭘할지 잘 모르겠다'로 들린다.
다음 질문을 준비해야 한다. ‘이 발표를 들으면 상대는 무엇을 궁금해할까?’를 생각해보고, 그 답을 발표내용에 미리 포함해서 구성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 다음의 심도깊은 대화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특정한 그룹을 대상으로 한 소셜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다면, 첫번째 질문은 누구나 예상하듯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있는데 왜 그걸 써야 해?”다. 이건 발표내용에 당연히 포함이 돼야 한다. 그래야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컨텐트가 가장 중요하다. 발표를 자신감 있고, 당당하고, 좌중을 압도하면서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팀이 아주 좋고, 사업계획이 말이 된다면 발표 스킬은 그 다음이다. 실제로 에스이웍스는 그런 어마어마한 재앙과도 같은 발표를 끝낸 다음에, 드래이퍼로부터 방문을 받았다. 탁월한 해커들로 팀이 구성돼 있고, 삼성과 이미 계약이 돼 있다는 컨텐트가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비글로벌은 아주 멋진 행사였다. 아마도 처음으로 실리콘밸리의 메이저급 벤처캐피털과 엔젤, 인큐베이터들이 한국의 스타트업들과 공개적으로 만난 행사가 아니었던가 싶다. 참가한 팀들도 얻은 것이 많았을 것이다. 참가한 10팀이 심사위원들과 주고받은 질문답변 그리고 발표한 내용을 동영상으로 스타트업들이 함께 볼 수 있다면 다음 팀들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경우에 로컬에서 먼저 성공한 다음에, 그것을 기반으로 글로벌로 나가는게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이 처음에는 글로벌 시장에 무관심해도 된다거나, 몰라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기회는 우연찮게 찾아오지만 준비된 곳이라야 제대로 잡을 수가 있다.
후기 1 : 밸리에서 만난 미국 벤처기업들은 실제로 한국의 벤처들, 특히 모바일쪽 벤처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모바일 보급율이 압도적이고, 그만큼 재미난 서비스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네이버와 싸이월드 등을 미국 기업들이 자세히 들여다 보고 베낀 것도 많다는 얘기들도 나왔다. 요즘은 카카오톡의 비즈니스모델을 여러 곳에서 주시하고 있다고도 했다. KPOP과 한국 드라마 얘기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후기 2 : San Jose는 아무리 들어봐도 ‘샌호제’정도로 발음들을 했다. 서울에서 불과 열몇 시간이면 올 수 있는 동네에서 이걸 ‘새너제이'로 발음을 한다고 구라를 풀어도 한동안 통하는게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는 내향적이다. 이 큰 시장을 그냥 놔두기에는 좀 아깝지 않은가.
◆ 산호세의 코트라
산호세에는 코트라가 있다. 이곳에 한국 벤처들을 위한 좋은 시설이 있다. 단기간 머무를 일이 있거나, 실리콘밸리 진출을 앞두고 사무실을 구할 때까지 있을 곳이 필요하다면 이곳이 아주 적절하다.
24시간 출입할 수 있고, 근사한 사무공간과 다양한 회의실이 제공된다. 현지 파트너와 미팅이 있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일이 있을 때 이곳의 회의실들을 이용할 수 있다. 출입증을 발급하는 데는 몇분이면 충분하다. 스타트업들에게 제공되는 열린 사무공간 는 무료다. 와이파이도 제공이 되고, 침낭을 가져와서 자면서 일해도 된다. 권중헌 관장은 법률 지원서비스도 보강할 계획이라고 했다.
코트라 주소는 3003 N. First Street San Jose, CA 95134전화번호는 +1-408-432-5000.
권 관장은 매우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분으로 보였다. 젊은 스타트업들이 부담없이 연락하고 많이 이용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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