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나영기자] 지난 7월말 미국 미디어그룹사들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UHD(Ultra HD)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UHD TV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금의야행(錦衣夜行, 비단옷 입고 밤나들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야심차게 추진중인 UHD 상용화 전략을 직접 겨냥한 비판으로, 방송통신 부문 협력이 필요한 규제당국의 수장이 방송진흥 주무부처를 향해 '보람도 없는 멋부리기식 정책을 한다'는 의미의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이경재 위원장의 '펀치'가 날아들자 최문기 미래부장관도 가만 있지 않았다. 이 위원장의 '금의야행론'이 보도되자 곧바로 기자실로 내려온 최 장관은 "사업자들이 (적극 나서서) 하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하라 말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받아쳤다.
방송통신 진흥부처와 규제기관의 책임자가 UHD를 사이에 놓고 기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초고화질(UHD) TV가 뭐길래 최 장관과 이 위원장이 으르렁댄 것일까?
UHD는 풀HD((1920×1080)보다 4배 이상 선명한 초고화질 해상도(3840×2160)를 지원하는 방송 기술로 60인치 이상 대화면에서 생생한 현장감을 제공한다.
시장조사기관 SNE 리서치는 올해 전체 TV 출하량에서 UHD TV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1.1%에 불과하지만, 연평균 성장률이 191%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전문가들은 UHD TV를 차세대 TV로 주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내 방송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UHD 상용화 경쟁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케이블TV 업계다. 케이블TV 측은 내년 하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UHD 방송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세계 최초로 UHD 시범방송을 시작했다.
UHD 방송을 위해서는 대용량 데이터의 안정적인 전송이 중요한데, 케이블 망의 경우 광대역 전송이 가능해 추가적인 망투자도 필요없다.
위성방송인 KT스카이라이프는 지난해 10월부터 ETRI와 공동으로 Ka대역의 천리안위성을 이용한 UHD 실험방송을 진행해왔고, 지난 5월부터 미래부가 구성한 '차세대 방송기술 협의회'에 참여해 UHD 상용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회사는 2014년부터 무궁화6호 위성을 이용한 전국 단위의 UHD 시범방송을 추진하고 이를 2015년 상용화할 계획이다.
지상파의 경우 디지털 전환으로 남게 되는 700MHz 대역을 UHD 방송 주파수로 주장하고 있으나, 해당 주파수 대역은 통신용으로 쓰는 것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어 결론이 나지 못한 상태다.
◆온도차 "성장가능성" vs "아직 1%"
이처럼 방송사업자들이 HD 이후 화질경쟁을 위해 적극 나선 것에 발맞춰 정부도 UHD TV와 영상 콘텐츠시장의 성장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관련산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글로벌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제품을 앞세워 세계 UHD TV 시장을 선점하고 UHD 방송장비·콘텐츠 등 신성장 산업을 키울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현재 UHD TV 시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제조사가 시장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3가지 크기의 UHD TV 모델을 우리나라와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일본의 소니를 필두로 도시바와 샤프까지 UHD TV 시장에 가세하고 있다.
국내 TV 제조사들은 세계 UHD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4K 카메라 등 UHD 방송장비 시장에서는 일본에 밀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부는 향후 방송장비나 콘텐츠 시장 등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미래부의 역할이기 때문에 UHD 상용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당연한 책무"이라며 "장기적인 시각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세계 UHD 시장을 선도할 경우 UHD 영상 압축 기술이나 콘텐츠 제작 기술 등을 보유한 국내 중소기업까지 육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미래부는 지난 6월 '차세대 방송기술 발전전략'을 발표하고 UHD TV 상용화에 집중하고 있다. 케이블 방송은 2014년부터, 위성방송은 2015년부터 UHD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에는 UHD 방송장비, 콘텐츠 산업 육성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하지만 방통위의 입장은 미래부와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UHD TV를 상용화해야겠지만, 지금은 시기상조라는 시각을 가진 것이다. 무엇보다 방통위는 시청자들이 접할 수 있는 UHD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알맹이도 없으면서 UHD TV 마케팅에만 불을 지핀 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하다. 3D TV 바람이 불었다가 식은 것처럼 50인치 이상 고가인 TV를 구입하고도 제대로 된 영상물을 시청하지 못할 경우 소비자에게만 그 피해가 돌아간다.
미국 주요 방송사를 다녀온 이경재 위원장 역시 "UHD 서비스 도입시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라며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누가 총대를 메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콘텐츠를 누가 제작할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진흥부처와 규제기관으로서 미래부와 방통위가 다양한 지점에서 충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이같은 일이 비일비재할 수 있다"면서도 "지상파 방송사를 관할하는 방통위와의 보조를 맞추기보다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의 UHD 도입정책만 앞세우는 미래부에 대한 이경재 방통위원장의 서운한 마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나영기자 100n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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