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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성]기변보조금 '과잉'이어도 좋은 이유


꼬박꼬박 요금 내는 기본 가입자에게 혜택 집중해야

[강은성기자] 퇴근길에 우연히 한 통신대리점 앞에 서 있는 입간판에 눈이 갔다.

"SK텔레콤 착한기변, 대상자 아니어도 무조건 27만원 지원해드려요!"

매일 보조금과 영업정지 등에 대해 기사를 써 왔던 터라 무작정 그 대리점에 들어가봤다.

"무조건 할인해 드립니다. SK텔레콤 6개월 이상만 이용하셨으면 돼요. 남은 단말기 할부금은 고객님이 부담하셔야 하지만요."

번호이동을 한지 아직 1년도 안됐다고 해도, 그래도 괜찮다며 27만원을 단말기 값에서 즉석 할인해 주겠단다.

다음날 출근해서 SK텔레콤이 대리점에 기기변경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수수료를 얼마나 지급하는지 취재해봤다. 휴대폰 모델별로 적게는 30만원대부터 많게는 70만원대까지 판매수수료가 지급됐다.

보조금 관련 취재 때마다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곤 하는 한 대형 휴대폰 유통대리점 사장은 이렇게 귀띔한다.

"원래 기기변경에는 본사에서 나오는 수수료가 별로 많지 않아요. 그래서 기변을 하러 오시는 고객님들 상대하는 시간에 번이(번호이동)나 신규(가입) 고객들을 상대하면 훨씬 편해요. 보조금이 일단 많거든요. 저희가 할인해 드릴 수 있는 폭도 크고. 그런데 기변은 워낙 본사 수수료가 적다 보니 저희가 (할인을)해 드리고 싶어도 거의 해 줄 수 있는게 없었어요."

기기변경을 하는 고객은 대부분 가족할인, 결합할인 때문에 마음대로 번호이동을 하지 못하는 가입자가 많다며, 그같은 충성고객에게 제대로 할인을 못 해주니 오히려 죄송할 때도 많았다는 것이 이 사장의 설명이다.

그래서 SK텔레콤이나 KT가 기기변경에 대한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수수료를 많이 주는 것에 대해 그도 신이 난다고 말했다.

"사실 한 통신사를 10년 쓰신 분이 어디 다른데로 안가고 그대로 기계만 바꿔서 계속 이용해 주겠다는데 그냥 공짜로 드려도 안아깝지 않겠어요? 업고 다녀도 모자랄 판이지요. 그런데 그동안 통신사들은 이런 고객들에게 거의 보조금을 안줬어요. 오히려 어떤 통신사는 신규나 번호이동 대신 기기변경, 결합할인 같은 것을 받으면 대리점 수수료를 차감하는, 일종의 '페널티'를 매기기까지 했었죠."

이랬던 관행이 영업정지 기간을 빌어 '기존 가입자 우대' 정책으로 돌아서게 됐으니 '상도의'로 봐도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그는 말한다.

◆3사 보조금 7조6천억원…1인당 15만원 요금할인 가능

그동안 기자는 '보조금은 악(惡)'이라고 수차례 기사로 강조해 왔다. 독자들로부터 항의도 많이 받았다. 휴대폰을 싸게 사고 싶은데 보조금이 나쁘다고 말하는 기자의 논리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보조금은 '악'이다. 마약 같은 존재다.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각종 정보를 취득하고, 쇼핑몰에서 가격을 비교해보고, 요금할인-할부원가-단말기출고가-멤버십할인 등등 각종 항목들에 대해 훤히 꿰고 있는 똑똑한 일부 소비자는 휴대폰을 싸게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대다수 소비자들은 싸게 사기는 커녕 '호갱님'이 되고 만다. '호구 고객'이라는 판매상들의 은어다.

그나마 통신사들이 보조금 전쟁을 벌일 때나 '정보력'이 힘을 발휘하지, 어느 날 보조금이 동시에 얼어붙으면 아무리 정보력이 있어도 별 수 없다. 그냥 다 제값을 주고 사야 한다.

똑같은 휴대폰인데 한 달에도 몇 번씩, 아니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이 출렁이는 상황에서 고객은 그저 '운'이 좋기만 바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히 누가 더 싸게 살 수 있느냐는 작은 문제다. 더 큰 문제는 휴대폰을 바꾸는 이용자마저 전체 이동통신 이용자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는 이미 5천만을 넘어섰다. 한달 최대 번호이동자는 100만여명에 불과하다. 이 100만명을 위해 통신3사는 한달에도 수천억원의 돈을 허공에 뿌린다. 남은 4천900만명의 가입자들은 '약정'의 사슬에 묶인 채 바라만 봐야 한다.

통신사들이 뿌려대는 이 수천억원, 수조원의 돈은 휴대폰을 바꾸는 일부 이용자에게 가야 할 돈이 아니다.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단순 계산하면 7조6천억원이라는 이 돈을 5천만 이동통신가입자에게 나눠주면 15만2천원씩 돌아간다. 한달에 1만2천600원씩 요금을 할인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내 휴대폰 고지서에 찍히는 요금에서 1만2천600원이 덜 나온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기자를 비롯한 4천900만명에게 와야 할 혜택이 통신3사의 '가입자 빼앗기' 쟁탈전 때문에 100만명에게만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라면 누구나 '이것 참 이상하다. 억울하다' 이런 느낌이 들어야 한다. 억울함을 참다 못한 일부 소비자들은 결국 통신사를 2년에 한번씩 바꾸는 기 현상을 보인다. 한 통신사를 오래 유지해봤자 당췌 어디다 쓰는지도 모르는 멤버십이나 찔끔 늘어날 뿐 아무 혜택도 없기 때문이다.

고객을 철새로 만들어놓고는 통신사들은 "마케팅 과열 경쟁으로 수익이 악화돼 힘들다"는 어이없는 하소연까지 한다. 10년 고객은 헌신짝처럼 대하고 이제 갓 들어온 고객에게만 수십만원을 쥐어준 통신사가 할 소리는 아니다.

◆"꼬박꼬박 요금내는 가입자에게 혜택 더 집중해야"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기기변경 보조금만큼은 '과잉'이어도 좋다고 얘기하고 싶다.

이 역시 물론 논란이 있다. 기기를 변경한 사람들에게만 주는 혜택이지, 휴대폰을 바꾸지 않고 아껴가며 오래 쓰는 고객은 또 소외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SK텔레콤이 대리점에 지급한 판매수수료 표를 보면 이 역시 기준보조금인 27만원을 넘긴 과잉 보조금이며 방통위의 룰을 위배한 정황이라고 판단된다.

그래도 좋다. 이는 신규가입자만을 대상으로 한 차별적 행위가 아니라 통신사가 자신들의 가입자들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혜택이기 때문이다.

이번 영업정지 기간을 빌어 SK텔레콤과 KT는 각각 '착한기변', '통큰기변'을 실시한다. 통신사를 18개월 이상 이용하고 직전 3개월 평균 요금이 3만원을 넘으면 휴대폰을 바꿀 때 27만원을 할인해주는 내용이다.

아쉽게도 KT는 영업정지 기간인 20일간만 임시로 이 행사를 한다. KT도 기존 고객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영원히 2인자 자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속히 이 프로모션을 '임시'가 아닌 상용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키길 바란다.

그리고 한 단말기를 오래 썼더라도 단말기와 상관없이 가입기간에 따른 요금 혜택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 지금 있는 장기가입자 혜택은 다른 통신사로 옮겨가는 것을 막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꼬박꼬박 요금을 내는 가입자를 위한 혜택을 통신사들은 더욱 늘려야 한다. 최소한 보조금을 쥐어주는 신규 가입자보다는 현재 요금을 내는 가입자에 대한 요금할인이 더 많아야 된다는 얘기다.

부디 한 통신사를 10년 쓴 이용자가 요금과 단말기 혜택을 계속 받는, 진정한 '이용자를 위한' 경쟁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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