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리기자] '누가 인터넷을 지배할 것인가'
인터넷거버넌스 논의가 지난해 12월 열린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를 계기로 본격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 사회에서의 중요한 논의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일방적 정책 결정이 이루어졌다며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보장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1일 망중립성 이용자포럼 주최로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인터넷 거버넌스와 이용자의 참여방안' 오픈세미나에선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함께 시민사회· 학계· 업계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포럼 측은 "지난 12월 두바이에서 열린 WCIT에서 한국 대표단은 새로운 국제전기통신규칙(ITRs)에 서명함으로써 인터넷 규제에 찬성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며 "인터넷 정책결정 과정은 다양한 이해당사자(multi-stakeholders)의 참여를 보장하며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국내에서도, WCIT 회의에서도 정부주도의 일방적인 결정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번 국제통신규약(ITRs) 제정은 합의안이 실제 효력을 가질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인터넷 통제권에 대한 국제적 논의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오는 10월 사이버 안보 및 정보보호 관련 국제 규범을 논의할 '사이버스페이스 총회'와 내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헌법 등을 개정하는 'ITU 전권회의' 등 인터넷거버넌스와 관련된 굵직한 회의를 잇따라 개최할 예정이다.
때문에 인터넷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오픈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이동만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원장은 인터넷거버넌스 논의는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탑다운'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위키피디아에서 인터넷거버넌스의 정의를 찾아보면 핵심은 '바텀업(Bottom-up)'과 '다수이해당사자(multi-stakeholders)'이다"라며 "인터넷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부만, 혹은 기술·정책 전문가 만이 아니라 인터넷을 실제 사용하는 사람, 인터넷으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 인터넷을 통해 의견을 펼치는 사람 등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정부가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아직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서 "위에서 아래로 구현하는 체계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밑에서 정책을 만들어 위로 제안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덧붙였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인터넷거버넌스를 글로벌 인터넷에서 문제 해결이 필요한 사안이 무엇이며, 누가 풀어야 하며, 어디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제도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본인이 모르는 곳에서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인터넷 이용 환경에 대한 문제점를 알아서 해결하리라고 팔짱끼고 방관하면 안된다"며 "전혀 생각지 못한 인터넷 이용환경이 도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거버넌스 논의는 앞으로 미래 인터넷 환경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보이스 온라인(Global Voices Online)의 김재연 활동가 역시 이번 새 통신규약(ITRs) 제정은 국제적 논의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 이유로 ▲인터넷 규제에 관련된 다양한 규범과 이해관계의 정면 충돌을 예고하고 ▲인터넷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야심을 다른 국가들이 저지하려는 시도가 이뤄지면서 인터넷 권력 구조가 재편성 되고 있다는 점 ▲미국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인터넷을 도입한 우리나라가 이번 합의안에 서명했다는 점을 들었다.
김 활동가는 "전통 통신산업 이해관계에 충실한 대표단이 국내법과 상충이 적다는 명분 하에 이번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인터넷의 미래는 고려되지 않았다"며 "거기에는 인터넷의 미래는 우리 정부만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 시민들의 미래이며, 인터넷의 미래가 자유로운 혁신과 표현의 미래임이 간과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인터넷 강국은 기술적 인프라만이 아니라 그 기술을 접근하고 활용하는 것을 결정하는 제도적, 사회적 인프라도 우수한 나라를 가리킨다"며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투명하고 책임성 있는 인터넷 정책결정이 국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면 이후 본격화될 인터넷 미래에 관한 논쟁에서 우리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김영리기자 miracl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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