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현기자] 자판기에서 버튼을 누르면 일회용 스마트폰이 나오는 세상이 곧 열릴지 모른다.
기존 회로기판에 새기던 방식과 달리 프린팅 할 수 있는 인쇄전자 기술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부품가격이 크게 하락, 한번 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스마트폰 등장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지난 20일과 21일 양 일간 전라남도 순천 에코그라드 호텔에서 열린 '인쇄전자 실용화 국제 공동 심포지엄(PEK 2012)'에 참가한 학계·산업계 전문가들은 인쇄전자 기술이 현재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라고 입을 모았다.
프린팅 공정기법으로 유연 기판에 회로를 적용하는 방식인 인쇄전자 기술은 플렉시블(구부릴 수 있는)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식각·노광 공정을 여러번 거쳐야 하는 현재 포토 리소그래피 공정에 비해 친환경적으로 대면적 전자소자를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쇄전자기술의 또 다른 장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회로를 직접 찍어내 공장 설비를 클래스10(1㎥에 초미세 먼지가 10개 이하인 상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드는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미 갤럭시노트, 갤럭시탭 등 최신 스마트기기 150여종의 부품에 이러한 기술이 적용되고 있으며,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는 2013년을 기점으로 인쇄전자 방식으로의 세대 전환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지식경제부는 '인쇄전자용 초정밀 연속생산시스템'을 지난 7월 국가 주력산업으로 선정해 ▲OLED조명 ▲디지털 사이니지 ▲액티브 월페이퍼 ▲연성인쇄회로기판(FPCB) 등의 세부과제를 2018년 6월까지 연구해 나갈 계획이다. 세부과제 사업자로는 주성엔지니어링·삼성전자·LG디스플레이·하이쎌 등이 각각 선정돼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삼성·LG, 인쇄전자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에 먼저 적용
삼성전자 종합기술원과 LG디스플레이는 'PEK 2012'를 통해 각각 잉크젯 방식과 롤투롤 방식 등으로 제작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개발 사례를 소개했다.
롤투롤 방식은 회로기판의 소재인 금속잉크를 인쇄판(블랭킷)을 통해 찍어내는 방식이다. 신문 활자가 종이에 인쇄되는 방식을 연상하면 된다.
삼성전자는 2013년에서 2014년 사이 양산가능한 롤투롤 반사형 디스플레이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소재장비연구센터 이지열 박사는 "유기소재 잉크젯을 이용해 TFT-LCD를 제작했다"며 "유기소재의 경우 120~150도의 낮은 온도에서 공정이 가능해 안정적이고, 균질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실제 상용화에도 강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지열 박사는 "유기소재의 경우 소자를 구동시키지 않고 꺼놓은 상태로 오래 두게 되면 열화된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러한 문제는 표면처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제작한 디스플레이는 해상도가 QVGA(320×240)으로 VGA(640×480)의 4분의 1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소니와 아직 2~3년 정도의 기술격차가 있다"며 "삼성이 추구하는 소프트 일렉트로닉스의 특징은 모양 형성이 자유로워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으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LG디스플레이는 하이브리드 메탈 소재를 이용해 정확도가 플러스 마이너스 2 마이크론에 이르는 5세대 롤투롤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신공정연구팀 김철호 책임연구원은 "잉크젯 방식은 8세대, 롤프린팅과 임프린팅 방식은 5세대까지 검증이 끝난 상황"이라며 "그러나 인쇄전자 기술을 실제 제품에 적용하기에는 포토리소그래피 쪽의 공정 수율을 아직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TFT-LCD에서 사용하고 있는 칼라필터를 통한 공정의 경우, 99.9%의 수율을 보이는 데 비해, 인쇄전자 공정의 경우 수율이 95%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것. 금속잉크의 주소재인 은의 가격 상승도 상용화에 이르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하이브리드 메탈 소재의 가격이 계속 올라 포토 리소그래피 공정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없어졌다"며 "구리로 대체해 방법을 찾고 있지만 산화 문제 등으로 직접 패터닝되는 상태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LG디스플레이는 2018년까지 해상도 SVGA(800×600) 이상의 40인치 액티브 월페이퍼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소기업 "인쇄전자, 가격경쟁력으로 미래 시장 선도"
인쇄전자는 소재·소자·장비 전 분야에서 R&D 투자가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노진수 기술표준원 국가표준코디네이터는 "인쇄전자에는 소재·소자·장비 한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융합 산업"이라며 "소재·소자·장비에 서로 적합한 기술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요인"이라고 말했다.
파루(대표 강문식)는 순천대학교와 협력해 그라비어 인쇄(Gravure Printing, 요판 인쇄) 방식으로 96비트 RFID 태그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노진수 코디네이터는 "파루가 그라비아에 집중하는 이유는 다른 인쇄기법으로는 아직 잉크젯 수준의 성과를 내기 힘들기 때문"이라며 "저가,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견고한 인쇄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파루는 핸드폰에 있는 NFC 기능을 적용해 96비트 RFID 태그를 스마트폰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하이쎌(대표 윤종선)은 연성인쇄회로기판(FPCB)을 현재 인쇄전자 공정을 통해 양산하고 있다. FPCB 시장은 올해 약 12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이며 국내 시장 규모만 2012년 3조5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이쎌 최은국 연구소장은 "현재 하이쎌에서 생산하는 FPCB 기판은 카본 패브릭 소재를 이용해 절연층을 올려 구부릴 수 있으면서도 방열효과와 안정성이 뛰어나다"며 "어떤 소재에도 인쇄가 가능하다는 점이 인쇄전자 강점으로 기존 PCB에 붙여야 하는 반사 필름 위에 패터닝을 할 경우 필름이 필요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하이쎌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NFC 루프 안테나, NFC 메인 안테나, 갤럭시탭에 들어가는 디지타이저 기판, 갤럭시노트에 들어가는 5.3인치 FPCB 기판 등이다. 아직까지는 75마이크론 정도가 공정 한계이다.
하이쎌은 은 소자를 이용해 인쇄를 한 이후 구리 전해 도금을 하고, 이후 다시 은 도금을 하는 방식으로 제품의 전기저항치를 NFC 디바이스로 구동할 수 있는 상태까지 낮췄다.
하이쎌 최은국 연구소장은 "은은 전도도가 좋은 물질로 알려졌지만 저항을 낮추기 위해서 고형물을 추가하면 밀착력이 떨어지고, 밀착력을 증가시키면 저항값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인쇄전자 PCB로 기능하기 위해선 저항값이 낮으면서도 밀착력은 일정 수준 이상 나와야 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쇄전자의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은이라는 비싼 재료를 가능한 적게 쓰는 등 공정 방식이나 대체소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자재료기업인 동진쎄미켐(대표 이부섭·이준혁)은 흑연에서 벗겨낸 탄소 원자막인 그래핀의 가능성과 가격경쟁력에 주목했다.
동진쎄미켐 이종찬 팀장은 "동진쎄미켐은 2008년부터 인쇄전자용 그래핀 잉크를 개발했다"며 "그래핀은 반도체와 부도체의 장·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이종찬 팀장은 "그래핀이 기존 전자 산업에서 쓰였던 고가의 카본 소재를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며 "2020년에는 그래핀이라는 신소재가 폴리머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60억달러의 시장을 찾을 수 있는 소재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쇄전자산업협회 조현남 수석부회장은 "인쇄전자 기술은 아직 나노급 까지는 못 내려가도 이미 마이크론 단에선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이라며 "향후 인쇄전자 기술이 발전할 경우 국내 산업계가 일본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소재·장비 분야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주도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계현기자 kopil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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