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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인터넷 거버넌스'와 '인터넷' 거버넌스


[김익현기자] 인터넷 거버넌스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과 거버넌스(governance)의 합성어인 이 말은 세계 인터넷의 기본 질서를 규정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하버드대 법과대학 버크먼센터 연구원들이 처음 쓸 때는 루트 서버 운영, IP 할당 및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 운영 같은 것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2003년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WSIS) 선언문에 담기면서 인터넷 거버넌스는 인터넷 주소 자원, 스팸 등을 비롯해 인터넷 관련 공공 정책을 포함하는 넒은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전문 용어였던 인터넷 거버넌스가 최근 들어 종합지에까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때문이다. 최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폐막된 회의에서 채택한 국제통신규칙(ITRs)이 인터넷 통제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비판 여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내용만 놓고 보면 ITU가 이번에 채택한 문건에는 별 것 없다. 러시아, 중국 등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다. 이번에 채택한 ITR 1조 1항엔 아예 "통신 콘텐츠 관련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핵심은 인터넷 규제가 아니라 인터넷 세력 다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스팸이나 보안 관련 조항들이 '인터넷 통제'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이번 ITR은 인터넷 공간에 침투한 트로이 목마 같은 존재"라는 비판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러시아, 중국 등과 함께 이번 ITR에 서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인터넷 통제에 동참했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판엔 크게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통신과 인터넷이 한 몸이 되고 있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1988년에 규정한 산업 기준에 따라 ITU의 활동 영역을 제한하라고 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사실상 제대로 일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기자가 미국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반대 논리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얘기해보자. 미국은 인터넷 자유 수호라는 '명분'보다는 인터넷 주도권 유지란 '실리' 쪽에 좀 더 마음이 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쪽 전문가들이 다자간 협력 모델(multi-stakeholder model)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 부분을 한번 살펴보자.

현재 인터넷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나 인터넷 거버넌스포럼(IGF) 같은 단체는 ITU처럼 한 국가당 한 표씩 행사하는 구조가 아니다. 일종의 직능별 대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당연히 인터넷의 저변이 넓은 국가들이 의사 결정 구조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ITU가 인터넷 거버넌스의 중요한 정책 기구로 부상할 경우엔 미국의 입김이 급속도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들이 ITU 규칙에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조항을 삽입하려는 것도 마찬가지 차원이다. 솔직히 이 나라들은 ITU를 통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규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서비스도 수시로 차단하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ITR 개정 작업을 통해 노리는 것이 단순한 인터넷 규제 이슈가 아닐 수도 있다.

결국 ITU에서 양측이 팽팽한 힘 겨루기를 한 것은 '인터넷 거버넌스'의 기본 철학 논쟁이 아니다. 인터넷을 누가 주도할 것이냐는 세력 다툼이라고 봐야 한다.

이번 논쟁에서 미국, 영국을 비롯한 영미권 국가들과 러시아, 중국 등 비영어권 국가들이 팽팽하게 맞선 것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그런 관점으로 보게 되면 대표적인 인터넷 규제 국가로 꼽히는 인도가 개정 규칙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일부 외신들이 벌써부터 인터넷이 두 개로 나눠질 수도 있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 등이 주도하는 '개방된 인터넷'과 러시아, 중국 중심의 '폐쇄된 인터넷'으로 양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아쉬운 방통위의 '서명'

기자가 방통위의 이번 행보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인터넷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세력 다툼에서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웬지 어정쩡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외교적인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차기 전권회의 주최국이란 점을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행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통위가 인터넷 통제에 힘을 보탰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속내를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것도 이런 고민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택은 수가 좀 얕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외교의 기본은 '실리'와 '명분'을 잘 조화시키는 것이다. 인터넷 같은 거대 담론에선 특히 실리와 명분을 함께 챙기는 외교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런 관점에서 방통위의 이번 선택이 다소 아쉽다는 것이다.

두바이 현지에서 직접 취재하지도 않은 기자 입장에서 이런 단정을 한다는 게 다소 조심스럽긴 하다. 방통위 역시 이번 선택을 하면서 뭔가 복안이 있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곰곰히 따져봐도 그 복안이 뭔지 잘 짐작이 되지 않는다. '차기 전권회의 개최국'이란 실리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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