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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 특허권, 잘못된 SW특허 대표 사례"


NYT 비판…"모호한 아이디어에 지나친 권리 부여"

[김익현기자] "애플에 시리 특허권을 준 것은 미국의 소프트웨어 특허 제도가 얼마나 잘못됐는 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뉴욕타임스가 7일(현지시간) 애플을 비롯한 IT업체들의 무차별 특허 공세를 비판하는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에서 음성인식 기술 시리로 애플이 특허권을 받은 것은 잘못된 소프트웨어 특허 관행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애플은 지난 2004년 특허번호 8,086, 604로 명명된 시리 특허권을 처음 출원했다. 이후 9차례나 퇴짜를 맞은 끝에 지난 해 이 특허권을 손에 넣었다.

◆2004년 출원 이후 아홉번 퇴짜 맞아

뉴욕타임스는 애플이 시리 특허권을 취득하는 과정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다.

애플이 음성 및 텍스트 기반 검색엔진과 관련된 8,086,604 특허권을 처음 출원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4년이다. 당시엔 아이폰이 아예 등장하기도 전이다.

미국 특허청은 2년 여 동안 총 23시간에 걸쳐 애플의 출원 문건을 검토했다. 하지만 특허청은 애플의 8,086, 604 특허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존 아이디어를 살짝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게 기각 이유였다.

그러자 애플은 내용을 수정해서 재출원했다. 하지만 또 기각됐다. 이런 과정을 열 번이나 반복한 끝에 지난 해 애플은 마침내 '시리 특허권'을 취득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단 애플 손에 들어간 시리 특허권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지난 2월 삼성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한 뒤 갤럭시 넥서스 판매금지를 이끌어낼 때도 시리 특허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갤럭시S3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기기를 제소할 때도 시리 특허권은 중요한 공격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은 시리 같은 기술에 특허권을 부여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듀크대학 로스쿨의 아티 라이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8,086,604 특허권을 획득하는 과정을 보면 굉장히 잘못된 사례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호한 알고리즘-BM에도 특허권 부여"

애플이 처음 이 특허권을 신청할 때만 해도 아이폰이나 시리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여러 가지 검색 엔진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다양한 기기들을 활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인터페이스를 묘사했을 따름이다.

애플은 특허권에서 규정하는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는 방식만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음성 검색을 할 수 있다고만 설명해 놨다.

이후 애플은 기각과 재출원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비롯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뉘앙스 등 다른 업체들이 개발한 각종 기술들을 포함시켰다.

결국 애플은 2007년에 두 차례, 2008년 세 차례, 2009년 한 차례, 그리고 2010년 또 다시 두 차례 퇴짜를 맞은 끝에 마침내 지난 해에 시리 특허권을 손에 넣었다.

뉴욕타임스는 "신약 개발과 달리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새로운 개념에 대해서도 특허권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온라인 가격 계산 시스템 같은 모호한 알고리즘이나 비즈니스 모델에도 특허권을 부여할 정도라는 것.

이 때문에 특허권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우에 따라선 특허권 보유자들이 관련 없는 제품에 대해서까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특허청이 지난 해 애플이 부여한 시리 특허권은 이런 잘못된 관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애플-구글 특허관련 지출, R&R 투자 보다 많아

물론 특허 공세를 퍼붓는 것이 애플 만은 아니다. 모토로라,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연이어 특허 공세를 퍼붓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20년 사이에 미국에서 매년 제기되는 특허 소송 건수가 3배 가량 늘어났다. 지난 2010년엔 3천260건에 달했다.

특허 출원 건수도 갈수록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미국 내에서 컴퓨터 관련 특허 출원 건수는 매년 50% 가량 증가했다. 지난 해엔 54만 건에 달한다.

2000년 이후 구글은 2천700건, 마이크로소프트(MS)는 2만1천건 취득했으며, 애플은 4천100건 가량 획득했다.

과도한 특허 집착 때문에 부담하는 비용도 엄청나다. 스탠퍼드대학 분석에 따르면 스마트폰 업계가 최근 2년 동안 특허 소송과 특허 매입에 쏟아부은 돈이 200억달러에 이른다. 화성 탐사선 8대를 보낼만한 액수다.

놀랄 만한 수치는 더 있다. 지난 해 애플과 구글의 특허 관련 지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를 넘어섰다.

◆애플, 2006년 아이팟 소송 당한 뒤부터 특허권에 집착

이처럼 대부분의 IT 기업들이 특허 공세를 퍼붓고 있지만 가장 심한 것은 역시 애플이다. 2006년 이후 특허 소송 제기 건수 역시 148건으로 가장 많다. 게다가 권리 주장 범위도 상당히 포괄적이어서 애플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경우 다른 업체들은 휴대폰을 제대로 만들 수도 없을 지경이라고 전문가들은 비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애플이 특허권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아이팟을 둘러싼 '쓰라린 교훈' 때문이라고 전했다. 애플이 한창 아이팟으로 재미를 볼 무렵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란 싱가포르 업체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결국 애플은 크리에이티브가 소송을 제기한 지 3개월 만에 1억 달러로 합의를 했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스티브 잡스가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주장이다.

2006년까지 애플 법률 고문을 맡았던 낸시 헤이건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잡스는) 애플 직원이 꿈꿀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특허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직접 개발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방어수단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후 잡스는 아이폰 개발 과정에서 '특허권 무차별 매입'을 지시한다. 잡스 명령으로 애플 개발자들은 매달 '발명 폭로 회의'에 참석했다.각종 아이디어들을 주고 받으면서 특허권을 확보해야 할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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