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리기자] "항구에 머물러 있는 배는 언제나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안전했기 때문에 NHN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NHN 공동창업자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카카오톡을 들고 5년 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나 NHN을 떠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자는 1년 전 김범수 의장이 밝힌 퇴사의 변이 새삼 떠오른다. 요즘 NHN을 둘러싸고 회사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잡음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한 두달 전부터 업계에서는 NHN 내부가 심상찮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해진 NHN 의장이 'NHN은 대기업이 아니다'면서 경영회의에서 C레벨들을 다그쳤다더라, 칼퇴근을 유도하는 셔틀버스를 없앴다더라, 강도 높은 조직개편으로 실장 직급이 팀장으로 내려왔다더라, 인위적 구조조정은 아니지만 회사를 떠나는 개발자들이 쏟아진다더라 등의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직원이 회사 자금을 빼돌렸다더라는 '카더라' 소문도 나온다.
전부는 아니지만 소문은 어느정도 들어맞았다. NHN은 최근 전체 부서의 20~30%를 재조정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본부장 실장 팀장 등 보직을 없애 중간관리자를 재배치하기도 했다. 부장 차장 수석 등의 인사 제도도 개편했다.
지난달에는 이 의장이 사내 강연에서 "사내 게시판에서 '삼성에서 일하다 편하게 지내려고 NHN으로 왔다'는 글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 NHN을 동네 조기축구 동호회 쯤으로 알고 다니는 직원이 적잖다"며 "그동안 출근시간을 늦추고 사무 환경을 개선한 것은 절박하고 치열하게 일하는 직원들 때문인데 지금은 요새는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고 일침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그가 최근들어 모바일 메신저 '라인' 개발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직원들을 향해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쓴 소리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벤처에서 시작해 어느덧 연 매출 2조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NHN. 그런 NHN이 최근 업계 안팎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온라인 시장에서는 7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모바일 시장에선 카카오톡, 구글 등에 위협을 받고 있다.
내놓는 서비스도 다른 벤처기업들이나 경쟁사가 먼저 성공을 거두면 이후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여 시장 우위를 점하는 식이다. 모바일메신저나 오픈마켓, 부동산 거래, 전자책 시장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다보니 NHN은 어느새 '공공의 적'처럼 돼버렸다.
한 벤처기업 CEO는 "우리나라 인터넷 발전을 가로막는 건 네이버"라며 "아이디어를 갖고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지만 네이버가 중소기업 영역까지 진출해 생태계를 흐려놓기 때문에 해외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모바일 시장에서 기회를 보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카카오톡이라는 성공 스토리를 또 한번 만들어냈다. 카카오 조직 문화 또한 빠르고 창의적이며 능동적이다.
이해진 의장과 김범수 의장은 어찌보면 같은 벤처정신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해진 NHN 의장은 김범수 의장의 도전이 부러운 것은 아닐까. 대기업 NHN 직원을 향해 벤처 정신의 재무장을 강조한 것도 그런 마음 속 잠겨있던 벤처정신의 발로가 아닐까.
이 의장의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일침'이 굳어져버린 NHN의 조직 문화에 변화를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창의적 기업으로 출발한 NHN이 인터넷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NHN으로서나 인터넷 세상에서나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김영리기자 miracl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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