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숙기자] 4·11 총선 후보등록 첫 날인 지난 22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종로에 도전장을 낸 새누리당 홍사덕, 민주통합당 정세균 의원이 나란히 종로구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았다.
9시 23분께 먼저 선관위를 찾은 홍 의원은 등록 절차를 마친 뒤 "최선을 다하겠다"고 짧게 소감을 밝혔고, 5분 뒤 등록한 정 의원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홍 의원은 '정 후보와 함께 포즈를 취해 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응하지 않은 채 선관위를 떠났다.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두 후보 간 미묘한 신경전이 엿보였다.
'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여야 거물급이 나선 종로의 판세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홍 의원과 정 의원은 오차범위 내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만큼 양측 모두 상대방에 대한 견제심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정세균 "정권 심판하는 선거…분위기 좋다"
총선을 정확히 20일 앞둔 이날, 오전 7시 40분께 이화동 사거리에서 출근인사에 나선 정 의원을 만났다. 막바지 꽃샘추위가 몰아친 거리에는 겨울 못지않은 찬 공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정 의원은 시종일관 안면에 미소를 띤 채 시민들의 손을 잡았다.
정 의원은 한 자리에 서있지 않고 이곳 저곳을 뛰다시피 걸어다니며 "안녕하세요, 제가 정세균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시민들은 대부분 웃으며 정 의원이 내민 손을 잡았다. "고생 많으시다"고 격려하는 시민들도 있는가 하면, "뽑아주면 뭘해 싸움만 하면서"라고 호통치는 노인도 있었다.
잠시 인파가 뜸해진 틈을 타 정 의원에게 체감 민심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답은 "분위기가 아주 좋다"였다.
정 의원 캠프 관계자는 "바닥 민심은 좋다고 본다. 홍 의원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 쪽에 우호적이었던 분들이 주춤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시 반전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 의원의 선거 슬로건은 '종로 승리, 정권 심판'이다. 지난 4년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론과 연계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새누리당까지 심판하고 종로에 승리의 깃발을 꽂겠다는 전략이다.
정 의원 캠프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현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라며 "박 비대위원장이 '여당 내 야당'이라고 하지만, 새누리당의 1인자는 이명박 대통령이고 2인자는 박 비대위원장 아니냐. 2인자가 책임이 없다고 하면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했다.
◆홍사덕 "이번 선거는 박근혜 선거…정권심판 안 먹혀"
그러나 홍 의원은 정권 심판론에 대해 "안 먹힐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사조차 건넬 여유도 없을 만큼 빼곡한 일정을 소화하던 홍 의원과는 오후 3시 동대문을 지역에 출마한 홍준표 의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참석 직후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홍 의원은 "(시민들 사이에서) '박근혜가 뭘 잘못했나. 4년 동안 참고 서러움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야당과도 혼자 싸운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지금의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현 정부의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홍 후보는 "이번 선거는 박근혜의 선거지 MB의 선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홍 의원은 "국민들은 '민주당'이라고 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김 전 대통령이 뽑아 놓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노 전 대통령이 철학과 비전을 갖고 추진한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고 있다"며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끊고 노 전 대통령의 철학과 비전을 거부한 민주당은 국민들이 알고 있는 민주당과 다른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종로구에 전략공천 된 홍 의원은 선거운동을 다소 늦게 시작한 만큼 다른 이들 보다 2배 더 뛴다고 했다. 올해로 69세인 홍 의원은 하루에 10~15개의 일정을 소화한다고. 해병대 출신인 그는 선거운동도 "해병대 식으로" 하겠다고 했다.
홍 의원의 곁에는 이 지역에서 현역인 박진 의원이 돕고 있다. 박 의원은 출근 인사에서부터 주요 일정을 모두 홍 의원과 함께하며 지역민들에게 홍 의원을 소개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홍 의원 캠프 관계자는 "박 의원님께서 자기 선거 보다 더 열심히 뛰신다"고 전했다.
◆민심은…"정권 심판론? 별로 못 느껴" vs "바꿔볼 때 아닌가?"
종로는 지난 1988년 13대 총선 후 24년 동안 여당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나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자마자 보궐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될 만큼 전통적 여당 지역구라고 자신할 수는 없다.
특히 종로는 지역내 소득수준에 따라 여야 지지성향이 뚜렷하게 갈린다. 평창동, 삼청동, 부암동 등 서쪽은 선거 때 마다 새누리당 지지세가 뚜렷하지만, 서민층이 주로 거주하는 창신동, 숭의동, 명륜동은 전통적으로 야당인 민주통합당 지지율이 높았다.
방산시장 상인 50대 남성 이모씨는 "이명박 대통령을 왜 욕하느냐. 잘 되게 도와줬어야지"라며 '정권 심판론'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동대문 평화시장 인근에서 만난 40대 여성 서모씨는 "정치에 관심 없다"면서도 "경제 살리라고 뽑아줬더니 먹고 살기는 더 어려워졌다. 이번에는 한 번 바꿔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 만큼은 새누리당이 내세운 '과거세력 대 미래세력' 구도나 민주통합당이 내세운 'MB 대 반(反)MB' 구도 외에도 '지역 일꾼론'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홍 의원과 정 의원 모두 종로 출신이 아닌 만큼, 피부에 와 닿는 공약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종로 3가 인근에서 만난 30대 회사원 정모씨는 "심판론 보다 종로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살펴보고 투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화동에서 만난 50대 여성도 "싸움만 하는 사람 말고 지역 경제를 살릴 사람을 뽑고 싶다"고 했다.
<사진제공=홍사덕, 정세균 후보 캠프>
윤미숙기자 come2m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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