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이 처음부터 이렇게 화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역사를 말하면서 월트 디즈니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애니메이션의 효시이며 창시자이며 개척자이다.
미키마우스, 도날드 덕 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개발한 월트 디즈니. 월트 디즈니가 없었다면 연령을 초월해 사랑받는 오늘날의 애니메이션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who?-월트 디즈니'(다산어린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문화 장르를 개척하며 꿈을 현실로 이루어낸 월트 디즈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월트 디즈니는 어려서부터 상상력이 풍부했다. 농장의 동물들과 대화를 하거나,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린 시절, 미술 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동물의 생김새를 그대로 따라 그릴 때 월트는 사람과 같은 형상을 한 오리를 그려 선생님과 친구들을 놀래게 만들었다. 폭력적이고 완고했던 아버지 밑에서 늘 기죽어 살던 월트였지만 그에게 유일한 돌파구는 그림이었고,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안일을 도와야만 했던 월트는 제대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디즈니의 성공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 1919년 캔자스시티에서 활동할 무렵 월트는 어브 이웍스라는 아티스트를 만났다. 월트가 자유롭게 상상하며 일을 기획하길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데 반해 아이웍스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이토록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두 사람은 좋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며 디즈니의 성공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조그만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짧은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하지만 연속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 발표하지만 월트가 20살도 되기 전에 파산 신고를 해야 할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월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영화의 메카 헐리우드로 간다. 다행히 워너 브라더스가 그의 작품에 과심을 보여 월트의 작품이 워너브라더스를 통해 배급되기 시작했다. 캔자스에 남아있던 아이웍스도 헐리우드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또 다시 시련은 닥쳤다. 배급업자에게 속는가 하면 작품의 판권과 저작권을 빼앗기는 등 월트는 재정적으로 점점 궁핍해져갔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 속에서 디즈니 회사의 간판 스타 '미키 마우스'가 탄생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친 비행기'라는 제목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월트는 쥐의 모양을 딴 미키마우스를 만들어냈다. 시사회에서 '미친 비행기'가 뜨거운 호응을 얻자 용기를 얻은 월트는 기존의 무성영화에서 소리를 입혀 '스팀보트 윌리'를 선보였다. 이 애니메이션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월트는 다시 도약할 수 있게 됐다. 이후 회사 월트 디즈니는 도날드 덕, 플루토, 구피 등의 다양하고 독창적인 캐릭터를 창조하며 디즈니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디즈니의 첫 번째 장편 만화 영화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플롯과 스토리 면에서 장편 영화가 갖춰야 할 요소들이 잘 버무려진 새로운 개념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이었다.
1950년대 들어 디즈니는 점차 장편 애니메이션에 총력을 쏟았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도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했던 월트는 남녀 간의 달콤한 로맨스를 다룬 '비버 밸리', '신데렐라' 등을 선보였다.
더구나 첫 극영화인 '메리 포핀스'는 큰 성공을 거두면서 월트 디즈니의 명성을 드높였다. 이 무렵 그는 디즈니랜드 건설 계획을 발표한다. 애니메이션 열풍이 불자 어린이들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함께 놀고 사진도 찍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에 월트는 어린이들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열어주고자 디즈니랜드 건설 기획에 직접 참여했다.
현재 디즈니랜드는 개장 이후 총 입장객 수가 2억 명을 넘어섰으며 연간 입장자가 1천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꿈꾸던 환상이 실현되는 곳'인 디즈니랜드는 그의 사후에도 변함없이 발전하며 사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1966년 12월15일 폐암으로 월트가 사망하자 뉴욕타임즈는 월트의 예술관을 선하고 깨끗한, 미국적인 아름다움으로 규정하며 그보다 더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긴 이는 없었노라고 칭송했다.
평생 동안 29개의 오스카상과 4개의 에미상, 어빙 탤버그상 등 700개 이상의 상과 표창장, 명예 학위를 받았던 월트 디즈니. 그림 그리는 재주와 기발한 상상력, 꿈을 현실로 이루고 말겠다는 집념과 끈기밖에 없었던 소년. 천재 애니메이터, 헐리우드 최고의 사업가이자 예술가로 남은 사나이. 애니메이션의 대명사가 된 그 이름은 바로 월트 디즈니다.
좋은 책의 발견 북스커버리 cbci 서하나 jindalae@cb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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