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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행복]정약전과 천주교 박해 사건…김훈 <흑산>


이주의 추천 전자책

[정종오기자] 경기도 마재(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능내리)의 정 씨 가문에는 네 형제가 있었다.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가까운 곳이었다. 첫째 정약현의 딸, 명련은 황사영을 남편으로 맞는다.

네 명의 정 씨와 한 명의 황 씨는 조선 후기, 소용돌이 역사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들은 천주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정약종과 황사영은 죽음으로 맞서면서 끝까지 천주교를 버리지 않았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순교하고자 스스로 결심한 셋째 정약종으로 인해 목숨을 건졌다.

김훈의 <흑산>은 정 씨 가문과 황 씨의 이야기이다.

마재 정 씨 가문의 네 형제를 역사적으로 이야기할 때 가장 앞서는 사람은 언제나 막내 정약용이었다.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이상 사회에 대한 희망을 책으로 엮어낸 대학자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들 네 명의 정 씨 가문에 대한 책을 낼 때는 언제나 '정약용과 누구누구'를 사용했다. 역사적 비중이 정약용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었다. 이덕일 교수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김훈의 <흑산>은 정약용이 아닌, 정약전과 황사영에 포커스를 맞췄다. <흑산>은 정약전이 유배 간 '검은 섬'이다. 그곳에서 물고기의 생태를 관찰한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탄생한다.

◆아우구스티노에서 알렉시오에 이르는 죽음

김훈의 <흑산>은 아우구스티노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알렉시오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소설이다. 소설의 시작점은 이렇다.

"정약종, 너의 사호는 무엇이냐."

"아우구스티노다. 사호가 아니라 세례명이다."

정씨 가문의 셋째 정약종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둘째 정약전과 막내 정약용과 달리 정약종은 '골수' 천주교인이었다. 역사학자 이덕일 교수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 장약종의 체포과정을 보면 스스로 천주교인임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했음을 알 수 있다.

"정약종은 2월11일 체포되었다. 자신을 잡으러 가던 금부도사를 길에서 지나쳤으나 자신을 잡으러 가는 길이냐고 묻고는 스스로 체포된 것이다."

정약종은 천주교로 인한 죽음을 받아들였고 순교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야! 알렉시오. 너 황사영이지?"

알렉시오는 황사영의 세례명. 황사영은 체포됐고 능지처참을 당한다. 정약종과 황사영의 죽음이 <흑산>의 시작과 끝이라면 그 중간의 이야기는 살아남은 정약전과 당시 천주교를 비밀스럽게 믿고 따르던 민초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끝없이 등장하는 민초들, 이미지에 묶여 입체적 서사는 실패

소설 <흑산>은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를 둘러싼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정약전과 황사영이 중심에 놓여 있지만 당시 민초들이 많이 등장한다.

정주에서 말을 끌고 있는 마부 마노리, 궁궐에서 쫓겨난 늙은 궁녀 길가녀, 마포나루에서 들고나는 배꾼들에게 술을 파는 강사녀, 정 씨 가문의 노비로 있다가 면천된 김개동과 육손이…이들은 모두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민초들이 당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가슴 속에 아로새겼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훈은 소설 속에서 "주여, 주여 하고 부를 때 노비들은 부를 수 있는 제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겨웠다."라고 묘사했다.

정조 서거이후 조선후기 사회는 정순왕후의 시대였으며 외척의 시대였다. 사도세자와 정조에 적극 반대했던 노론 벽파가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남인들은 처절하게 숙청당했다. 남인들을 숙청하기 위해 노론 벽파는 천주교를 끌어들인 것이다.

김훈의 <흑산>에 등장하는 민초들과 정약전, 그리고 황사영의 이야기 구조는 아쉽게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내면의 이야기에 주목하다 보니 인물 개별적인 묘사는 뛰어나지만 장편을 이끄는 입체적 이야기 구조는 부족하다.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로 발전하지 못했다.

장편과 단편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편은 등장인물이 적는 반면 장편은 등장인물이 많다. 단편은 한 인물의 내면에 주목하는 반면, 장편은 다양한 사건 속에서 여러 인물들의 역할과 입체적 서사구조를 가진다.

김훈의 <흑산>은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단편 소설적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다. 각 인물들이 서로 엮이고 설키면서 갈등과 화해,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하다보니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동떨어져 여러 이미지로만 남아 버렸다. 소설을 읽어 나가는데 이어지는 느낌 보다는 서로 단절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 이제 여기에 사는 사람들

소설은 정약전이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으로 바꾸어 부르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유일하게 흑산에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창대에게 정약전은 이렇게 말한다.

"玆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黑은 너무 캄캄하다. 玆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정약전은 '흑산도'에 유배되면서 절대 다시는 육지로 나가지 못할 것임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살아있는 몸과 무한히 많은 시간 뿐. 흑산에서 정약전이 할 수 있는 일은 바닷가를 거닐고, 물고기와 날아다니는 새를 쳐다보는 일. 그곳에서 <자산어보>가 시작됐다. 한 인간의 숙명이었다.

김훈의 <흑산>은 조선후기 천주교를 둘러싼 민중들의 믿음과 갖은 고초를 겪으며 배교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소설에 등장하는 민초들이 입체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이미지에 머물러 버렸다. 그런 요소들이 장편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한계점으로 노출된다.

<흑산>에 나오는 정약전의 말 처럼 '또 지금, 이제,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이고 서로 연결되는 점을 찾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르: 소설

저자: 김훈

출판사: 학고재

가격: 1맘3천800원

◆이주의 추천 전자책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장르: 시/에세이/기행

저자: 정희재

출판사: 넥서스

가격: 5천760원

<어린왕자>는 지금의 '지구별 어른'들에게 꼭 필요한 동화이다. 단순히 <어린왕자>를 다시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구별 어른'들이 현재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어린왕자의 여행이 곧 '나' 자신을 회복해 가는 여정임을 말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 속에서 나를 치유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장르: 소설

저자: 고정욱

출판사: 애플북스

가격: 5천원

사회에서 있을 법한,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을 통해 사회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남모르게 차별받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그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청소년들의 내면을 마치 꿰뚫어보듯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장르: 시/에세이/기행

저자: 이생진

출판사: 우리글

가격: 3천500원

이생진 시인은 평생을 바다와 섬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고독과 섬의 고독을 잇는 시를 써왔다. 죽을 때까지 섬으로 떠나서 죽은 뒤에도 섬으로 남고 싶다는, 살아 있는 섬이자 섬시인이다.

<30 Thirty-젊은 작가 7인의 상상 이상의 서른 이야기>

장르: 소설

저자: 김나정, 한유주, 김언수, 김성중, 정용준, 박주현, 박화영

출판사: 작가정신

가격: 6천원

각각의 작품들은 저마다 다채롭게 삼십 세의 삶을 펼쳐낸다. 다만 한결 같이 그 결과가 죽음 혹은 소멸인 것을 볼 때, 이 소설들은 한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대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통 인식 속에 날카롭게 현실을 파고든 이들 작품들은 삶의 이면을 파헤침으로써 독자들에게 망망대해와도 같은 서른이라는 시간대 위에 현재의 위치를 보여주는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열려라 클래식-초보 클래식 매니아를 위한 클래식 입문서>

장르: 예술/대중문화

저자: 이헌석

출판사: 돋을새김

가격: 8천원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어 하지만 정작 어떤 곡부터 들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런 클래식 초심자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다. 시기별로 클래식 음악을 구분했고, 각 시기에 유명한 작곡가들, 그들의 작품 중 소장할 만한 추천 음반 리스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식 파괴의 경영 트렌드 28>

장르: 경제/경영

저자: 김상훈, 비즈트렌드 연구회

출판사: 원앤원북스

가격: 9천원

미래의 성장 기회를 모색하는 경영자에게 '상식이 되어버린 경영 트렌드'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상식을 뒤엎는 비즈니스 트렌드만이 진정한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상식 파괴의 경영 트렌드를 통해 경영자들에게 새로운 경영패러다임과 시장에 대한 통찰을 주기 위해 집필되었다.

<버지니아 울프, 그리운 사람>

장르: 소설

저자: 버지니아 울프

출판사: 하늘연못

가격: 5천원

버지니아 울프 단편소설 전집 총 4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독자는 버지니아 울프가 죽기 전이나 죽은 뒤에 여러 정기간행물과 단편집에 소개된 작품, 그리고 미발표 유작들을 만날 수 있다.

<소설, 깊이 들여다보기>

장르: 소설

저자: 다자이 오사무, 오카모토 기도, 아리시마 다케오, 미야자와 겐지

출판사: 바른번역(왓북)

가격: 3천원

이사카 코타로의 <마왕>에서는 미야자와 겐지의 <주문 많은 음식점>에서 지배인의 명령을 따르며 합리화하는 손님의 모습을 예로 들어 파시즘을 설명한다. 온다리쿠의 <초콜릿 코스모스>의 모티브는 만화 유리가면이다. 이렇게 우리가 평소 접하는 작품 속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물론 숨겨진 이야기를 몰라도 책을 읽는데 지장은 없지만 숨겨진 이야기를 안다면 이해하는 즐거움이 배가 되지 않을까?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1>

장르: 시/에세이/기행

저자: 박민우

출판사: 플럼북스

가격: 5천원

이 책은 사진과 감상적인 글로 일관하는 여행기가 아닌, 현장에서 현지인들과 부딪히는 사람냄새 나는 여행기이다. 허황되지 않고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는 뚜렷한 시선, 여행가 특유의 번뜩이는 감각과 재치, 절대로 눈을 뗄 수 없는 힘있는 사진까지 도처에서 매력이 뿜어져 나온다.

<안티 크리스트>

장르: 인문

저자: 프리드리히 니체

출판사: 이너북

가격: 3천400원

니체의 기존 사상에 뿌리내린 니힐리즘의 반론이 만들어낸 크리스트교를 다시 한 번 조명해주고 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재탄생됐다고 할 정도로 이 책은 당시 시대상에 녹아내린 니체의 혁명적인 사상들의 총 집합체이자 시대적 센세이션이다.

이주의 추천 전자책은 반디앤루니스(www.bandinlunis.co.kr)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정종오 엠톡 편집장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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