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기자] 생태계는 질서가 있다. 미생물은 식물의 먹이가 되고, 식물은 초식동물에게,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의 먹이가 된다. 그것을 두고 우리는 '먹이 사슬'이라고 말한다. 생태계는 이런 선순환을 통해 계속 유지되고 일정한 질서를 만든다.
먹이 사슬에서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의 재미와 오락을 위해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본능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곡 필요한 부분만 먹는 것이 먹이 사슬의 기본 질서이다.
그런데 이 '먹이사슬'을 거부하는 종(種)이 있다. 바로 '인간'다. 자신보다 힘 있는 사람에게도 온갖 모략과 치졸한 수법으로 잡아먹는다. 때론 자신보다 힘이 센 한 사람을 정하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연합해 괴롭힌다. 더욱이 생존 본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미와 오락거리로 다른 인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는 '먹이 사슬'을 인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고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악습' 중의 하나이다.
은이정의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중학교 아이들의 '집단 괴롭힘'을 다루고 있다. 학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들 문제로 한번 쯤 겪어 봤을 이야기를 소설로 묶었다.
◆몸집이 가장 큰 기린, 하지만 싸움은 못한다
소설 속 내용의 한 부분부터 먼저 언급해 보자.
"기린은 키가 커서 나무 꼭대기에 있는 이파리는 잘 뜯어 먹지만 싸움은 못한다. 게다가 목이 뻣뻣해서 그냥 서서는 입이 바닥에 닿지 않아 물을 마실 때 다리를 양쪽으로 좍 벌리고 마신다. 그러다 실수하면 넘어질 수도 있고 한번 넘어지면 잘 일어서지 못해서 물을 마실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를 괴롭히는 이는 같은 반 정진과 하태석. 정진은 하이에나 같은 녀석이라고 말한다. 반면 하태석은 악어에 비유된다. 하이에나 '정진'은 늘 엄영섭을 괴롭히거나 찝쩍대면서 괴롭히지만 하태석은 그런 모습을 조금 떨어져 즐긴다. 직접적으로 엄영섭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하이에나가 물고 온 먹이를 조용히 먹어주는 존재가 '악어'이다.
하이에나와 악어는 그렇게 자신들보다 크지만 '멍텅구리' 임영섭을 괴롭히는 맛으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하이에나와 악어가 '기린' 같은 엄영섭을 귀찮게 하고, 엄영섭의 물건을 집어가거나 혹은 갖은 방법으로 힘들게 하지만 학급 반 친구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자신의 일이 아닌 이상, 방관자적 입장을 보인다.
학급에서 완전히 고립된 '기린' 엄영섭은 혼자 책상에 앉아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직접 골라 산 <사바나에 사는 동물들>은 언제나 자신의 현재를 벗어나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좋은 친구이다.
◆ 학급의 리더, 담임과 반장…코끼리와 하마의 무관심
담임과 반장은 엄영섭이 학급에서 이른바 '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엄영섭에게 '코끼리'에 비유되는 반장은 "누가 너 괴롭히면 담임한테 가서 일러."라고 말한다. 고작 엄영섭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다. 그러면서 반장은 스스로 자신의 비겁함을 깨닫는다.
"맞설 힘이 없어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한테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하는 내가 비겁했다. 쓴웃음이 났다."
하이에나와 악어의 괴롭힘은 더욱 교묘해 진다. '따'의 단계가 대게 다 그렇듯이 이들은 엄영섭에게 이제 돈까지 갈취하고 나선다. 신체를 괴롭히고, 그 다음 단계는 돈을 갈취하는 것이 그들 생태계의 ‘악순환’인 것일까.
엄영섭이 학급 내에서 집단 따돌림뿐만 아니라 이제 돈까지 갈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담임은 반장을 부른다. 담임은 "엄영섭을 잘 지켜보고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나에게 알려라. 그래야 담임인 내가 사건이 커지기 전에 해결할 거 아니냐."라며 반장에게 주문한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두고 담임 또한 "여전히 (나는) 민태준(코끼리 반장)이 아이들 사이에 개입해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상황을 조종해 주었으면 싶었다. 따지면 따질수록 극히 이기적인 교사가 바로 나였다."라고 실토한다.
학급의 리더인 담임과 반장, 스스로 자신을 두고 '비겁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자책하는 동안 엄영섭에 대한 괴롭힘은 계속 되고 있었다.
◆아빠의 부재시대, 우울한 현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중학2학년의 집단 괴롭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소설 속에는 신기하게도 아빠(아버지)의 존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대부분 엄마(어머니)가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고작 소설 속에 나오는 아빠의 모습은 민태준(반장)이 시험공부 중에 컴퓨터로 '야동'을 보다 엄마에게 들켰는데 이때 딱 한줄 아빠가 등장한다. 그것도 민태준 엄마가 '무슨 일이냐.'며 관심을 가지는 아빠를 향해 "당신은 신경 쓸 것 없어! 나가! 태준이 시험공부 해야 해!"라며 철저하게 무시당한존재로.
아빠는 철저하게 아이들 문제에 소외돼 있고 관심 밖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아 답답하고 씁쓸했다.
언젠가 기자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공개수업'에 간 적이 있다. 대부분 엄마들이 교실 뒤쪽을 채웠고 아빠가 온 경우는 나 혼자 뿐이었다. 학교와 아이, 학부모(엄마와 아빠)가 교육의 주체일 텐데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는 '아빠'는 늘 부재하고 있는 모습이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괴롭힘을 당하는 엄영섭의 입장, 반장인 민태준의 입장, 담임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중학2학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들의 위치를 사바나에 살고 있는 동물에 빗대 소설을 풀어가는 과정이 이채롭다.
소설은 아이들의 학급을 두고 "(교실은)정글이 아니라 사바나"라고 말한다. 정글은 온갖 풀과 나무들이 있어 숨을 곳이라도 있지만 사바나는 허허벌판으로 노출돼 그 어디에도 숨을 수 없는 곳! 그곳에 아이들은 약육강식과 비인간적 요소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다.
장르: 청소년
저자: 은이정
출판사: 문학동네
가격: 5천700원
◆이번 주의 추천 전자책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장르: 시/에세이/기행
저자: 이해인
출판사: 샘터사
가격: 8천460원
암 투병과 동시에 사랑하는 지인들의 잇단 죽음을 목도하는 아픔의 시간들을 견뎌내며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이해인 수녀의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이 보이듯이,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비로소 보이는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수도자로서의 삶과 살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아우르며 때론 섬세하게, 때론 명랑하게 그리고 때론 너무나 담담해서 뭉클하게 다가온다.
<법정 스님 숨결>
장르: 시/에세이/기행
저자: 변택주
출판사: 큰나무
가격: 6천원
저자는 '법정 스님과 십 년' 인연을 갖가지 에피소드를 곁들여 풀어놓는다. 조그만 일에도 천진스런 아이처럼 잘 웃으시고, 넘치는 유머감각은 영락없는 개그맨 수준이고, 흙처럼 구수하고 정겨운 민화 속 호랑이를 꼭 빼닮으셨다는, 겉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한없이 여리시고 푸근하고 세련미 묻어나는 법정 스님 인간 면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믹솔로지 - 믹솔로지스트 김봉하의 칵테일 레시피>
장르: 가정생활/미용
저자: 김봉하
출판사: 링거스그룹
가격: 9천200원
대한민국 TOP 믹솔로지스트 김봉하의 더 맛있고, 더 건강하고, 더 신선한 칵테일 레시피 가이드 북,
<착한빵 에코빵 - 5無선언 : 밀가루, 계란, 우유, 버터, 첨가물 No!>
장르: 가정생활/미용
저자: 김영인, 김영신
출판사: 예담
가격: 8천280원
어린 시절부터 아토피가 있기는 했지만 적당히 조심하면서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성장기를 보냈던 그녀들이 에코빵을 개발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성인이 된 이후에 급격히 악화되는 증상으로 휴학, 휴직을 경험했던 것. 그때 평범한 일상을 빼앗기면서 겪어야 했던 상실감과 소외감, 불편함이 컸기에, 지금은 블로그(blog.naver.com/hyunslynn)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에코베이킹을 전파하고 있다.
<프라다 이야기>
장르: 청소년
저자: 잔 루이지 파라키니
출판사: 명진출판
가격: 6천원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공식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고 인터뷰도 꺼리는 인물로 유명하다. 이 책은 미우치아의 밀라노 국립대학 동문이자 패션계 탐사 기사 전문 기자가 쓴 세계 최초의 미우치아 프라다 평전으로서, 베일 속에 가려져온 미우치아의 삶과 프라다 그룹의 발전 과정을 자세히 밝혀낸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옷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매번 독특한 스타일을 내놓은 창조적 디자인 과정, 작은 상점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도전정신이 페이지마다 가득 담겨 있다.
<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장르: 어린이
저자: 이영서
출판사: 문학동네
가격: 5천700원
"역사물의 교훈주의를 깨끗하게 뛰어넘어 본격적인 역사동화의 장을 열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거머쥐었다. 조선 시대 천주교 탄압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필사쟁이의 삶을 통해 사회와 개인의 이데올로기, 지식계층과 일반 백성들의 생활사 및 문제의식 등을 내밀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장르: 소설
저자: 김소진
출판사: 문학동네
가격: 7천200원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고통받는 삶과 의식세계를 핍진하게 그려내면서도 그 가난과 고난에 대한 묘사자와 관찰자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가난과 민족 수난의 현실에 온몸으로 밀착하고 있다.
<데샹보 거리>
장르: 소설
저자: 가브리엘 루아
출판사: 이상북스
가격: 7천200원
<내 생애의 아이들>이 작가의 8년여의 교사 생활을 바탕으로 써낸 것이라면, <데샹보 거리>는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 캐나다 매니토바 주 위니펙 근교의 작은 거리에서 지낸 어린 시절 기억을 끄집어내 쓴 18편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그리고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제법 복잡다단한 가족사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지만 이야기들은 단순한 개인의 추억, 회상을 넘어선다.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장르: 역사/신화/문화
저자: 이임하
출판사: 책과함께
가격: 1만1천520원
전쟁미망인의 전쟁 경험이나 전후의 삶을 남긴 기록은 거의 없다. 정부와 언론의 자료, 전쟁 주체들의 회고록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 발발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기본적인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전쟁미망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그 구술 내용을 토대로 그들의 삶을 복원하고 분석했다.
/정종오 엠톡 편집장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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