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기자] 국정감사. 국감을 앞둔 국회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질의서를 준비하느라 밤을 새는 보좌관, 의원들이 어떤 질의를 하는지 파악하느라 주변을 맴도는 업계 관계자들이 넘쳐난다.
이 기간에 쏟아지는 의원별 국정감사 자료집은 해마다 어떤 의원들이 현안에 관해 얼마나 관심이 높은지 보여주는 지표다. 의원 질의서가 담긴 보도자료는 기자의 손길을 기다리며 정론관 앞에 쌓인다.
상임위원회별 국감이 진행되고 있는 지난 20일과 22일, 국회 의원회관과 본청을 둘러보았다.
◆밤새는 건 기본…'떡 진 머리' 보좌관
국회 의원회관에 들어서자 밤새 질의서를 쓰느라 머리를 감지 못한 '떡 진 머리' 보좌관을 만날 수 있었다. 의원회관에는 국감 전날까지 꼬박 자료를 모은 다음, 새벽까지 불을 밝히고 질의서를 쓰는 의원방이 부지기수다.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어느 직업이나 밤새 일할 수 있지만, 질의서 답변을 늦게 내놓는 경우가 많아 국감일을 며칠 앞두고 일감이 몰릴 때가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이 스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의 마당이다.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간의 관심이 국정감사에 집중된 만큼 의원들은 나름의 이슈와 발언을 단단히 준비한다.
의원들의 열의가 클수록 보좌관들이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산더미처럼 쌓인 자료를 정리하고 질의서를 작성한다. 초선의원실 보좌관은 "자료를 정리하는 데만 하루가 꼬박 다 갔다"며 "오늘도 집에 들어가기는 틀린 것 같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국정감사의 또 하나의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의원별 자료집. 다섯권 이상의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하는 의원방도 있다. 자료집 제작의 중심에도 보좌진들이 있다. 초선의원실 보좌관은 "이번 국감은 정책국감이다"라며 "이번에 내는 자료집만 엄청나다"라고 말했다.
◆국감, 업계는 '로비중'
국회의원들이 국감에서 어떤 질의를 할 지,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귀를 쫑긋 세운 채 의원실 주변을 맴돈다. 국감 시즌에는 아예 국회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은 업체 직원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OO 의원실. 보좌관과 국감쟁점에 대한 얘기를 꺼내들기가 무섭게 기업 관계자가 불쑥 들어선다.
평소 의원실 문지방을 제집 드나들듯 하던 C 회사의 이 관계자는 "요즘 매일 오전에는 회사에 들어가 보고서를 쓰고, 오후에는 의원회관으로 출근하는데 너무 힘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관계자는 미디어렙 법, 채널사용사업자 규제, PP 보호 관련 시행령 개정 등에 대한 정보를 귀동냥해 매일 보고서를 쓴다.
몇분 뒤, 진OO 의원실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서는 의원회관을 지나치는 '국회담당자'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들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라며 자리를 잡고 앉는 S기업 관계자들. 불쑥 경쟁사 서비스에 대해 말을 꺼낸다.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되면 저 쪽에 먼저 적용해야 하고..."
법률안의 유불리에 따라 방송통신 기업 관계자들의 목소리도 달라진다. 한OO 의원이 관심을 갖고 있는 IPTV 법률안 얘기가 나오자 S기업 관계자는 "IPTV 요금 신고제를 골자로 하는 게 꼭 필요하다"며 설명공세. "결합상품이 가계통신비 인하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IPTV는 신고제 반대에 막혀 요금인하를 못하고 있다"는 취지라며 자리를 뜨지 않는다.
자리를 다른 의원실로 옮기는데 복도 끝 흡연실 옆 쉼터에 K 기업 관계자들이 심각한 얼굴로 회의를 하고 있다. "요금 같은 때는 퇴근시간도 없어요. 시도 때도 없이 의원질의 내용이나 회사 관련 사안들을 점검하고, 보고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규제는 개선해달라고 설명도 해야 합니다. 경쟁사만 유리한 정책이나 법률에는 문제제기도 해야 하고요. 위원회 안에서 의원들과 회사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면, 의원회관에서는 보좌진과 기업의 국회담당자들이 씨름을 하고 있는 셈이죠.”
◆국감장 안팎의 '꿀먹은 벙어리'
24일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장. 아침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의원들의 날선 질의가 이어지는 동안 꼼짝없이 꿀 먹은 벙어리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만 100여명이다.
국감장 안팎에서 대기하는 방송통신위원회 및 산하기관 직원들, 그리고 출석을 요구받은 증인들은 언제 나서야 할지 몰라 꼼짝없이 대기 중이다.
참고인으로 채택돼 국감장을 찾은 A모씨. 출석을 요청받아 아침 일찌감찌 국회를 찾았지만 영 인기가 없다. 증인석에 서보지도 못했다.
A모씨를 보좌하는 직원 B씨는 "증인석에 서지 않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며 "하루 종일 지키고 서있어야 하는 점이 힘들다"라고 말했다.
밤 10시가 넘어서는 피감기관 직원들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국감장 밖 대기실에서는 복도벽에 기대 새우잠이 든 직원도 눈에 띈다.
어떤 직원은 국회의원들이 방대한 자료 요구가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피감기관 직원 C씨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생긴 후 배포된 보도자료 일체'를 자료로 요구한 의원도 있다"며 "자료 준비가 어렵기 보다는 양이 많아 시간이 소요되는 데 국감에서 이에 대해 질타가 이어져 속상하다"며 토로했다.
김현주기자 hann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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