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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애플 기사는 최상의 '티저 광고'다


광고기법 중에 ‘티저(teaser)'라는 게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기 전에 극히 일부만 보여주거나 엉뚱한 것을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말한다. 2000년에 선보인 ‘선영아 사랑해’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업체는 500여명을 동원해 서울시내 곳곳에 이 글이 적힌 벽보를 붙였다. 이 벽보는 순식간에 화제가 됐고, 정체를 모르기에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궁금증이 높아진 만큼 이 벽보는 뉴스의 대상이 됐고 그래서 호기심이 절정에 달했을 때 다시 ‘선영아 나였어 마이클럽’이라고 적힌 벽보가 나붙었다. 그때서야 이 벽보가 ‘마이클럽’이라는 인터넷 회사의 티저 광고임을 알게 됐다. 효과는 컸다. 당시 광고비가 총 50억 원이었다고 하는데 경제효과는 약 900억 원이라고 한다. 이후 ‘정원아 나랑 결혼해 주겠니?’ 같은 추종 광고가 나왔다.

이처럼 기발하지는 않지만 요즘 티저 광고는 대유행이다. 대표적인 게 영화 광고다. 먼저 스틸 사진 한 장을 공개한 뒤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단계적으로 나누어 조금씩 정보를 추가함으로써 관심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전자기기나 자동차 광고에도 이 기법이 쓰이곤 한다. 제품 홍보라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영화에 가까운 영상을 보여주면서 눈길을 사로잡은 뒤 마지막에 간단히 제품을 말한다.

이런 티저광고 가운데 가장 손꼽히는 것은 아마도 1984년 미국 슈퍼볼 경기 때 방영됐던 애플의 매킨토시 광고라 할 수 있다. 이 광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소재로 했다. 한 여성이 해머를 던져 ‘빅 브라더’를 파괴하는 내용이다. 특히 인간으로부터 자유를 박탈한 ‘빅 브라더’는 경쟁업체 IBM을 은유한 것이다. 올 슈퍼볼 경기 때는 모토로라가 애플을 빅 브라더에 비유한 광고를 하기도 했다.

모든 티저 광고는 기업이 철저한 계산을 통해 의도적으로 하는 행위이다. 당연히 광고 제작과 방송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또 그렇게 광고할 만큼 제품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역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

그런데 애플이라면 이제 더 이상 이런 티저 광고를 제작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거의 매일 세계 주요 언론들이 무료로 티저 광고를 해주기 때문이다. 아직 나오려면 몇 개월이나 더 필요한 애플 신제품에 관한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기사는 소셜 네트워크를 비롯한 인터넷의 각종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따라 확대 재생산된다. 애플로서는 티저 광고는커녕 외려 기사가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애플 제품은 별 게 다 기사가 된다. 기능 하나를 업그레이드해도, 새로운 부품을 채택해도, 크기를 약간 줄이거나 키워도, 모양을 조금 바꾸어도 각각 별도의 기사가 된다. 다른 제품이라면 간략하게 뭉뚱그려 쓰면 그만일 미세한 팩트지만 애플 제품에는 이 작은 변화에도 스티브 잡스의 ‘심오한 철학’이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저 광고에 가까운 기사는 끊이지가 않는다.

기사는 대개 사실일 것이나 나중에 보면 사실이 아닌 것도 있다. 애초 기자가 팩트 확인을 잘못한 것일 수 있지만 당시 충분히 팩트를 확인했어도 애플이 나중에 정책을 바꾸어 사실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제품 개발에는 여러 종류의 프로토타입이 필요한데 결과적으로는 그 중 하나만 최종 제품이 된다. 결국 탈락한 팩트들은 과정에서는 사실이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된다.

이처럼 숙명적으로 ‘결과적 오보’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발표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기자들이 팩트를 찾아 분전하는 까닭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오매불망 소식을 기다리는 독자들 때문이다. 특히 하루라도 애플 소식을 듣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잡스 신도’들이 기자들의 투쟁심을 부추긴다. 설사 기사가 ‘결과적 오보’라 하더라도 그것이 속성상 ‘티저 광고’와 같기에 큰 폐해는 없다.

‘과정적 사실’에 기반하고서도 루머로 평가되는 기사와 ‘결과적 사실’을 찾아내기 위해 이 ‘루머’를 해체하고 분석 평가하는 ‘잡스 신도’의 끝없는 술래잡기 놀이가 애플이 돈 한 푼 안들이고 하는 티저 광고의 전형이다.

어떤 광고 회사가 이런 티저광고를 제작할 수 있을까.

/캘리포니아(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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